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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Hist > Volume 25(3); 2016 > Article
신라 승려의 『금광명경』「제병품」 주석을 통해 살펴본 한국 고대 불교의학*

Abstract

Nearly nothing is known of medicine in ancient Korea due to insufficient materials. With several extant prescriptions and esoteric methods of treating diseases alone, it is impossible to gauge in depth the management of medicine during this period. If one exception were to be cited, that would be the fact that the annotations for understanding the contents on Indian medicine in the “Chapter on Eliminating Disease” in the Sutra of Golden Light, a Buddhist sutra originating from India, reflected the medical knowledge of Buddhist monks from Silla (新羅, 57 BC-935 AD) who were active immediately after the nation’s unification of the two other kingdoms on the Korean Peninsula (668 AD) such as Wonhyo (元曉, 617-686 AD), Gyeongheung (憬興, 620?-700? AD), and Seungjang (勝莊, 684-? AD). Along with those by other monks, these annotations are collected in the Mysterious Pivot of the Sutra of Golden Light (金光明經最勝王經玄樞), which was compiled by Gangyō(願曉, 835-871 AD), a Japanese monk from the Heian era (平安, 794-1185 AD).
Representative versions of the “Chapter on Eliminating Disease” in the Sutra of Golden Light include: a classical Chinese translation by the Indian monk Dharmakṣema (曇無讖, 385-433 AD); the eight-volume edition by Chinese monk Baogui (寶貴), which differs little from the preceding work in terms of the contents of the “Chapter on Eliminating Disease”; and the ten-volume edition by Yijing (義淨, 635-713 AD), who had full-fledged knowledge of Indian medicine. When the contents of the annotations thus collected are examined, it seems that Wonhyo had not been aware of the existence of the ten-volume edition, and Gyeongheung and Seungjang most certainly used the ten-volume edition in their annotations as well. Especially noteworthy are Wonhyo’s annotations on the Indian medical knowledge found in the “Chapter on Eliminating Disease” in the Sutra of Golden Light. Here, he made a bold attempt to link and understand consistently even discussions on Indian and Buddhist medicine on the basis of the traditional East Asian medical theory centering on the yin-yang (陰陽) and five phases (五行, wuxing). In accordance with East Asia’s theory of the seasonal five phases, Wonhyo sought to explain aspects of Indian medicine, e.g., changes in the four great elements (四大, catvāri mahā-bhūtāni) of earth, water, fire, and wind according to seasonal factors and their effect on the internal organs; patterns of diseases such as wind (vāta)-induced disease, bile (pitta)-induced disease, phlegm (śleṣman)-induced disease, and a combination (saṃnipāta) of these three types of diseases; pathogenesis due to the indigestion of food, as pathological mechanisms centering on the theory of the mutual overcoming (相克, xiangke) of the five phases including the five viscera (五藏, wuzang), five flavors (五味, wuwei), and five colors (五色, wuse). They existed in the text contents on Indian medicine, which could not be explicated well with the existing medical knowledge based on the theory of the five phases. Consequently, he boldly modified the theory of the five phases in his own way for such passages, thus attempting a reconciliation, or harmonization of disputes (和諍, hwajaeng), of the two medical systems. Such an attempt was even bolder than those by earlier annotators, and Wonhyo’s annotations came to be accepted by later annotators as one persuasive explanation as well. In the case of Gyeongheung and Seungjang, who obtained and examined the ten-volume edition, a new classical Chinese translation produced following Wonhyo’s death, annotated the “Chapter on Eliminating Disease” based on their outstanding proficiency in Sanskrit and knowledge of new Indian and Buddhist medicine. This fact signifies that knowledge of the eight arts (八術) of Ayurvedic medicine in India was introduced into Silla around the early 8th century.
The medical knowledge of Wonhyo, Gyeongheung, and Seungjang demonstrates that intellectual circles in contemporary Silla were arenas in which not only traditional East Asian medicine as represented by works such as the Inner Canon of the Yellow Emperor (黃帝內經, Huangdi Neijing) but also Indian medicine of Buddhism coexisted in almost real time.

  • “원효법사를 청해 『금강삼매경』을 설법토록 한다면 부인의 병은 틀림없이 나을 것입니다.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는 설산의 아가타(阿伽陀)도 그보다 나을 수 없을 것입니다.”(『송고승전』, 「당신라국황룡사원효전」)

Ⅰ. 머리말

한국 고대 의학의 모습은 자료 부족으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전해지고 있는 몇몇 처방이나 밀교적 치병 방식 만으로는 의학 운용의 깊은 측면을 헤아릴 수 없다[1].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삼국 통일 직후 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 경흥(憬興, 620?-700?)[2], 승장(勝莊, 684-?) 등이 남긴 『금광명경(Suvarṇabhāsa-sūtra, 金光明經)』 「제병품(Vyādhipraśamana-parivarta, 除病品)」의 인도 의학 및 불교 의학에 대한 주석이다. 이 주석은 일본 헤이안 시대 승려 원효(願曉, 835-871)가 편찬한 『금광명최승왕경현추(金光明最勝王經玄樞)』 중에 집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불교 의학에 대해서는 일찍이 1950년대에 김두종이 약간의 관심을 가진 바 있다[3]. 그는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이나 『황제내경(黃帝內經)』,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 등 신라 당대에 유통되던 불경 및 의서에 의거해 이와 같은 류의 책이 담고 있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적 지식이 한국 고대 사회에도 존재했을 것이라 간접 추정했다(金斗鍾, 1955, 62-188). 그러던 차, 김두종의 접근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직접적인 독법이 출현했다. 「제병품」의 원효 주석을 검토했던 여인석·박형우는 원효의 의학에 대해, 첫 번째, 그의 의학은 인도 의학에 바탕을 둔 불교 의학 보다는 중국에서 유래한 한의학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 의학 중의 사대(四大) 관련 논의를 오행(五行)으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했으나, 사대를 둘러싼 논의 중에는 오행의 상생상극과 같은 관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아 무리한 추론을 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제병품」 중에 기재된 치료 방법이나 약물에 대해 거의 주석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의 관심이 의학 이론적 측면에 치우쳐져 있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여인석·박형우, 1995: 163). 여인석이 박형우와 공동으로 그리고 단독으로 진행했던 한국 고대 의학에 대한 연구는 선행 연구가 미진했던 상태에서 이루어진 선구적인 성과로 불교 의학을 중심으로 신라 의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여인석·박형우, 1995: 159-164; 여인석, 1996: 197-214). 이후에 발표된 돈 베이커(Don Baker)·이현숙의 연구나 박민정의 연구 역시 여인석·박형우의 성과와 비슷한 계통을 따르고 있다(Don Baker·Hyunsook Lee, 2016; 박민정, 2013).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원효의 『금광명경』의 「제병품」 주석에 담긴 의학 내용을 불교 의학과 중국 의학의 양 측면에서 더욱 정밀하게 분석하는 한편, 「제병품」에 원효 이후에 활동한 신라 승려 경흥, 승장 등의 주석까지도 검토함으로써 한국 고대 의학 이해에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즉 「제병품」에는 생리, 병리, 섭생, 치료 등에 대한 어떤 인도 의학적 요소가 담겨 있으며, 판본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이에 대해 원효와 시대가 약간 뒤진 경흥, 승장은 어떤 태도를 보였으며 이들의 논의 중에서 기존 중국 의학적 식견은 어떻게 작용했는지, 새로 접한 인도 의학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불교 경전인 『금광명경』 「제병품」에 대해 신라 승려들이 시도했던 의학적 설명과 그것의 변천 과정을 통해 신라 의학의 한 양상을 읽어내고자 한다[4].
불교 경전인 『금광명경』 「제병품」에 대한 주석 만으로 신라 의학 전체가 이런 모습이었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금광명경』 「제병품」 자체가 하나의 의서로 추앙받고도 있는 점(道端良秀, 1986: 87), 『금광명경』이 『인왕경』, 『법화경』과 함께 호국 불경의 하나로 신라의 승려들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읽혔던 점(조준호, 2012: 11), 그리고 주석가들이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점들은 그 중에 실려 있는 논의들이 신라 의학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금광명경』 이외 불교 경전 중에도 신라 및 삼국 시대 의학 관련된 논의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나, 기타 경전에 대한 논의는 후속 연구를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부족한 사료는 해석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해 자칫 확대 해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연구에서는 해당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원효가 말했다(曉云)’, ‘경흥이 말했다(興云)’는 직접 인용문 이외에 ‘상이 원효의 뜻을 가져와 말했다(祥坮曉云)’, ‘경흥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뜻을 취해 추가하여 말했다(興取本義加云)’는 등의 표현까지도 원효나 경흥의 주석으로 인정했지만, 논의에 활용하는 사료 또는 관련 자료의 판본은 원효, 경흥 및 승장 등의 활동 년대에 실존했던 것 그리고 현재 확인 가능한 것만으로 제한해 후대의 것으로 앞 시대를 해석하는 오류를 방지하고자 했다[5].

II. 『금광명경』에 대한 서지적 고찰

『금광명경』 주석 중에 담긴 신라 의학의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금광명경』 주석은 물론 당대의 인도 의학, 인도 및 중국 불교의학, 그리고 중국 의학에 대한 검토 역시 필요하다. 『금광명경』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 인도 쿠샨 왕조 후반기 그리고 굽타 왕조 초반기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대승불교 경전으로 담무참(曇无讖, Dharmakṣema, 385–433), 의정(義淨, 635–713) 등에 의해 이루어진 한역본 이외에 티벳본, 위그르본, 코탄본, 몽골본, 탕구트본 등이 전해지고 있다(Jonathan A. Silk, etc., 2015: 255)[6].
『금광명경』의 한역(漢譯)은 인도 승려 담무참이 머물던 고장(姑臧, 감숙성무위시)이 412년 16국의 하나였던 북량(北熷)으로 복속되고 하서왕(河西王) 저거몽손(沮渠蒙遜, 368-433)이 담무참을 보호하게 되면서 이루어졌다(慧皎, 1992: 77)[7]. 후지타니아쯔오(藤谷厚生)가 밝혀둔 『금광명경』의 번역 과정과 판본 간의 차이에 따르면, 420년 경 담무참에 의해 한역된 4권 18품의 『금광명경』(이하 4권본)은 552년 진제(眞諦, Paramārtha, 499-569)에 의해 「삼신분별품(三身分別品)」, 「멸업장품(滅業障品)」, 「다라니최정지품(陀羅尼最浄地品)」, 「의공만원품(依空牻願品)」이 추가되어 7권(6권?) 22품으로 재편집되었고, 북주(北周) 무제(武帝) 년간(560-578)에는 야사굴다(耶舎崛多, Yaśogupta)에 의해 4권본 중의 「참회품(懺悔品)」과 「사신품(捨身品)」이 각각 둘로 나뉘어 5권 20품으로 재편집됐다. 이후 597년 보귀(寶貴)는 진제가 추가한 4품과 사나굴다(闍那崌多, Jñānagupta, 523–600)가 추가한 2품을 더해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8권 24품으로 편찬해냈다. 『금광명경』의 최종 교정본은 당대의 승려 의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703년 인도에서 가져온 새로운 산스크리트어본에 의거해 한역을 시도한 결과 「금승다라니품(金勝陀羅尼品)」, 「여의보주다라니품(如意寶珠陀羅尼品)」을 추가했고, 「사천왕품(四天王品)」과 「공덕천품(功掮天品)」은 각각 2품, 「찬불품(讃佛品)」은 다시 4품으로 나누어 10권 31품으로 재구성했다. 명칭 또한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Suvarṇaprabhāsottamarājasūtra))』으로 새롭게 명명했다(藤谷厚生, 2005: 1-4). 한역 『금광명경』과 주석서의 출간과 관련 인물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Table 1.
Publications of Chinese Translations and Annotations of Sutra of Golden Light and Related Scholars’ Activity Period
중국 신라
曇無讖 (385-433) 『金光明經』(420년경, 4권본)

