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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Hist > Volume 24(3); 2015 > Article
19세기의 유행성 콜레라와 미국사회 개혁운동*

Abstract

The 19th century was the age of great reform in American history. After constructing of the canal and railroads, the industrialization began and American society changed so rapidly. In this period, there were so many social crisis and American people tried to solve these problems within the several reform movements. These reform movements were the driving forces to control cholera during the 19th century.
Cholera was the endemic disease in Bengal, India, but after the 19th century it had spread globally by the development of trade networks. The 1832 cholera in the United States was the first epidemic cholera in American history. The mortality of cholera was so high, but it was very hard to find out the cause of this fatal infectious disease. So, different social discourses happened to control epidemic cholera in the 19th century, these can be understood within the similar context of American reform movements during this period.
Board of Health in New York States made a new public health act to control cholera in 1832, it was ineffective. Some people insisted that the cause of this infectious disease was the corruption of the United States. They emphasized unjust and immoral system in American society. Moral reform expanded to Nativism, because lots of Irish immigrants were the victims of cholera. So, epidemic cholera was the opportunity to spread the desire for moral reform.
To control cholera in 1849, the sanitary reform in Britain had affected. The fact that it was so important to improve and maintain the water quality for the control and prevention of disease spread, the sanitary reform happened. There were two different sphere of the sanitary reform. The former was the private reform to improve sewer or privy, the latter was the public reform to build sewage facilities. The 1849 cholera had an important meaning, because the social discourse, which had emphasized the sanitation of people or home expanded to the public sphere.
When cholera broke out in 1866 again, the new discourse to raise the necessity of professional medical personnel. The establishment of Metropolitan Board of Heath forced to appoint trained medical people and the treatment of disease at the home moved to medical doctors who had professional knowledge and authority. In this meaning, the medical reform provided the opportunity the appearance of professionalized medical doctors.
These epidemic cholera during the 19th century, there were different reform movements in American society. The infectious disease affected development and changes of American society, the most important thing was that the problem of sanitation and public health was not only the private one, but the serious problems in society and nation. So, epidemic cholera during the 19th century provided more balanced perspective to analyze the American society in this period.

1. 머리말

미국역사 속에서 19세기는 위대한 개혁의 시대였다. 1825년에 이리 운하(Erie Canal)가 완공된 이후 대규모의 운하와 철도가 건설되면서 산업화가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뉴욕(New York)을 비롯한 대도시로 몰려들었다(Peterson, 1979: 83). 급속한 산업 화와 대량 이민 때문에 이 시기의 미국사회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여러 가지 사회적 위기들이 발생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개혁 운동이 나타났다[1].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국사회 개혁운동을 더욱 가속화시켰던 것은 바로 유행성 콜레라였다.
19세기 동안 미국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은 바로 유행성 콜레라였다. 원래 콜레라는 인도 벵갈(Bengal) 지역에서 발생했던 풍토병이었다(Mushtaq, 2009: 11). 그러나 19세기에 여러 지역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전염병 역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1817년에 벵갈에서 발생했던 콜레라는 인도 전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확산되었는데,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염병에 감염되거나 사망했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00: 39).
유행성 콜레라가 가장 먼저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때는 바로 1832년 여름이었다. 치명적인 전염병은 19세기에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뉴욕에서 처음 발생했는데,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콜레라로 인한 사망률은 50% 이상이었다(Kiple, 1999: 142). 그러나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콜레라의 발생 원인을 밝히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이 시기에 미국사회에서 지배적이었던 전염병 발생론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였는데, 한 가지는 오염된 공기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물건이나 사람으로부터 감염된다는 주장이었다(Woods, 1986: 338). 치명적인 전염병의 발생 원인을 둘러싼 미국사회의 논쟁과 사회담론은 이미 18세기부터 계속되어 왔다.
지금까지 수행되었던 유행성 콜레라 연구의 목적은 주로 전염병의 발생 원인이나 치명성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콜레라균이 발견되면서 이와 같은 연구는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주로 미생물이나 전염병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수행되었다[2]. 이와 더불어 콜레라와 관련된 역사적 연구도 상당히 진행되었는데, 19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던 콜레라를 역사적 관점과 컨텍스트 속에서 분석하는 연구 성과들이 등장했다[3]. 이와 같은 연구 성과들은 자연과학적 접근 방법을 활용하여 전염병의 원인이나 증상을 규명하는 연구 성과들과는 달리 19세기에 발생했던 콜레라가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쳤던 영향을 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 성과들은 유행성 콜레라가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주로 도덕적 타락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4]. 비록 19세기 내내 도덕적 정화를 통해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나타났을지라도, 종교적 개혁운동이라는 담론 속에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미국사회에 미쳤던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이 시기 미국사회를 단편적이고 획일화된 시각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19세기 동안 미국사회에서 나타났던 종교적 개혁운동 이외에도 여러가지 사회 개혁운동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담론의 얽힘 속에서 콜레라 통제 정책들을 분석함으로써 이 시기 미국사회를 보다 균형 잡힌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본 논문에서는 19세기 동안 발생했던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의학이 전문적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분석하고자 한다. 기존 연구 성과들은 1861년의 미국내전(Civil War)을 계기로 미국사회에서 의사의 전문화와 보건 제도의 조직화가 등장했다고 주장한다[5].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과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이미 근대 의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들을 더욱 확대시키고 미국 의학사에서 이 시기가 지니는 의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들을 충분히 반영하여 19세기 동안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에 콜레라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나타났던 일련의 개혁운동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분석은 서로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개혁운동들을 살펴봄으로써 19세기 동안 콜레라가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은 19세기의 유행성 콜레라를 중심으로 전염병과 미국사회 개혁운동의 상호작용을 살펴보고, 이 시기 미국사회를 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최초의 유행성 콜레라 : 1830년대 도덕개혁과 반(反)이민주의, 그리고 토착주의