寶貴 『合部金光明經』(597, 8권본)

智題 (538-597) 『金光明經玄義』(597)
『金光明經文句』(597)

吉藏 (549-623) 『金光明經疏』

元曉 (617-686) 『金光明經疏』 8卷

義淨 (635-713) 『金光明最勝王經』(703, 10권본)

憬興 (620?-700?) 『金光明經略意』 1卷(681년경)
慧沼 (648-714) 『金光明最勝王經疏』(714) 『金光明最勝王經述贊』 5卷(681년경)
『金光明最勝王經略贊』 5卷(703년경)

『金光明最勝王經疏』 10卷(5卷?, 703년경)

勝莊 (684-?) 『金光明最勝王經疏』 8卷(703년 경)

* 藤谷厚生, 「金光明経の教史的展開について」, 『四天王寺国際仏教大紀要 大院』 4, (2005), 26-27쪽.

이상의 여러 한역본 중 원효를 비롯한 신라 승려들이 본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김상현이 최초로 논의했다. 그는 앞선 연구에서 7세기 신라에 4권본과 8권본이 유통되고 있었으며, 원효의 『금광명경소』는 8권본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金相鉉, 1994: 260-261). 아울러 『금광명최승왕경현추』 중의 “경흥의 8권 소에서 이르기를(興八卷疏云)”이라는 문장을 토대로 경흥이 8권본을 주석했을 것이라 추정했다(金相鉉, 2000: 214). 원효의 『금광명경소』는 전해지고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 『내량록(奈良錄)』, 『법상종장소(法相宗章疏)』,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 등에서 원효의 『금광명경』 주석서를 8권(八卷)으로 기재하고 있기에 원효가 8권본을 활용했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金相鉉, 1994: 260-261쪽; 藤谷厚生, 2005: 1-4). 경흥과 승장이 활용한 『금광명경』이 8권본이었는지, 10권본이었는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의정이 10권본을 번역한 이듬해인 704년 견당사 김사양(金思讓)은 『최승왕경(最勝王經)』을 신라에 전했다[8]. 김사양이 전한 『금광명경』이 8권본인지 10권본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신라에 8권본이 이미 입수되어 있었던 점, 서명이 『최승왕경』인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704년 10권본이 입수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9]. 당시 입수된 것이 10권본이었다면 신라의 국로(國老)로 추대될 정도로 높은 정치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고 또 신라 3대 저술가로 꼽힐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 편찬했던 경흥이었던 만큼 입수 및 검토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韓泰植, 1991: 20-27). 실제 『금광명최승왕경현추』 중에 ‘문재하시(問在何時)’, ‘무약자(無藥資)’, ‘준삼시이수식병(准三時以須識病)’ 등 10권본 「제병품」에만 실려 있는 문장에 대한 경흥의 주석이 전해지고 있다. 승장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의정의 역장(譯場)에 참여해 산스크리트 문장의 구성과 뜻을 검토하는 증의(證義)를 맡았으므로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물론 10권본까지도 현장에서 살펴봤을 것으로 보인다(贊寧, 1987: 69; 李萬, 2011: 65-66). 『금광명최승왕경현추』 중에는 10권본 「제병품」에만 실려 있는 칠계(七界), 가리륵(訶梨勒)의 육미(六味) 등에 대한 승장의 주석이 전해지고 있다.
금번 연구의 주된 분석 대상인 「제병품」의 경우, 담무참이 편찬한 4권본 『금광명경』(이하 4권본)과 보귀가 편찬한 8권본 『합부금광명경』(이하 8권본) 간에는 일부 글자 변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차이가 없다. 실제 8권본 「제병품」 제목 하단에는 “북량 삼장 담무참이 번역했다(北熷三藏曇無讖譯)”는 구절이 실려 있어 역시 4권본의 번역을 전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의정이 번역한 10권본 『금광명최승왕경』(이하 10권본) 「제병품」은 4권본 또는 8권본에 수록된 「제병품」과 분량 뿐 아니라 번역 문장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10]. 최근 히노에운(日野惠運)은 10권본 「제병품」에 추가된 게송을 토대로 산스크리트어본과 4권본을 비교 분석해 어떤 내용들이 윤색 가필되었는지 밝힌 바 있다. 특히 그는 의정이 담무참의 번역어 의방(醫方)을 팔술(八術)이라는 용어로 구체화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것이 의정 자신의 창작이 아니라 인도에서 의학을 학습한 경력 그리고 10권본에 앞서 『남해기귀내법전』 중에 수록해두었던 아유르베다의학 팔의(八醫)에 대한 설명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日野惠運, 2015: 45-48). 의학 내용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제병품」이니 만큼 수백 년의 간격을 두며 진행된 4권본·8권본과 10권본의 「제병품」에 대한 번역과 그에 대한 연구 성과, 주석에 대한 비교는 불교 의학이 한자문화권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었는지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의학 지식 수준은 어떠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가늠자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이라 기대된다[11].

Ⅲ. 원효, 승장, 경흥 등의 「제병품」 주석을 통해 살펴본 신라 불교 의학

1. 6계절의 인도와 4계절의 중국 그리고 한역본 『금광명경』

「제병품」은 의학과 관련된 논의를 수행하고 있는 품으로 석존의 과거세 존재인 류수(流水)가 아버지이자 이름난 의사 지수(持水)로부터 의술을 배워 병들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학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은 아버지가 아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 중에서 소개된다. 아들 류수가 몸의 구성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와 감각 기관인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마음(意)의 제근(諸根)이 쇠퇴하고 변화하면서 병에 걸리는 이유,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몸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 풍병(風病), 열병(熱病), 폐병(肺病) 그리고 풍·열·수의 세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한 등분병(等分病)이 발생하는 이유, 그리고 풍·열·수가 변화하여 병을 일으키는 때에 대해 질문하자, 아버지 지수는 1년의 계절 구분과 단위, 계절의 변화 및 음식 소화 과정 중에 발생하는 질병과 그 기전, 각각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 및 약물 등을 상세히 답하고 있다[12]. 「제병품」은 산스크리트어 경전 『금광명경』의 일부를 번역한 것인 만큼 그 중에 포함된 의학 내용 역시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의 내용을 품고 있다. 실제 천밍(陳明)은 최근 연구에서 「제병품」에서 제기한 풍·열·수 그리고 등분병의 발병과 그 기전에 대한 설명은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경전, 『아쉬탕가흐리다야상히따(Aṣṭāṅga hṛdaya Saṃhitā, 八支心要方本集)』 중의 바따(vāta), 삐따(pitta), 까파(kapha)로 이루어진 삼체액학설(tri-doṣa)의 논의와 일치한다고 평가했다(陳明, 2013: 6-9). 이와 함께 인도 철학에서는 사람이 지·수·화·풍·공(空, ākāsa)의 오대원소로 조성되어 있다고 간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역 불교 경전 중에는 ‘공’의 번역이 누락되어 있으며 그저 사대에 의해 몸이 구성되고 그 부조화로 인해 질병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陳明, 2013: 10; 陳明, 2002: 70).
질병의 발생 기전과 대처법에 대해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아들 류수의 질문에 대해 아버지 지수가 처음 꺼낸 대답은 계절 구분과 관련된 설명이었다. 일년 간의 계절 변화로 인해 자연과 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사대가 변화하고 그 결과 질병이 발생하므로 자연의 변화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몸의 반응을 의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3-4세기경 인도 중동부에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경전인 『수슈르따상히따』에서도 확인된다(廖育群, 2003: 37-40). 다만 『수슈르따상히따』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남쪽은 우계(雨季, varṣā)·추계(秋, śarad)·동계(初冬, hemanta)·춘계(春季, vasanta)·하계(夏季, grīṣma)·전우계(前雨季, prāvṛṣ), 북쪽은 우계(雨季, varṣā)·추계(秋, śarad)·동계(初冬, hemanta)·냉계(冷界, śiśira)·춘계(春界, vasanta)·하계(夏季, grīṣma)의 6개 단위로 계절 변화와 몸의 반응을 설명하고 있었다(표 2)(Suśruta, 2016: 40; 서지영, 2010: 19-20)[13]. 이와 비슷한 사유는 양한(兩漢) 시대에 성립된 중국 의학 경전 『황제내경』에서도 확인된다. 김희정이 밝힌 바와 같이 『황제내경』 중에는 신성한 자연과 인간의 몸과 국가가 서로 반응한다는 황로사상(黃老思想)이 반영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은 자연의 질서인 음양, 오행, 사시와 그 원천인 기의 감응이 일정하게 법칙적으로 움직이듯이 몸도 그와 같은 질서의 체계로 상응하고 있었다(김희정, 2008: 287-291)[14]. 다만 『황제내경』 의학은 『수슈르따상히따』와 달리 동아시아 몬순(monsoon) 지대의 명료한 사계절의 변화와 인체의 생리 및 병리 관계를 오행론으로 결합시키고 있었을 뿐이었다(丸山敏秋, 1988: 176)[15].
Table 2.
Increase of Doṣās in respect of Six Seasons in Southern India Recorded on Suśruta-Saṃhitā
계절 varsa (雨季) sarad (秋季) hemanta (冬季) vasanta (春季) grnsma (夏季) pravps (前雨季)
vata (體風素) - - - - 축적 증대

pitta (膽汁素) 축적 증대 - - - -

kapha (粘液素) - - 축적 증대 - -

* K. R. Srikantha Murthy의 노트와 서지영, 黃國淸의 설명을 근거로 재수정했으며(Suśruta, 2016: 40; 서지영, 2010: 19-20; 黃國淸, 2009: 39), 심재관의 자문을 받았다.