1832년에 뉴욕에서 처음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사망률이 매우 높았지만, 콜레라의 발생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전염병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면서 콜레라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18세기와 마찬가지로 콜레라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사들은 아편을 처방하거나 사혈(瀉血)을 시행했다(Hawthorne, 1849: 21).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적인 치료법들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뉴욕 주 보건국(Board of Health)은 새로운 전염병 통제 전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해 6월 21일, 뉴욕 주에서는 공중보건법이 새로 제정되었다. 이 법의 주된 내용은 “캐나다의 온타리오(Ontario) 주와 퀘벡(Quebec) 주에서 뉴욕주로 유입된 상품들과 사람들을 철저하게 검역한다”(Duffy, 1968: 440)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공중보건법의 제정은 무엇보다도 뉴욕의 여러 신문 기사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브닝 포스트(Evening Post)』를 비롯한 당시 신문들에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입국한 “아일랜드 이민자들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했다”(Evening Post, June 13, 1832)는 내용의 기사들이 연일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공중보건법에 따라 주 보건국은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새로운 전략을 시행했다. 한 가지는 특별 의료 자문위원회(Special Medical Council)를 구성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콜레라 보고서(Cholera Report)』를 발간하는 것이었다. 당시 뉴욕시에서 가장 저명한 7명의 의사들로 구성된 특별 의료 자문위원회는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전염병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Advertiser, June 26, 1832). 학교나 은행 등과 같은 건물에 간이침대를 설치하여 콜레라 환자들을 수용하는 임시 병원이 세워졌는데, 전염병 환자들을 대도시의 빈민가처럼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으로부터 격리시켰다는 점에서 자문위원회의 전염병 통제 전략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콜레라 환자들의 격리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수는 계속 급증했다. 콜레라의 치명성을 널리 알리고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공중보건 위원회에서는 매일 『콜레라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시민들에게 전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콜레라 보고서』에서는 하루 동안 발생했던 콜레라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파악해서 매일 보고했고, 특별 의료 자문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콜레라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공되지 않는 야채나 과일을 먹지 않는 것”(Rosenberg, 1962: 30)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성 콜레라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더욱 확산되었다. 보건국과 의사들이 전염병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가속화될 수 밖에 없었다. 콜레라 환자의 격리나 『콜레라 보고서』 발간 등과 같은 특별 의료 자문위원회의 활동은 시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기에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비단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사회가 당면했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한 가지였던 유행성 콜레라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개혁 운동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개혁운동은 미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대적 열망으로까지 확산되었다.