불교의 중국 유입 시점은 후한(後漢) 명제(明帝, 재위 57-75)가 서역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구하는 사신을 파견한 영평(永平) 년간으로 공인되어 있지만 (灟用损, 2000: 12), 위진남북조 시대(220-589년) 300여 년간 1621부 4180권에 달하는 불경이 한역되는 과정에서 불교 이론과 접목된 인도 불교 의학이 중국 의학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蔡景峰, 1986: 16; 鱹加氆, 2014: 6-9). 『금광명경』에 앞서 삼국 시대 동오(東吳)의 축률염(竺律炎)과 지겸(支謙)에 의해 한역된 대표적인 불교 의학 경전 『불설불의경(佛說佛醫經)』의 경우 『금광명경』 「제병품」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몸이라는 천인상응의 관점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일 년을 여섯 계절이 아닌 사계절의 변화로만 설명하고 있었다(嘓怡, 1995: 17-18; 黃國淸, 2009: 40-41). 반면 담무참이 한역한 「제병품」 원문 중에는 1년 12개월을 4개 단위로 파악하는 중국 의학과 6개 단위로 파악하는 인도 의학의 논의가 혼재되어 있었다. 1년 12개월이 각각 3개월씩 봄·여름·가을·겨울로 이루어져 있지만, 3의 단위로는 일 년을 계상하면 근본을 포섭하고(三三本攝), 2의 단위는 일 년을 계상하면 때가 드러난다(二二現時)는 두 가지 표현을 모두 싣고 있던 것이다[16]. 사실 보다 후대에 한역된 10권본에 따르면 ‘삼삼본섭’은 1년을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3개월 단위로 설명하는 것이었고, ‘이이현시’는 1년을 꽃 피는 시절(花時)·뜨거운 시절(熱祭)·비 내리는 시절(雨祭)·가을(秋時)·추운 때(寒時)·얼음 얼고 눈 내리는 때(氷雪)의 6계절, 2개월 단위로 설명하는 것에 불과했다. 인도 의학과 중국 의학 모두 1년 간의 계절 변화를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었기에 1년을 6계절로 간주하던 인도와 1년을 4계절로 간주하던 중국 간의 논의는 합치될 수 없었으며 복잡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원효보다 앞서 『금광명경』을 주석한 중국 수대(隋代)의 승려 지의(智鱒, 538-597), 길장(吉藏, 549-623) 등은 ‘삼삼본섭’, ‘이이현시’를 둘러싼 논의를 충실히 수집 및 정리하고 있다.
먼저 ‘삼삼본섭’에 대해, 지의는 속법(俗法)에 따르면 정월(正月)이 봄의 본월(本月)인데 나머지 2개월을 봄으로 포섭하고 있으므로 3개월로 구성된 4계절의 첫 달을 본(本) 그리고 나머지 두 달을 포섭된(攝) 시간으로 본다. 정월과 2월이 봄의 목(木)이 왕성한 때이고 3월은 토(土)로써 봄에 포섭되어 있으므로 앞의 두 달이 봄(木)·여름(火)·가을(金)·겨울(水)의 주인(主)이 되어 나머지 한 달인 토(土)를 객(客)으로써 포섭한다는 설명을 소개했다. 이어 불법(佛法)에 따를 경우 가을은 사라지게 되며, 가을 3개월이 근본(本)에 해당하는 나머지 계절에 1개월씩 포섭(攝)된다는 설명을 제시했다[17]. 길장은 지의의 설명을 반복하면서 ‘삼삼본섭’에서 앞의 ‘삼’은 가을 3개월을 뒤의 ‘삼’은 겨울, 봄, 여름의 3개월을 가리킨다라고 보완하고 가을이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했다[18]. 그리고, ‘이이현시’에 대해, 지의와 길장은 모두 속법에 따르면 두 달씩 이루어져 목(木)·화(火)·금(金)·수(水)로 구분할 수 있는 4계절에 두 달씩 이루어진 양토(陽土)와 음토(陰土)가 여섯 시간 단위를 구성하고 있다. 불법에 따르면 4개월씩 구성되어 있는 3계절이 초분(初分)과 후분(後分)의 두 개 단위로 구분되어 여섯 시간 단위를 채우고 있다. 또한 1·3월은 양월(陽月), 2·4월은 음월(陰月)로 홑수 달과 짝수 달이 번갈아오며 여섯 시간 단위를 채운다 등으로 설명했다[19]. 결국 시간 단위 표현인 ‘삼삼본섭’, ‘이이현시’에 대한 논의는 1년을 4계절 3개월 단위로 살펴보는 속법과 1년을 3계절 4개월 단위로 살펴보는 불법 간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반면 원효는 지의나 길장이 제시한 속법과 불법의 차이를 상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행에 의거하여 본으로써 말을 포섭해 사시(四時)를 세웠으며, 음양의 두 가지 기(二氣)로써 시간을 구별해 여섯 시간(六時)을 세운 것이라는 음양오행론적 관점을 내세웠다. 이어 삼삼본섭에 대해서는 목·화·금·수의 기운이 왕성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앞 2개월이 본이 되어 각 계절의 끝에 해당하는 토를 말로써 포섭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아울러 이이현시에 대해서도 1년 12개월은 6개월 씩 두 묶음으로 되어 있고, 앞의 6개월은 양(陽) 위주로 뒤의 6개월은 음(陰) 위주로 구성되며 각각의 6개월은 2개월씩 초, 중, 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양의 두 개 기운이 3개의 시간 단위로 구별되어 드러나는 것이라고 단촐하게 정리했다[20].
사실 ‘삼삼본섭’과 ‘이이현시’를 둘러싼 논의는 남아시아에 위치한 인도와 동아시아에 위치한 중국 그리고 신라의 계절 차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원효는 속법과 불법으로 대립되어 있던 중국 승려들의 주석을 변별한 뒤, 두 논의가 천인감응이라는 공동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당대 동아시아의 자연관이었던 음양오행론을 중심으로 포섭해내는 일종의 화쟁(和諍)을 시도했다[21]. 이와 같은 원효의 설명 방식은 사계절의 ‘4’와 오행의 ‘5’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각 계절의 끝에 계토(季土)를 설정하고 비장(脾臟)을 배속했던 『황제내경』의 설명 논리와 흡사했다[22]. 원효가 『황제내경』의 논리를 얼마만큼 참조했는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의, 길장 등에 의해 복잡하게 전개되던 논의가 원효 이후로 더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등의 원효 저작이 중국, 일본 뿐 아니라 인도까지도 전파됐으므로(박태원, 2012: 60, 175) 원효의 설명에 따라 음양오행론에 입각한 시간관이 불교 의학의 그것을 흡수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효가 세상을 떠나고 불과 10년 뒤, 의정에 의해 새롭게 한역된 10권본에서는 2개월씩 진행되는 인도의 여섯 계절에 대해 설명하며, 계절의 차이는 중국과 인도의 지역적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지 설명의 대상이 아님을 명시했다. 이를 수용한 신라의 경흥 역시 인도는 꽃 피는 시절을 포함한 뜨거운 시절·비 내리는 시절을 포함한 가을·얼음 얼고 눈 내리는 때를 포함한 추운 때의 세 개의 시절이 각각 4개월 씩 포함하고 있으며, 사계절을 삼개월 단위로 삼는 것은 중국의 방법이며 같다손 치더라도 달을 헤아리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라고 구분 설명했다[23].
인도와 중국의 계절 인식 관련 논의에서 빠뜨리지 말고 살펴봐야 할 점은 산스크리트어본 『금광명경』 원문을 둘러싼 한역 과정이다. 1969년 노벨(J. Nobel)의 교정본을 근거로 산스크리트어본 『금광명경』의 영어 번역을 시도했던 에머릭(R. E. Emmerick)은 1년을 뜨거운 계절(hot season), 비가 오는 계절(rainy season), 가을(autumn), 그리고 겨울(winter)의 4개 단위로 구분하고, 뜨거운 계절에는 담음병(phlegm), 비가 오는 계절에는 풍병(wind)이 발생한다고 기재했다(R. E. Emmerick, 1970: 75-76). 뜨거운 계절과 비가 오는 계절은 인도 6개 계절의 그리슈마(grīṣma)와 바르샤(varṣā)를 감안한 번역이었다(표 2, 3). 반면 담무참은 위의 두 계절과 두 계절에 발생하는 질병을 각각 봄(春)과 폐병(肺病), 여름(夏)과 풍병(風病)이라고 한역했다. 이와 같은 번역은 『황제내경』으로 대별되는 중국 의학의 오행론에 입각한 계절 구분 그리고 질병 발생 논의와 일치하지 않았다(표 4). 그래서인지 몰라도 8권본에 대한 주석을 남긴 지의는 이에 대해 봄에 간장의 병이 발생하면 치료할 수 있으나 봄에 비장의 병이 발생하면 치료하기 어렵고, 여름에는 심장의 병이 발생하면 치료할 수 있으나 여름에 폐병이 발생하면 치료하기 어렵다는 오행론, 중국 의학 이론에 입각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었다[24]. 반면, 원효는 『금광명경』이 제시한 논의의 틀을 고수했다. 그는 봄에는 목의 기운이 왕성해지므로 오행 간에 상모(相侮) 관계에 있는 폐병이 발생하고, 가을에는 금의 기운이 왕성해지므로 상모 관계에 있는 열병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25].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효는 중국과 인도의 계절 단위가 혼재되어 있던 8권본 및 관련 주석 그리고 기존 중국 의학 이론과의 화쟁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역 과정 중에 발생했던 어쩔 수 없던 오류 역시 존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해 최근 심재관은 질병 치료를 위해 환자가 복용해야할 음식이나 약의 특성(맛, rasa)을 둘러싼 산스크리트어본의 표현과 담무참, 의정의 한역을 비교하며 비슷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심재관, 2016a: 24-25)[26].
Table 3.
Seasons and Following Diseases by Dharmakṣema·Yijing·Emmerick’s Translational Nomenclature
曇無讖·義淨 질병 발생 肺病 風病 熱病 等分病

痰쩔 黃熱 總集病

계절


산스크리트어 원본 grl$ma var$a sarad hemanta


Emmerick hot season rainy season autumn winter

질병 발생 phlegm wind bile combination

* 한역은 『大正新脩大藏經』,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심재관의 발표문을, 영역은 Emmerick의 번역을 참고했다(심재관, 2016a: 19-21; R. E. Emmerick, 1970: 75-76).

Table 4.
The Five Viscera and Five Flavors in the books affiliated with Inner Canon of the Yellow Emperor and Wonhyo
구분 -
계절 원효 - 四季

『針灸甲乙經』 「五臟變腦」 - 長夏
「五臟傳變大論」

『黃帝內經太素』 「變輸」
「尺寸診」
「五藏脈診」
「陰陽雜說」

「陰陽雜說」 - 四季·季夏

「知鍼石」 - 四季
「?」*

「藏腑氣液」 - - - 四季 - -

五藏 -

장기 배속 원효 小腸 - 胃·膀胱 大腸 三焦

『針灸甲乙經』 「五臟六腑陰陽表裏」 小腸 三焦 大腸 膀胱

「五臟大小六腑應候」 小腸 - 大腸 三焦·膀胱

오미 배속 원효 -

『黃帝內經太素』 「調食」 -

* 편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黃帝內經太素』 卷十四의 첫 번째 편이다.

2. 풍·열·폐병의 발병 기전에 대한 원효의 이해

질병 발생 과정에 대해 8권본은 “시간이 변화함에 따라 1년 중에 제근과 사대가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그 세력이 증가하고 줄어들면서(代謝增損)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27]”는 일반적인 논의와 함께 “풍병은 여름에 발생하고, 열병은 가을에 발생하며, 등분병은 겨울에 발생하며, 폐병은 봄이 되면 심해진다[28]”, “배불리 먹은 뒤에는 폐병이 발생하고, 음식이 소화되는 때는 열병이 발생하며, 음식이 소화되고 난 뒤에는 풍병이 발생한다[29]”는 계절과 음식으로 인해 풍·열·폐 그리고 등분병이 발생한다는 세분화된 논의를 기술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원효는 수(水)의 기운이 물러나고(謝) 목(木)의 기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代). 목이 기운이 증가하면(增) 토의 기운은 감소한다며(損) 사대와 풍·열·폐병 중심의 8권본의 논의를 오행 개념으로 치환하여 설명했다[30]. 뿐만 아니라 질병 발생 및 치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내용 역시 “목의 기운은 간장(肝)에서 주로 일어나고 쓸개(膽)는 그 부(腑)가 된다[31]”, “봄에는 목의 기운이 왕성하다. 그 맛은 신 맛이다. 신 것을 먹지 말아야 하니 간장을 상하여 병을 이루기 때문이다[32]” 등의 오장, 오미 등 오행 배속 이론에 입각해 설명하고자 했다. 음식 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발병 기전을 설명하기 위해 “등분은 지(地), 폐병은 수(水), 열병은 화(火), 풍병은 풍대(風大)[33]”라는 사대의 논의를 빌어 왔지만 원문의 구성을 소개하기 위함이었으며, “폐가 가슴 부위에 있으니 마실 때 침해를 받는 것이다[34]”, “소화될 때는 화의 기운이 증가하므로 열이 일어난다[35]”는 등의 설명은 비장, 심장, 폐장을 중심으로 음식물 소화 흡수 과정을 설명하던 『황제내경』을 비롯한 중국 의서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36].
원효의 오행론 활용 방식은 동쪽, 간장, 목의 기운, 신 맛 등의 연관성을 이야기했던 『황제내경소문(黃帝內經素問)』 「선명오기(宣明五氣)」,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의 설명과 유사했지만(段逸山, 2001: 66, 107-108, 178)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첫 번째, 오장(五臟)의 오행 배속이 서로 같지 않았다. 원효는 토의 기운이 비장에 의해 주로 발출되며, 위장(胃)과 방광(膀胱)이 비장의 부(腑)가 된다고 이야기 한다. 아울러 수의 기운은 신장(腎臟)에서 주로 발출되며 삼초(三焦)가 신장의 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37]. 반면 『황제내경』의 초기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 『침구갑을경』 「오장육부음양표리(五藏六府驽陽表裏)」에서는 비장과 위장 그리고 신장과 방광이 합치된다(合) 그리고 「오장대소육부응후(五臟大小六腑應候)」에서는 신장은 삼초, 방광과 합치된다(合)라고 말한다(皇甫逢, 2011: 23, 25). 아울러 삼초에 대해서는 방광에 속하지만, 짝이 없는 장기라고도 표현하고 있다(표 4)(皇甫逢, 2011: 23)[38]. 두 번째, 오미(五味)의 오행 배속이 같지 않았다. 상(祥)의 원효 인용문에서 원효는 겨울에는 수의 기운이 왕성하고 그에 해당하는 맛(味)이 담담한 맛(淡)이라고 했지만[39], 『황제내경태소』 「섭생지이(攝生之二)」 「조식(調食)」에서는 짠 맛은 신장으로 들어가고, 담담한 맛은 위장으로 들어간다고 이야기한다(표 4)(楊上善, 2005: 35). 세 번째, 계절과 오미, 그리고 장부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설명에서 차이를 보였다. 상(祥)의 원효 인용문에서 원효는 “가을에는 금의 기운이 왕성하며, 그 맛은 맵다. 매운 맛을 먹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신장을 손상시켜 병을 일으킨다. 겨울에는 수의 기운이 왕성하니, 그 맛은 담담하다. 담담한 것을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으니, 폐장을 손상시켜 병을 일으킨다[40]”라고 표현했지만, 가을을 매운 맛과 폐장, 겨울을 짠맛과 신장과 연계시키고 각각의 장기와 먹거나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 뿐 아니라 먹어서 좋은 것까지도 제시했던 『황제내경』 계열 서적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그림 1)(皇甫逢, 2011: 22-23, 112-113).
그림 1. 원효의 천인감응 의학
Figure 1. Wonhyo’s Medicine of Corresponding Heavenly Phenomena and Huma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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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황제내경』 계열 의학 간의 오행 배속의 차이는 의학 계통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황제내경』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저자들이 논문에 수정을 가해 완성한 논문집이었기에, 인체 부위, 오축(五畜), 오곡(五穀), 오과(五果), 오채(五菜) 등의 오행 배속에 대해 각각의 편마다 조금씩의 차이를 보인다(야마다게이지, 2016: 383; 丸山敏秋, 1988: 258-262). 따라서, 원효가 현전 『황제내경』 계통 서적들과 차이를 보이는 오행론을 주창했던 계통의 서적을 참고했을 것이라는 추정 역시 가능하다. 다만,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에서 ‘카파(kapha)’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 불경 중에서 폐병(肺病), 수병(水病), 담(痰), 담음(痰穅) 등의 다양한 용어로 한역되고 있는 점과(遠藤次铉, 1993: 333-336) 원효 의학 전반을 흐르고 있는 논리적 일관성을 염두에 둔다면, 의학 계통의 차이 또는 인용 상의 오류라기 보다는 음양오행 이론을 토대로 성립된 기존 중국 의학과 인도로부터 유래한 불교 의학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해 보인다.
  • 풍병(風病)은 여름이면 발동하고, 열병(熱病)은 가을이면 발동하며, 등분병(等分病)은 겨울이면 발동하고, 폐병(肺病)은 봄이면 심해진다[41].

8권본에 실려 있는 위의 문장에 대해, 원효는 “폐장은 금을 주관하는데 목의 적(賊)이 되므로 봄에 목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때가 되면 폐병이 심해지는 것이다[42]”라고 풀이했다. 오행론의 대표적인 논리 중 하나인 상극(相克)설을 빌어[43] 계절에 따른 질병 발생 여부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행 속성에 의거하여 화와 관련된 병증을 보이는 열병을 오행 중의 화에, 한열의 기운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등분병을 토에, 폐에서 병증이 발현되는 폐병을 금에 배속시킬 경우 ‘화극금(火克金)’으로 인해 열병은 가을에 발동하고[44], ‘토극수(土克水)’로 인해 등분병은 겨울에 발동하며[45], ‘금극목(金克木)’으로 인해 폐병이 봄이 되면 심해진다는 오행 상극 관계에 의거한 설명이 가능해진다[46]. 그러나, 풍병이 여름에 발동한다는 문장은 상극이 아닌 ‘목생화(木生火)’의 상생 관계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불일치 탓인지는 몰라도 『금광명경현추』 중에 이에 대한 원효의 주석은 누락되어 있다.
질병 치료 방법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원효는 오행에 배속된 오미의 논리를 끌어오고 있다. “폐병은 수(水)의 지나침으로 생기지 않는 것이 없다. 수의 본성은 차갑다. 그러므로 열로써 치료하는 것이다. 매운 맛은 금의 맛이다. 폐장이 바로 그 주인이므로 서로 돕는다. 폐장이 허약해져 병이 발생했으므로 기름진 것으로 보완한다[47].” 이 문장에서 보이는 수의 성질은 차고, 매운 맛은 금의 맛이다, 폐장은 금의 주인이다 등의 표현은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대립된 것으로 치료한다[48]”는 원효의 또 다른 설명과 마찬가지로 오행 이론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폐장이 허약해져 발생한 질병에 끈적한 성질의 것으로 보충한다[49]”, “끈적한 성질의 것은 폐장의 문제에 대처한다[50]”, “단 맛은 대부분 차가우므로 열을 치료할 수 있다[51]” 등의 표현은 기존 오행 이론과 구별된다. 『황제내경』 계열 서적 중에서는 끈적한 성질(薤)을 오미 중에 배속하고 있지 않으며, 단 맛(甘)은 매운 맛과 함께 발산하는 양(陽)의 성질을 지녀 열을 내리는 것이 아닌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활용된다(段逸山, 2001: 177)[52].
불교 의학을 대표하는 경전인 『불설불의경』은 첫머리에서 “사람의 몸은 본래 네 가지 종류의 병이 있는데, 풍이 증가하면 기가 일어나고, 화가 증가하면 열이 일어나며, 수가 증가하면 한이 일어나고, 토가 증가하면 힘이 강해진다. 본래는 네 가지 병이었으나 사백사 가지의 병을 일으키게 된다”며 지·수·화·풍, 사대 간의 평형 관계가 깨질 경우 질병이 발생한다라고 설명한다[53]. 왕쥔종(王俊中)이나 꾸지아똥(鱹嚛氆) 등의 견해에 따르면 불교의 사대설은 원소 조성에 대한 설명에 치우쳐있는 반면 중국의 오행설은 원소 간의 상생 상극 관계를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으며, 불교 의학의 병리 기전 설명 역시 기본적으로는 중국 의학의 오행 ‘상생상극’ 학설과 유사했지만 중국 의학에 비해 사대불순설(四大不順說)에 대한 분석이 깊지 않고 사대 사이의 변증이나 상호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王俊中, 2003: 32; 顾加栋, 2014: 59)[54]. 『금광명경』 중에 기재된 폐병, 열병, 등분병의 발병 기전을 각각 ‘금극목(金克木)’, ‘화극금(火克金)’, ‘토극수(土克水)’의 오행 상극 이론을 활용해 설명하고 있는 원효의 접근 방식이 『황제내경』이라고 하는 특정 서적에서 유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의학 이론이 음양오행론에 기반을 둔 『황제내경』 계통의 의학 논리와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불교 의학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수·화·풍의 사대가 근간을 이루고 있던 불교 의학이 유입되면서 목·화·토·금·수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던 기존 의학 이론과 차이점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 결과 상호 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원효보다 앞서 『금광명경』을 주석했던 지의는 596년에 편찬한 『마하지관(摩訶止觀)』 중에서 오장 중심의 의학과 사대 중심의 의학, 『황제비법(皇帝秘法)』 중의 오행 상생 및 상극설 등을 소개하고 사대불순(四大不順)으로 발생하는 화(火), 수(水), 풍병(風病)의 병리기전을 오행론의 논리로 설명하고자 했다[55]. 그리고 수당대의 중국 의가 소원방(巢元方)과 손사막(孫思邈)은 사대 중의 하나인 풍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 사백사 가지에 달하나 총괄하자면 황풍(黃風), 청풍(靑風), 적풍(赤風), 백풍(白風), 흑풍(黑風)의 다섯 가지를 넘어서지 않는다며 질병의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사대와 오행을 결합시키고 있었다(巢元方, 1991: 73; 孫思邈, 1998: 328-329; 蔡景峰, 1986: 18; 申俊ꎔ, 2001: 76). 아마도 원효는 위의 선행 연구를 토대로 사대 중심의 병리 기전과 치료 방법까지도 오행론 중심으로 회통시키며 한발 더 나아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원효의 이와 같은 성과는 후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원효보다 활동 년대가 조금 늦었던 신라 승려 경흥이나 승장의 경우, 8권본이나 10권본 심지어 원효의 주석까지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오행과 사대의 결합을 시도하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흥의 경우 질병 발생에 대해 “사대가 조화로움을 잃게 되면 간장과 폐장에 손상을 입게 된다. 제근(諸根)에 병이 발생한 것은 내인(內因)에 의한 것으로 관음이 와야지만 치료할 수 있다[56]”, “때의 변화에 따라 사대가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는데, 약으로 몸을 자양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병이 발생하게 된다[57]”는 불교 의학의 일반적인 논의 만을 제시했다. 승장의 경우 몸의 생성과 음식물 소화 과정에 대해 “음식이 배로 들어오면 위장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물러나서 대소변이 되고, 두 번째는 미계(味界)에서 혈분(血分)과 육분(肉分)으로 변하게 된다[58]”라고 하여 조금 더 구체적인 의학 지식을 소개했고, 약물인 가리륵에 대해서도 “여섯 가지 맛, 곧 단 맛·매운 맛·쓴 맛·신 맛·짠 맛·담담한 맛(甘辛苦酢鹹淡)을 모두 가지고 있고, 서역의 치료법에서는 모든 약 속에 이 과일이 들어간다[59]”며 여섯 가지 맛을 지닌 가리륵에 주목했지만, 음양오행 의학 그리고 불교 의학 간의 소통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3. 풍·열·폐병의 처치법에 대한 원효 그리고 경흥의 접근