1) 신앙 대각성 운동과 도덕개혁

1832년에 뉴욕에서 처음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시작된 개혁운동은 바로 도덕개혁(moral reform)이었다. 당시 콜레라의 발생 원인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들이 발생했는데, 종교인들은 “부조리한 미국사회의 체제”(Rosenberg, 1962: 40) 때문에 유행성 콜레라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이후 대규모의 운하 및 철도 건설과 더불어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발전했고, 미국 내 여러 도시들과 유럽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경제 중심지로 부상했다(Rosen, 1993: 210-11). 이와 같이 19세기 초에 발생했던 경제적 성장 때문에 미국시민들은 점차 물질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물질과 향락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오랫동안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청교주의(Puritanism)에서 강조했던 금욕과 절제는 더 이상 미국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작동할 수 없었다[6].
금욕과 절제를 토대로 하는 도덕적인 생활을 강조했던 사람들에게 1832년에 발생했던 치명적인 전염병은 바로 “부도덕한 인간에 대한 신의 벌”(Starr, 1982: 35)이었다. 이와 같은 주장에 무엇보다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제2차 신앙 대각성 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이었다(Smith, 2004: 14-5)[7].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에서 시작되어 미국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이 운동에서는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생활”(Darrow, 1810: 11)을 강조했다. 오로지 도덕적인 생활을 통해서만 인간은 원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제2차 신앙 대각성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치명적인 콜레라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도덕개혁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민들의 “도덕적 정화(moral purification)”(Barrett, 1832: 9)를 통해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당시 특별 의료 자문위원회의 회장이었던 알렉산더 스티븐스(Alexander H. Stevens)가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콜레라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Mercury, July 18, 1832)라고 발표하면서, 도덕개혁은 더욱 강력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결국 무절제한 생활 때문에 유행성 콜레라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이 시기 미국사회를 청교주의에서 강조했던 금욕과 절제, 그리고 도덕적 생활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개혁운동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 시기에 도덕적 정화를 통해 치명적인 콜레라를 통제하고자 했던 개혁운동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금주개혁(Temperance Reform)이었다. 이미 18세기 말에 필라델피아의 저명한 의사였던 벤저민 러시(Benjamin Rush)는 “과도한 음주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미친다”(Rush, 1788: 481)고 주장하면서 금주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19세기 초에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금주단체들은 음주가 “가정의 경제적 빈곤과 가족의 분열, 그리고 직장에서의 비효율성과 생산성 하락”(Coker, 2007: 17-9)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유행성 콜레라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 바로 음주로 인한 무절제한 생활이라고 주장했던 이와 같은 개혁운동은 이후 ‘금주법(Prohibition Law)[8]’이 제정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832년에 발생했던 최초의 유행성 콜레라는 미국사회에 심각한 혼란과 분열을 야기했다. 보건국과 의사들은 전염병의 발생 원인을 밝히지도 못했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결국 치명적인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사회에서는 도덕적 정화를 추구하는 개혁운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종교인들과 개혁주의자들은 유행성 콜레라를 포함해 이 시기 미국사회에 만연했던 사회적 위기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금욕과 절제를 강조했던 과거의 미국사회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치명적인 콜레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의사들과 보건국은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개혁운동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2) 반(反)이민주의와 토착주의