질병의 처치법에 대해 8권본은 “좋은 의사가 있다면 사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3개월간 조리시킴으로써 육대(六大)를 조화시키고 병에 따라서 음식과 탕약을 제공할 것이다[60]”라는 논의와 함께 “폐병에는 봄에 기름지고 끈적하며 맛은 맵고 성질이 뜨거운 것을 복용한다[61]”, “열병은 설사시키는 약을 복용해야 하므로 가리륵을 복용한다[62]”, “폐병에는 마땅히 먹는 대로 토하게 하는 약을 복용해야한다[63]”는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불교의 한 갈래인 밀교(密敎)에서는 육대를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식(識)이라고 칭한다(李良松, 2014: 12). 그러나, 원효는 “부(腑)가 장(臟) 보다 크므로 여섯 가지 큰 것(六大)라고 이야기한 것이다[64]”라며 의학적인 내용에 치우친 주석을 달았으며, 질병의 기전 및 처치법과 관련해서도 의학 저작을 기반으로 직접적이고도 실제적인 주석을 달았다.
  • 폐장이 허약해져 발생한 질병은 끈적한 성질의 것으로 보충한다[65].

  • 열기가 안에서 뭉쳐 있다면, 설사시키는 방법으로 씻어서 제거한다[66].

  • 흉격 위에 담(痰)이 있다면 토하는 방법으로 제거한다[67].

원효의 설명은 『금광명경』 「제병품」의 기사를 『황제내경』을 비롯한 중국 의서의 의학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지의나 길장의 주석, 예를 들어 “여름에는 모공이 열리므로 기름지고 끈적한 것으로 윤기 있게 채워 막아 풍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짠 맛과 신 맛 그리고 뜨거운 성질은 수(水)를 없애 몸을 단단하고 충실하게 한다. 풍허(風虛)를 치료할 때는 뜨거운 음식을 먹어 땀을 흘림으로써 풍을 밖으로 끌어낸다[68].”, “폐장에 풍과 수가 함께 들어왔다면 토하게 하는 것이 좋다[69]”, “열병이 가을에 발생하는 것은 가을이면 모공이 막히고 열이 안으로 숨어들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갑고 단 맛을 지닌 것은 바로 소유(蘇乳) 등이며 열을 치료할 수 있다[70]”, “열의 기세가 아직 다하지 않아 씻어내고자 할 때는 가슴과 배를 치료해야 하므로 설사시키는 약을 복용한다[71]” 등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효의 경우 두 주석가에 비해 ‘폐허(肺虛)’, ‘열기내결(熱氣內結)’, ‘격상유담(鼭上有痰)’ 등 의서 중에서 확인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그가 어느 정도의 전문 의학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첫 번째, ‘끈적하다(薤)’는 표현으로 약물의 성질이나 맛을 설명하는 내용은 『황제내경』, 『신농본초경』 등의 중국 의학 저작에서는 잘 살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끈적한 것으로 폐장을 보한다는 내용 역시 찾아보기 힘들어 불교 의학의 논의를 그대로 가져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폐병을 둘로 구분하여, 수의 기운이 심해져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뜨거운 성질을 지닌 매운 맛으로 치료하고, 폐장이 허약해져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끈적한 것으로 보완한다는 설명은 『황제내경』 계열 의서가 질병을 구분하는 중요 관점 중의 하나였던 허실(虛實)의 구분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72].
두 번째, 열기가 안에서 뭉쳐있다면 설사시키는 방법으로 씻어서 제거한다는 표현은 “장위를 씻어내려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 것이 들어오게 한다. 수곡을 소통시키고 뱃 속의 기운을 조절하며 음식을 소화시킨다... 장위 간에 열이 뭉쳐 있는 것을 제거한다[73]”는 도홍경(陶弘景, 456-536)의 『본초경집주(本草經集註)』 대황(大黃) 효능 설명 중에서 확인된다. 대황은 마황, 석고, 부자 등과 함께 동한 대에 편찬된 전문 임상 의학 서적 『상한론』에서 소개된 주요 약물이었으며 대변을 소통시키기 위해 활용됐던 맛은 쓰고 성질은 차가운 대표적인 하제(下劑)였다(彔思邈, 1998: 221-222). 따라서 원효 역시 대황의 효능을 숙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빌어 체내 열기의 치료 방법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659년에 편찬된 관찬 본초 서적 『신수본초(新修本草)』에서는 가리륵(訶梨勒)을 처음 채록해 그 효능을 냉기를 주로 처치하며 가슴과 배가 부풀고 그득할 때 소화되지 않고 오랫동안 뱃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제거한다라고 기술했다(蛊敬, 1981: 358). 원효가 가리륵을 복용할 것을 권하는 『금광명경』 원문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신수본초』를 인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해당 서적이 입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74].
세 번째, 흉격 위에 담(痰)이 있다면 토하는 방법으로 제거한다는 원효의 주석과 가장 유사한 내용은 수대의 관찬 의서 『제병원후론』 중에 등장한다. 『제병원후론』 「상한취토후(傷寒取吐候)」, 「시기취토후(時氣取吐候)」, 「온병취토후(溫病取吐候)」 등에서는 모두 병이 흉격에 있을 경우 토하게 하면 나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문장을 게재하고 있는 것이다(巢元方, 1991: 229, 288, 328). 『황제내경』 등의 의학 경전에서는 몸의 윗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구토시킨다거나 속이 그득하다면 그것을 쏟아내도록 한다는 등의 개략적인 표현 만이 소개되고 있음을 감안해보면(段逸山, 2001: 179), 질병의 위치나 치료 대상, 치료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원효의 의학 지식이 『제병원후론』과 같은 후대의 임상 의학 서적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금광명경』 8권본에서는 ‘폐병(肺病)’일 경우 토하게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원효는 흉격 위에 ‘담’이 있다면 토하게 한다로 변형하여 풀이하고 있다. 이는 담무참이 폐병으로 풀이했던 ‘카파(kapha)’가 지의, 길장 등의 주석 그리고 진제(眞諦)의 한역 『사제론(四諦論)』 이후 담(痰) 또는 담음(痰穅)이라는 번역어로 유통되고 있었으며(遠藤次铉 外, 1993: 335), 원효 역시 폐병과 담과의 구별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흥의 경우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이미 효과를 거두었더라도 병이 나은 뒤에 보양(補養)하는 약을 써야 한다”는 치료 후 보양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한 주석이 전해지고 있으나[75], 승장의 관련 주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4. 『금광명경』 중의 약물과 경흥 그리고 승장의 주석

4권본에서는 풍병이라면 끈적한 타락(蘇薤)을 복용하고[76], 열병이라면 설사시키는 가리륵을 복용하며, 세 가지 요소가 균일하게 병을 일으킨 등분병일 경우에는 단 맛, 매운 맛, 그리고 타락의 3가지 묘약을 복용하고, 폐병이라면 토하도록 하는 약을 복용할 것을 제시했다[77]. 그리고 10권본에서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가리륵과 함께 세 가지 과일(三果), 세 가지 매운 음식(三辛), 그리고 설탕(沙糖)·꿀(蜜)·타락(蘇乳) 등이 제시됐다. 8권본을 주석한 지의나 길장은 약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10권본에 앞서 659년에 편찬된 관찬 본초 서적 『신수본초』는 가리륵 외 세 가지 주요 과일로 꼽히는 엄마륵(奄摩勒), 비리륵(毘梨勒), 세 가지 매운 음식 중 중국에서 나지 않는 호초(胡椒), 그리고 설탕(沙糖) 등에 대한 정보를 채록해 인도 및 주변 지역으로부터 새로운 약물들이 유입되고 또 활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蛊敬, 1981: 339, 359, 448)[78]. 실제 송대 의가 당신미(唐愼微)의 『증류본초(證類本草)』 중에는 정관(貞觀) 년간에 당태종(唐太宗)이 설사병에서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하다가 호위 무사가 올린 우유에 끓인 필발(裸撥)을 복용하고 나서야 효과를 보았다는 『당태종실록(唐太宗實錄)』 중의 기사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唐愼微, 1976: 228-229).
계절 이해, 병리 기전, 치료 방법 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했던 원효였지만, 개별 약물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저 단 맛은 열병을 치료하고, 신 맛은 풍병을 치료하며 끈적한 것으로는 폐병을 치료한다는 수준의 주석 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79]. 약물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은 10권본 등장 이후에 이루어졌다. 신라 승려 경흥과 승장 역시 그 대열에 동참했다. 먼저 경흥은 약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시했다. 「제병품」에서는 가리륵의 본래 음은 가리도가(訶梨蝷迦)라고 말하면서[80], 세 가지 과일로 가리륵, 아마라(阿摩羅), 비혜륵가(鮙醯勒迦)[81], 세 가지 매운 음식으로 필발(畢鉢), 건강(乾薑) 등을 꼽으며 관련된 간단한 정보를 제공했을 뿐이었지만[82], 「사천왕호국품(四天王護國品)」에서는 안식향(安息香)의 원산지를 소개한 뒤 용뇌향(龍腦香)의 산지, 산출 나무, 채취 방법, 형태, 색깔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83]. 그리고 「대변재천녀품(大辯才天女品)」에서는 목욕에 사용되는 32가지 향기 나는 약재(香藥), 영릉향(零陵香)·백교(白膠)·곽향(藿香)·질지(叱脂)·애납(艾納)·마근(馬芹)의 산지, 파율고(婆律膏)·세두구(細豆褭)의 형태, 감송(甘松)의 색깔, 위향(葦香)·모근향(茅根香)의 구별점 등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84]. 한편 승장은 일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 중의 왕이라는 가리륵에 대한 10권본의 서술에 대해[85] 서역에서 이야기하는 맛의 여섯 가지 맛, 곧 맛·매운 맛·쓴 맛·신 맛·짠 맛·담담한 맛이 이 하나의 과일에 간직되어 있다며[86] 부연 설명했다. 이어 세 가지 과일을 가리륵, 아무라가(阿無羅迦), 비덕가(勮掮迦)라고 칭한 뒤, 아무라가의 과거 표기법을 바로 잡고, 비덕가는 아무라가보다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87]. 경흥이나 승장이 소개한 약물 정보가 불경 중의 의학 내용을 설명하는 단순한 주석 수준에 머물렀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재석의 연구에 따르면, 현전 『대일본고문서(大日本古文書)』 중에는 752년 윤 3월 일본으로 건너간 700여명의 신라 사절에게서 일본 측이 구입한 약물 종류가 기재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가리륵, 필발 등도 포함되어 있다(최재석, 1993: 8). 8권본과 10권본 『금광명경』 중에서 질병 치료 약물로 소개됐던, 신라에서는 산출되지 않는, 세 가지 과일 그리고 세 가지 매운 음식 중의 일부가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756년 10월부터 860년 8월까지의 정창원(正倉院) 문서 중에는 가리륵, 필발 그리고 호초가 질병 치료를 위해 각각 9차례, 1차례, 1차례씩 출납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최재석, 1993: 21-22). 불교 경전을 둘러싼 당대의 의학 정보는 질병을 처치하기 위한 실제적인 약물 지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경흥이나 승장의 주석 중에서는 원효의 그것과 달리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흥의 경우 “(3가지) 기운의 증감에 맞추어 약으로 몸을 자양하지 못하면 반드시 병이 발생한다[88]”,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이미 효과를 거두었더라도 병이 나은 뒤에는 보양(補養)하는 약을 써야 한다[89]”는 식의 일반적인 의학 소양은 지니고 있었지만, 그 지식의 출처는 “일대가 어그러지면 일백일 가지의 병이 발생하고 사대가 모두 어그러지면 사백사 가지의 병이 생긴다[90]”의 표현에서 드러나듯 불교 의학에 치우쳐져 있었다. 심지어 그는 “제근(諸根)에 병이 발생한 것은 내인(內因)에 의한 것으로 관음이 와야지만 치료할 수 있다[91]”, “감로는 불사약이다. 중생도 수명이 다하지 않았고 부처도 수명이 다하지 않았으니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감로의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하자[92]”는 식의 불교의 종교적 가르침에 의탁한 치유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인도와 관련된 풍부한 정보를 지니고 있었던 만큼 10권본에서 새롭게 소개된 인도 의학의 팔술(八術)에 대해 주석을 가하기도 했다. 팔술은 본래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의 8개 분지로, 인도 고대 의학을 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의정이 『남해기귀내법전』 중에서 묘사한 팔의(八醫)를 분석한 천밍에 따르면 팔술은 첫 번째, 예리한 의료 기구, 침 등을 사용하는 외과수술(śālākya, 針刺首疾), 두 번째, 목구멍 이하 전신 질환 치료(kāya, 身患), 세 번째, 귀신 들린 병의 치료(bhūta, 鬼稯), 네 번째, 신체 내외의 창상 치료(śalya, 諸瘡), 다섯 번째, 중독 증상의 치료(agada, 惡揭陀藥), 여섯 번째, 수명 연장을 위한 양생술(vayas, 長年方), 일곱 번째, 태아 및 소아과 질병의 치료(bāla, 童子病), 여덟 번째, 장양(壯陽)의 방법(bīja, 足身力)을 가리킨다(陳明, 2002: 550-555). 이에 대해 승장은 의정의 번역을 반복하며 외과 수술을 침으로 찌르는 것이다라고 간단히 주석했지만[93], 경흥은 첫 번째, 병을 아는 것, 두 번째, 병의 원인을 아는 것, 세 번째, 병의 형상을 아는 것, 네 번째, 병의 예후를 아는 것, 다섯 번째, 병이 발생할 때를 아는 것, 여섯 번째, 약에 대해서 아는 것, 일곱 번째, 약을 활용한 치료에 대해 아는 것, 여덟 번째, 약을 금하는 경우를 아는 것이라는 설명을 남겼다[94]. 경흥의 주석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10권본 『금광명경』을 통해 새로운 불교 의학 지식이 유입되자마자 신라에 거주하고 있던 당대의 고승 경흥이 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Ⅳ. 맺음말

『금광명경』 「제병품」은 인도 승려 담무참이 한역한 4권본, 보귀가 편집한 8권본, 그리고 새로운 한역을 시도한 10권본 『금광명경』 중에 수록되어 있다. 8권본 「제병품」은 담무참의 한역을 거의 그대로 옮기고 있지만, 10권본 「제병품」 중에는 의정이 입수한 인도 의학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전해져오는 『금광명경』 「제병품」의 주석들을 검토한 결과 신라 승려 원효의 경우 10권본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그보다 늦게 활동한 경흥과 승장은 10권본을 입수했으며 그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광명경』 「제병품」 중에 담긴 인도 의학에 대한 원효의 주석은 특별히 눈길을 끈다. 그는 한역된 불교 경전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중국 의학 이론을 기반으로 불교 의학의 논의마저 꿰어내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불교 의학의 사대 이론을 중국 의학의 오행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중국의 승려, 지의에 의해 먼저 이루어졌지만, 원효는 「제병품」에서 논의되던 계절에 따른 지·수·화·풍, 사대의 변화와 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풍·열·폐·등분병 등의 질병 발생과 치료 내용 전반을 동아시아의 계절 변화에 입각한 오행 이론에 의거하며 오장, 오미, 오색 등의 오행 배속 이론과 오행상극설 등을 중심으로 일관성 있게 설명해냈다. 인도와 중국의 지역에 따른 계절 차이, 한역 과정 중에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오류, 사대 이론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 특징 등으로 말미암아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관련 주석 중의 기재를 토대로 불교 의학과 중국 의학 간의 특징을 분별해 핵심을 잡아낸 뒤, 오행론을 중심으로 한 두 의학의 화해, 곧 화쟁(和諍)을 시도했다. 원효의 이와 같은 접근은 이전 주석가들에게서 보이지 않던 과감한 시도였을 뿐 아니라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불교 의학, 중국 의학 간의 혼란을 극복해내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광명경』에 대한 주석을 집록한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원효는 『금광명최승왕경현추』 중에서 원효의 주석을 유력한 설명의 하나로 받아들여 보전하기에 이르렀다.
원효 사후 10권본을 입수했던 경흥과 승장은 뛰어난 산스크리트어 실력을 기반으로 「제병품」을 비롯한 『금광명경』 중의 약물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4권본이나 8권본에서는 보이지 않던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의 팔술(八術)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정창원 소장 문서 중의 약물 출납 기록은 불교 경전 중에 소개됐던 약물들이 실제 신라인들의 질병 치료를 위해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원효를 비롯한 신라 승려들의 의학적 식견은 주석의 형태로만 존재할 뿐 어떻게 응용되었는지는 여전히 그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제병품」 중에 남겨져 있는 신라 승려 원효와 경흥, 승장의 주석은 당대 신라의 지성계가 『황제내경』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의학은 물론 불교 의학 그리고 불교를 매개로한 인도 의학 관련 논의마저 실시간으로 공존하던 현장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 수준 역시 상당히 깊어 그 봉우리를 형성한 통일신라시대 의학적 토대가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한다.

Notes

1) 신라 의학에 대한 선행 연구로는 김두종, 三木榮, 이현숙, 여인석, 신동원 등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김두종은 신라 의학이 삼국 시대에는 중국 의학의 토대 위에 인도 의설을 접촉하면서도 선행적 고유 문화의 전통을 버리지 않은 독자적 경험법방을 가졌으나, 통일 이후 우세한 수당 의학이 밀려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 권내에서 발전적 기초를 닦아내게 되었다고 서술했다(金斗鍾, 1981: 4, 50-51, 65, 77). 신라 불교 의학에 대해서도 『佛醫經』을 비롯한 인도 불교 의학이 수입되어 승려 의학이 왕성해졌지만, 승의들에 의해 좌우된 것은 아니었다며 한국 의학의 독자성을 강조했다(金斗鍾, 1981: 73, 78). 三木榮는 『日本書紀』 등 일본 저작 중에 남겨진 신라 의학 관련 기술을 살펴본 뒤 한반도 고유의 경험 의방과 과학으로서의 중국 의학, 불교 전적에서 이야기하는 醫說·醫方 또는 부처의 힘에 기댄 주금 및 기도, 도교의 방술, 그리고 원시 巫術이 서로 기대어 당시의 의학과 의방을 형성했다고 개괄했다(三木榮, 1962: 40). 근래에 신라 의학에 대한 전면 분석을 시도한 이현숙은 『大同類聚方』 중에 남아 있는 신라국 鎭明方을 분석해 약물명, 처방 구성 등을 근거로 5세기 초반 신라 고유의 전통 의방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도 추정했다(이현숙, 2001: 88, 94). 『大同類聚方』은 위작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 이현숙은 전체가 위작은 아닐 것이며 鎭明의 처방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현숙, 2001: 88). 이외에도 이현숙은 5세기까지 신라에서 왕이나 왕족이 병에 걸리면, 巫醫가 치료했지만 불교 의학이 전래되면서 그 역할이 무의에서 僧醫로 교체되었다라고 서술한 뒤, 新羅法師方, 新羅法師祕密方 등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6세기 후반 신라 사회에 密敎가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이현숙, 2009: 158-162, 174). 반면 신동원은 삼국 및 통일 신라 시대에는 무당(巫), 승려, 그리고 의원(醫)이 치병자로서 공존했지만, 의원의 양성과 활동이 국가 제도로 이루어진 이후 국가의 후원을 받은 의원들이 경쟁자를 누르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왔다고 논설했다(신동원, 2013: 282-293). 선행 연구를 통해 金武, 法惕, 流觀, 忠談, 鎭明, 祿眞 등 신라 및 통일 신라의 의가들이 발굴됐지만 간단한 행적 밖에 남아있지 않거나 약물, 처방 등 편린 기록들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신라 의학 전반을 구성해내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2) 경흥의 생몰년대 추정은 한태식의 의견을 따랐다(韓泰植, 1991: 194).