1832년에 미국사회에서 처음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나타났던 개혁운동은 바로 도덕개혁이었다. 도덕개혁을 주장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전 시기와 비교했을 때 당시 미국사회에 새롭게 나타났던 변화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이 무절제한 생활을 야기했고, 그 결과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미국사회의 변화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이민이었다. 19세기 초에 약 6만 명 정도였던 이민이 1830년대 이후 2배 이상 급속하게 증가했다(Miller, 1968: 157). 특히 이 시기에는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다양한 이민들이 미국사회로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남유럽이나 동유럽, 그리고 아시아 등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Hough, 1859: 206).
1830년대에 미국사회로 유입된 이민들 가운데 현저하게 두드러진 것은 바로 아일랜드 이민들이었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아일랜드 이민들이 이주했던 곳은 바로 뉴욕이었는데, 이들은 뉴욕 전체 인구의 약 1/4을 차지했다(Duhring, 1833: 117).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민들과 비교했을 때 이들은 더 가난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일랜드 이민은 카톨릭을 믿고 있었다. 영국 국교회의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했던 필그림(Pilgrim)[9]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기회를 찾아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종교 공동체를 형성했다. 비록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을지라도, 이러한 점에서 미국사회는 기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9세기 초부터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 이민들이 급증함에 따라 미국사회에는 反카톨릭 정서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이민들처럼 토착 미국인들이 원하지 않는 이민들이 급증함에 따라 이 시기에 미국사회에서 확산된 것이 바로 反이민주의였다. 미국사회에서 反이민주의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세기 말이었다. 당시 프랑스 혁명 때문에 발생했던 난민들이나 잉글랜드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했던 아일랜드 난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1798년에는 “외국인법과 선동 방지법(Alien and Sedition Acts)”을 제정하여 외국인의 시민권 취득 기간을 5년에서 14년으로 늘리고, 급진적인 사상을 지닌 외국인을 투옥시키거나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Miller, 1951: 13-4)[10]. 그리고 19세기 이후 아일랜드 이민들이 급증하는 현상은 이와 같은 反이민주의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였다.
18세기 말부터 나타났던 反이민주의가 미국사회에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또 다른 계기는 바로 토착주의(Nativism) 때문이었다. 토착주의는 “기존의 민족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인종적 또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신념”(Simcox, 1997: 130)을 의미하는데, 19세기에 등장했던 미국사회의 토착주의는 무엇보다도 앵글로 색슨(Anglo-saxon)의 우월성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토착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미국사회에 부적합한 이민들”(Jackson, 1832: 284)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이들을 미국사회로부터 추방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미국사회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McCaffrey, 2004: 7)로 간주되었던 것은 바로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 이민들이었다. 1832년에 뉴욕에서 발생했던 콜레라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수는 3천 5백 명 이상이었는데, 이 가운데 40% 이상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바로 아일랜드 이민들이었기 때문이다(Cotter, 1981: 44). 당시 많은 토착 미국인들은 아일랜드 이민들의 “음주와 같은 무절제한 생활”(Bell, 1832: 47) 때문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점에서 1832년에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는 아일랜드 이민들에 대한 적대적인 담론을 널리 확산시켰던 계기였다.
청교주의에서 강조했던 도덕적인 생활을 통해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제 새로운 개혁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금주를 비롯한 도덕적 정화를 통해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고 더 나아가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움직임은 이제 反이민주의와 토착주의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했다. 많은 토착주의자들에게 이민은 치명적인 전염병의 온상으로 간주되었고, 이들이 미국사회로 유입되는 것을 억제하려는 움직임은 이후 20세기에도 계속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1832년의 콜레라는 도덕적 정화를 통해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뿐만 아니라 反이민주의나 토착주의와 같은 당시 미국사회의 담론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전염병 통제뿐만 아니라 이후 이민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3. 1849년 콜레라와 위생개혁: 개인과 시정부

1832년에 최초로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도덕개혁을 통해 통제하고자 했다면, 1849년에 다시 발생했던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미국사회의 개혁운동은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1848년 12월 1일,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이동하는 선박 안에서 콜레라가 발생했고,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Rosenberg, 1962: 104). 이 선박이 뉴욕 항에 도착하자마자 주 보건국에서는 전염병에 걸린 승객들을 격리시켰지만, 콜레라 환자들은 계속 증가했고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뉴욕에서는 5천 명 이상이 사망했던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가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미국사회는 콜레라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영국에서 발생했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한 가지는 1848년에 제정된 보건법(Public Health Act)이었다(Kramer, 1948: 449). 이 법은 1830년대에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를 경험했던 영국에서 공중보건 상태를 개선함으로써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각 지역의 보건국은 영국정부로부터 하수구를 관리하고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함으로써 “공중보건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Ashton, 1991: 175)을 부여받았다. 미국사회에서는 영국 공중보건법의 기본 개념을 토대로 여러 대도시에 보건국들이 설립되었다.
1849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고 예방하기 위해 미국사회가 수용했던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의 개혁정책이었다. 영국의 사회 개혁가였던 채드윅은 콜레라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비위생적인 환경”(R. A., 1952: 7)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세기에 영국 전역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던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마을이나 도시의 위생 상태를 개선(Chadwick, 1843: 276-78)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채드윅의 이와 같은 주장을 토대로 영국에서는 대대적인 도시 위생개혁이 발생했고, 이와 같은 움직임은 동시대 미국사회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849년에 뉴욕에서 유행성 콜레라가 재발하자,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개혁운동이 발생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사회의 위생과 보건 상태를 개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시기에 재발했던 치명적인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미국사회에서 나타났던 개혁운동은 크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두 가지 층위에서 발생했다. 비록 서로 다른 층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와 같은 개혁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향상시킴으로써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Tarr, 1984: 232).