3) 陳明은 불교의학에 대해 인도 고대 아유르베다의 기초 위에 불교 교의를 지도 사상으로 삼아 중국 전통 의학의 이론과 임상 특징을 흡수하여 형성된 하나의 비독립적 의약학 체계로 인도불교의학과 중국불교의학으로 나뉘어진다고 정의내린 바 있다(陳明, 2002: 194). 이 논문에서는 인도불교의학과 중국불교의학을 구분하지 않으며 불경 안에 들어온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뿐 아니라 밀교, 주술적 방법, 독경 등의 방법 등까지도 포괄하여 불교 의학이라고 칭한다. 아울러 중국 대륙에서 전국시대로부터 후한에 걸쳐 『黃帝內經』, 『黃帝八十一難經』, 『傷寒雜病論』 등의 고전에 의해 체계의 전형을 완성한 의학을 중국 의학이라고 칭한다(야마다게이지, 2016: 11).

4) 논문 투고 이후 심사위원으로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경전 “Charaka Saṃhitā (짜라까쌍히따, 遮羅迦集)”를 비롯한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전반에 대한 이해 및 관련 연구에 대한 검토가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연구의 주안점은 『금광명경』 「제병품」을 중심으로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유입된 불교 의학과 그것을 받아들인 중국 의학과의 관련성을 밝히는 것에 있었으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이 주된 검토 대상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과 중국 의학의 공통점 및 차이점에 등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추후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5) 양한 시기 『黃帝內經』, 『神農本草經』, 『黃帝八十一難經』, 『傷寒論』 등의 주요 의학 경전이 완성됐다. 수당 대에는 중국 의학의 핵심 경전으로 손꼽히는 『諸病源候論』(610년), 『千金方』(652년), 『新修本草』(659년), 『千金翼方』(682년), 『外臺祕要』(752년) 등이 편찬됐다. 원효 생존 당시였던 676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통일됐으며, 원효 사망 이후, 692년, 통일신라는 『本草經』, 『甲乙經』, 『素問經』, 『鍼經』, 『脈經』, 『明堂經』, 『難經』 등의 중국 의서로 의학을 교육할 것을 결정했다. 주지하다시피 원효는 요석궁 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설총을 두었을 정도로 신라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도반이었던 義湘을 통해 중국의 불경도 어려움 없이 입수하고 있었다. 원효를 비롯한 당대의 신라 승려들이 어떤 의서를 소장하고 살펴보았는지 확정할 수는 없다. 중요 의서들과 관련된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사실, 활발히 이루어졌던 중국과 한반도의 교류 등을 감안할 때 위의 서적들을 검토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신라 시대 의학에 부합된 논문 서술을 위해 『黃帝內經』의 경우 北宋 校正醫書局의 교정을 거치지 않은 皇甫謐(215-218)의 『鍼灸甲乙經』, 全元起(5세기 후반- 6세기 상반) 注本 『黃帝內經』, 隋代 楊上善의 『黃帝內經太素』를 활용했다(皇甫谧 编集, 2011; 段逸山 著, 2001; 楊上善, 2005). 불경 원문은 大藏經テキストデータベース研究会에서 『大正新脩大藏經』을 기반으로 웹서비스 중인 SAT大正新脩大藏經テキストデータベース2007版을 활용했다. URL은 “http//21dzk.l.u-tokyo.achttp://21dzk.l.u-tokyo.ac.jp/SAT/ddb-sat2.php(2016년 9월 30일 접속)이다.

6) 『금광명경』 현대 판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의정의 한역과 티벳본을 함께 실은 J. Nobel의 독일어 교정본(1937)과 코탄본을 영어로 번역하고 산스트리트 본을 함께 실은 P. O. Skjӕrvø의 편집본(2004)이다(심재관, 2016b). 『금광명경』의 성립과 역대의 한역 및 주석, 그리고 최근 연구 동향은 일본의 藤谷厚生와 烏力吉吉日嗄拉의 연구가 잘 정리하고 있다(藤谷厚生, 2005, 1-28; 烏力吉吉日嗄拉, 2014: 3-31). 인도 의학 전반에 대해서는 廖育群이 잘 정리해두었으며(廖育群, 2003), 아유르베다 의서 Suśruta-Saṃhitā·Sūtrasthāna(수슈르따상히따, 妙聞集)는 서지영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었고, Siddhasāra(싯다하사라, 醫理精華)는 陳明에 의해 충실히 연구되었고 또 중문으로 번역되었다(서지영, 2010; 陳明, 2002). 인도 및 중국 불교 의학에 대해서는 二本柳賢司, 川田洋一, 顾加栋, 薛公忱, 陳明 등이 단행본으로 개괄했으며(二本柳賢司, 1994; 川田洋一, 1975; 顾加栋, 2014; 薛公忱, 2002; 陳明, 2013), 불교 의학의 사대 이론과 중국 의학 중의 오행 이론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蔡景峰, 王俊中, 申俊龙, 黃國淸 등의 성과가 돋보인다(蔡景峰, 1986: 16-23; 申俊龙, 2001: 73-78; 王俊中, 2003, 19-39; 黃國淸, 2009: 31-50). 불교 의학 유입과 당대 중국 의학의 전반적인 흐름은 范家偉와 黃子瑜 등의 연구를 통해 그리고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중의 안과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龍樹菩薩眼論』의 형성 및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의학계의 수용 과정은 김성수·강성용의 연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范家偉, 2004; 黃子瑜, 2016; 김성수·강성용, 2013: 221-266).

7) 『금광명경』의 최초 한역본인 담무참의 4권본은 「序品」·「壽量品」·「懺悔品」·「讚嘆品」·「空品」·「四天王品」·「大辯天神品」·「功德天品」·「堅牢地神品」·「散脂鬼神品」·「正論品」·「善集品」·「鬼神品」·「授記品」·「除病品」·「流水長者品」·「捨身品」·「讚佛品」의 18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六根, 六識, 四大, 五蘊, 十二因緣이 모두 ‘空’하다는 ‘空’에 대한 풀이, 악을 몰아내고 선을 일으키는 참회 사상, 임금(王)·나라(國)·불법(法)이 하나라는 강렬한 국가 의식, 대승보살의 전범과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가르침을 담은 放生舍身 사상 등 다소 이질적인 내용들이 산재되어 있다(林鸣宇, 2004: 170; 심재관, 2016b). 그러나 『금광명경』 각각의 품들이 집중적으로 또는 서로 관련지어가며 주장하고 있는 것은 경문(sūtra)이 영원한 부처의 몸이라는 것과 이것을 강론하는 것이 나라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방안이라는 것이다(Jonathan A. Silk, etc., 2015: 255). 『금광명경』은 그 중에 담긴 호국 사상으로 인해 중국, 조선, 일본, 티벳, 몽고 등의 왕실로부터 호국 경전으로 중시되며, 『仁王經』, 『法華經』과 함께 국가의 위난과 재액을 소멸하며 국가를 태평하고 부강하게 하는 護國三部經으로 손꼽혔다(조준호, 2012: 17). 한편 일반 민중들에게는 참회 사상으로 널리 유포됐다(周敏惠, 2003: 180-181).

8) 『三國史記』 卷第八 「新羅本紀」 第八 聖德王 三年 春三月(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setId=620538&position=1, 2016년 9월 30일 접속).

9) 金相鉉이나 全東赫 등도 金思讓이 가져온 『最勝王經』이 10권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金相鉉, 1994: 260; 全東赫, 1999: 57; 金相鉉, 2000: 214).

10) 최근 Salguero는 『금광명경』 「제병품」 담무참과 의정의 한역본을 재차 영역하고 해설해 발표했다(C. P. Salguero, 2013: 21-43).

11) 4권본과 10권본의 한역 대상이었던 산스크리트어본 『금광명경』 자체가 변화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해당 논의는 연구자들의 현재 능력을 벗어나기에 후일을 기약하고자 한다. 『금광명경』에 대한 신라 學僧들의 章疏로는 원효, 경흥, 승장, 太賢, 道倫 등의 것이 알려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저술은 거의 없다. 일본 승려 明一(728-798), 常騰(740-815), 願曉 등이 후대에 편찬한 『金光明經最勝王經註釋』, 『金光明最勝王經註』, 『金光明最勝王經玄樞』 등을 통해 원효, 경흥, 승장 등이 남긴 편린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안계현은 승장의 疏를 그리고 김상현은 원효와 경흥의 疏를 집일했다(安啓賢, 1964: 271-304; 安啓賢, 1966: 383-408; 金相鉉, 2000, 215-254; 金相鉉, 1994, 263-284). 경흥 및 승장의 일부 疏는 위의 논문에서 인용할 예정이다.

12) 심재관의 요약을 토대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심재관, 2016a: 17-18).

13) Hino Eun은 Suśruta-Saṃhitā가 아닌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경전 Charaka Saṃhitā의 계절에 따른 질병 발생 및 치료법과 『금광명경』의 내용을 비교한 뒤 『금광명경』의 내용이 아유르베다 의학과 다른 중국의 독특한 내용이거나 아유르베다 의학의 변용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E. Hino, 2015: 1271-1275).

14) 『황제내경』 중에 수록된 오행론 그리고 그것에 의거한 천인상감 사상에 대해서는 야마다게이지의 설명 참조(야마다게이지, 2016: 491-522).

15) 죠셉니담은 『황제내경소문』을 편찬해낸 의학 그룹이 齊나 燕과 같은 중국 동해안에서 유포되고 있던 오행설과 관련된 여러 관념들을 체계화하여 확립시킨 추연과 그의 학설을 계승한 음양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죠셉니담, 1986: 327-368).

16) 『金光明經』 T0663_.16.0352a02-T0663_.16.0352a04.

17) 『金光明經文句』 T1785_.39.0080c08-T1785_.39.0081a11.

18) 『金光明經疏』 T1787_.39.0172b01-T1787_.39.0172b06.

19) 『金光明經文句』 T1785_.39.0081a11-T1785_.39.0081a22; 『金光明經疏』 T1787_.39.0172a25-T1787_.39.0172b07.

20)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9c01-T2196_.56.0699c04.

21) 원효의 배타적 견해 간의 다툼과 그에 대한 화해(和諍)에 대해서는 박태원의 연구 참조(박태원, 2012: 171-191).

22) 『황제내경』 중에는 오행 중의 土를 별도의 계절인 長夏로 설정할 것인가, 각 계절의 끝에 존재하는 季土로 설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혼재되어 있다(丸山敏秋, 1988: 282-286). 이와 관련해서는 全元起本 『黃帝內經』 「藏氣法時論」, 「太陰陽明表裏篇」 등 참조(段逸山, 2001: 66, 116).

23)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9c04-T2196_.56.0699c07.

24) 『金光明經文句』 T1785_.39.0081a28-T1785_.39.0081a29.智顗가 시도한 사대와 오행 간의 결합에 대해서는 川田洋一 및 이기운의 연구 참조(川田洋一, 1993: 104-108; 이기운, 2009: 287-288).

25)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17, T2196_.56.0700a19-T2196_.56.0700a20. 여름에 풍병이 발생한다는 것과 관련된 원효의 주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2. 풍·열·폐병의 발병 기전에 대한 원효의 이해 참조.

26) 불교 경전의 한역 과정 중의 번역어 선택에 대해서는 Salguero의 선행 연구 참조. Salguero는 vata, pitta, kapha가 각각 風·熱·痰으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며, 번역자들이 원래의 의미에 정확히 합치되는 글자를 선택했다기보다 독자들이 손쉽게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Salguero, 2011: 55-71).

27)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16-T0664_.16.0395a17. “隨時歳中, 諸根四大, 代謝増損, 令身得病.”

28)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19-T0664_.16.0395a21. “多風病者, 夏則發動. 其熱病者, 秋則發動. 等分病者, 冬則發動. 其肺病者, 春則增劇.”

29)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25-T0664_.16.0395a27. “飽食然後, 則發肺病, 於食消時, 則發熱病, 食消已後, 則發風病.”

30)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02. 사대 또는 오대원소와 삼체액의 변화로 발생하는 風·熱·肺(水, 痰)病의 관계에 대해서는 陳明의 분석 참조(陳明, 2002: 568-569).

31)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03. “曉云... 木主於肝, 膽爲其腑.”

32)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9c24. “祥即曉云, 如春木王, 其味是酢. 酢不宜食, 損肝成病.”

33)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28. 曉云. 等分是地. 通三時發. 肺病是水. 熱病是火. 風是風大. 故言四大三時發也.

34)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22. “曉云, 肺在胸上, 飮時乃侵也.”

35)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24. “曉云, 消時火増, 故發熱也.”

36) 『황제내경』에서 논의된 음식물의 소화 과정에 대해서는 오재근의 연구 참조(오재근, 2008: 249-260).

37)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04.

38) 全元起本 『素問』 「宣明五氣」, 新校正本 『素問』 「血氣形志」, 新校正本 『靈樞』 「九鍼論」 등에서 少陽과 心主가 表裏를 이루다고 하여(段逸山, 2001: 70), 三焦의 짝이 心包임을 간접적으로 서술했을 뿐 三焦의 짝이 心包임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心包, 즉 心主가 三焦와 짝한다는 기술은 『黃帝八十一難經』 25難 중에서 확인된다(滑壽, 1995: 41).

39)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9c24-T2196_.56.0699c25.

40)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9c24-T2196_.56.0699c25. “祥即曉云... 秋即金王, 其味是辛. 辛不宜食, 損腎成病.”

41)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19-T0664_.16.0395a21. “多風病者, 夏則發動. 其熱病者, 秋則發動. 等分病者, 冬則發動. 其肺病者, 春則增劇.”

42)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17. “曉云, 肺是主金, 爲木之賊. 故春木時, 其勢増劇也.”

43) 오행론에 대해서는 정우진 및 윤창열의 연구 참조(정우진, 2016: 279-307; 윤창열, 2005, 49-78).

44)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20.

45)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22-T2196_.56.0700a23.

46)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17.

47)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07. “曉云, 肺病無由水過所成, 水性是冷, 故以熱治. 辛是金味, 肺既主故相助. 肺虚致病, 故以膩補也.” 문맥상 肺病無(不)由水過所成으로 풀이했다.

48)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14. “曉云, 冷與熱反, 故相對治.”

49)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07-T2196_.56.0700b08. “曉云... 肺虚致病, 故以膩補也.”

50)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19-T2196_.56.0700b20. “曉云... 膩對肺分.”

51)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14. “曉云... 甜味多冷, 故亦治熱.”

52) 단 맛의 약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임상 치료 사례는 熊曼琪의 설명 참조(熊曼琪, 2000: 237-238).

53) 『佛說佛醫經』 T0793_.17.0737a25-T0793_.17.0737a27. “人身中本有四病. 一者地, 二者水, 三者火, 四者風. 風增氣起, 火增熱起, 水增寒起, 土增力盛. 本從是四病, 起四百四病.”

54) 의정의 10권본에서는 8권본과 달리 봄에는 痰癊이 움직이고, 가을에는 黃熱이 증가한다고 번역하며 인도 의학 중의 계절별 발병 요인이 오행론에 입각해 해석될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金光明最勝王經』 T0665_.16.0448a20-T0665_.16.0448a22).

55) 『摩訶止觀』 T1911_.46.0106a19-T1911_.46.0108b27.

56)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8b22-T2196_.56.0698b23. “興取本義, 加云, 四大不調, 肝肺傷損. 諸根有病, 即内因故, 乃至觀音能治.”

57)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05. “興即加云, 隨此増減, 無藥資身, 必生病也.

58)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13. “莊云, 梵音阿羅沙, 此云味界. 謂飮食入腹, 在胃分爲二分. 一去退即成大小, 二味界即變成血肉分.”

59)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1a04-T2196_.56.0701a05. “莊云, 六味, 甘辛苦酢鹹淡. 彼西域法, 於諸藥中皆著此菓.” 아유르베다 의서인 Suśruta SaṃhitāSiddhasāra 모두 甘(甜)·酸·鹹(咸)·辛(辣)·苦·澀의 여섯 가지 맛을 제시하고 있다(廖育群, 2003: 114; 陳明, 2002: 320-321). 승장이 澀이 아닌 淡으로 표기한 것이 慧沼의 『金光明最勝王經疏』 중에 실려 있는 “涅槃經第四云, 六味一苦二醋三甘四辛五鹹六淡”에서 유래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60)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17-T0664_.16.0395a19. “有善醫師, 隨順四時, 三月將養, 調和六大, 隨病飮食, 及以湯藥.”

61)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24-T0664_.16.0395a25. “肺病春服, 肥膩辛熱.”

62)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a28-T0664_.16.0395a29. “熱病下藥, 服訶梨勒.”

63) 『合部金光明經』 T0664_.16.0395b01-0664_.16.0395b02. “肺病應服, 隨能吐藥.”

64)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09. “曉云. 腑大於臟. 故名六大.”

65)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07-T2196_.56.0700b08. “曉云... 肺虚致病, 故以膩補也.”

66)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c11. “曉云. 熱氣内結, 故下利蕩除.”

67)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c12. “曉云. 鬲上有痰, 故吐以遣.”

68) 『金光明經文句』 T1785_.39.0081c10. “夏月毛孔開通, 具以肥膩潤塞之, 令風不得入. 醎酢性熱能消水, 令體堅實. 治於風虛, 熱食流汗, 引風令出.”

69) 『金光明經文句』 T1785_.39.0081c19. “肺帶風水, 宜吐也.”

70) 『金光明經疏』 T1787_.39.0172c10-T1787_.39.0172c18. “熱病秋動者, 秋時毛孔閉塞, 熱伏內不通故也... 冷甜即是蘇乳等, 能治熱也.”

71) 『金光明經疏』 T1787_.39.0172c23-T1787_.39.0172c24. “熱勢未盡, 欲蕩治心腹, 故服下藥也.”

72) 虛實과 관련된 논의는 全元起本 『黃帝內經』 「通評虛實論」 참조(段逸山, 2001: 112).

73) “大黃將軍. 味苦, 寒... 蕩滌腸胃, 推陳致新, 通利水穀, 調中化食... 除痰實, 腸間結熱(陶弘景, 1994: 322).”

74) 1899년 돈황석굴에서 배면에 ‘乾封 二年(667)’이라 기재된 『新修本草』 手抄卷子本이 발견되어 편찬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서북 지구까지 전파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는 731년 遣唐使에 의해 유입되었다(尙志钧, 1981: 8-9).

75)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c03. “興云, 對病之藥, 雖復已答, 病愈之後, 宜藥補養.”

76) 소·양·말의 젖으로 마든 유제품인 타락을 의미하는 酪酥은 과거 落蘇, 洛蘇로 표기됐다(森立之, 1998:, 216). 蘇는 酥의 옛 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77) 『金光明經』 T0663_.16.0352a18-T0663_.16.0352a21.

78) 당송 대에 편찬된 본초 서적 중에 기재된 인도 약물 정보에 대해서는 陳明의 연구 참조(陳明, 2002: 149-187).

79)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b19-T2196_.56.0700b20.

80)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1a06.

81)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1a10.

82)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1a13.

83) 『金光明最勝王經註釋』 T2197_.56.0772b15-T2197_.56.0772b17.

84)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79a01-T2196_.56.0679a08. 憬興이 인도에 다녀왔다는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 당시 그를 능가할 만한 산스크리트어 실력을 소유한 자가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韓泰植, 1991: 207).

85) 『金光明最勝王經』 T0665_.16.0448b28-T0665_.16.0448b29.

86)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1a04-T2196_.56.0701a05.

87)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1a07-T2196_.56.0701a09.

88)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a05. “興即加云, 隨此増減, 無藥資身, 必生病也.”

89)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c03. “興云, 對病之藥, 雖復已答, 病愈之後, 宜藥補養.”

90)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45b07. “興云, 一大若違, 便生一百一病. 四大皆乖, 即起四百四病.”

91)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8b22-T2196_.56.0698b23. “興取本義, 加云... 諸根有病, 即内因故, 乃至觀音能治.”

92) “興師云, 久住劫數至甘露味者, 此卽神壽無盡願也. 甘露者, 不死之藥. 衆生不盡佛壽不盡故, 能令衆生得如來甘露之果(金相鉉, 2000: 228).”

93)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700c17.

94) 『金光明最勝王經玄樞』 T2196_.56.0698a20. “興云, 一知病, 二知病因, 三知病相, 四知病後, 五知病時, 六知藥, 七知藥治, 八知藥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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