1) 사적 영역의 위생개혁: 수채통과 옥외 화장실

1849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시작된 미국사회의 위생개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바로 수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식수를 비롯한 생활용수를 주로 비위생적인 연못이나 우물에 의존하고 있었다. 1802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최초로 생활 용수를 위생적으로 공급하는 급수 시설이 설치되었고,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급수 시설이 널리 확산되었다(Blake, 1956: 12). 그러나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에서조차 오수를 따로 배수하는 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유행성 콜레라의 재발과 더불어 시행되었던 위생개혁 전략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수채통의 위생 상태를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오수를 배수하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는 오수를 따로 모아두는 수채통을 구비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시민들은 가정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수채통에 모아두었는데, 이를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시민들은 수채통에 오수가 가득 차거나 심지어 넘칠 때까지 방치했다가 길거리나 근처의 강에 함부로 버리곤 했다(Tarr, 1984: 230).
1849년에 콜레라가 재발했을 때 주 보건국은 치명적인 콜레라가 발생했던 원인 가운데 한 가지로 수채통의 위생 상태를 지적했다. 수채통에 모아두는 오수 때문에 나쁜 공기가 발생하고, 결국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것이다(Galishoff, 1976: 127-28). 따라서 치명적인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주 보건국의 공무원들은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각 가정마다 방문하면서 수채통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Moehring, 1981: 139). 일부 시민들이 주 보건국의 이와 같은 위생 전략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Advertiser, January 12, 1849)이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미 19세기 초에 콜레라의 치명성을 경험했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도시의 위생 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위생 상태가 향상되어야 한다는 보건국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수채통과 더불어 사적 영역에서 시행되었던 또 다른 위생개혁 전략은 바로 옥외 화장실의 위생 상태 개선이었다. 19세기까지 주로 화장실은 주택 외부에 세워졌는데, 이와 같은 옥외 화장실에는 별다른 처리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는 수채통에 오수를 모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옥외 화장실의 배설물도 큰 통에 모았다가 버렸다. 당시 뉴욕시에서 각 가정에서 배출되는 배설물을 모아 거름으로 처리하는 양은 하루에 100톤 이상이었다(Tarr, 1975: 601). 이 시기에 심각한 위생 문제로 부상했던 것은 배설물의 처리양이 아니라 바로 통에 배설물을 모아두고 방치함으로써 개인과 가정, 그리고 더 나아가 도시의 위생 상태를 하락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보건국은 치명적인 콜레라가 나타났던 또 다른 이유로 옥외 화장실의 배설물 통에서 발생하는 나쁜 공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1849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주 보건국의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한 가지는 옥외 화장실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시행되었던 전략은 수채통의 오수처럼 아무데나 함부로 버렸던 배설물을 정화조에서 처리하는 것이었다. 정화조는 오수나 배설물처럼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것들을 처리하는 장치로서 프랑스에서 처음 발명되었다(Segur, 1876: 185). 19세기 초부터 유행성 콜레라가 전 세계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뉴욕에서도 도시 지하에 정화조를 설치했다(Waring, 1875: 537).
이미 1832년에 발생했던 최초의 유행성 콜레라를 경험하면서 미국인들은 이 전염병의 치명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1849년에 콜레라가 재발했을 때, 이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보다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운동이 발생했는데, 이와 같은 개혁운동은 무엇보다도 개인과 가정의 위생 상태가 도시와 국가의 위생 및 보건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2) 공적 영역의 위생개혁: 하수처리 시설

사적 영역에서 시행된 위생개혁 운동이 각 가정에서 배출되는 오수와 배설물을 위생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공중보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공적 영역에서 발생했던 위생개혁 운동은 기반 시설을 마련함으로써 공중보건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1849년에 재발했던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수 천 명으로 급증하자 주 보건국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도시 내 하수처리 시설이었다. 이미 1840년대 초에 영국에서는 채드윅이 하수시설을 통해 오수와 폐수를 처리함으로써 콜레라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Sheppard, 1971: 250). 19세기 초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급수 시설은 19세기 중반이 되자 급증했지만[11], 하수처리 시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1849년에 뉴욕에서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는 대도시의 하수처리 시설에 대한 미국사회의 관심이 확대된 중요한 계기였다. 콜레라를 통해 위생적인 급수 시설뿐만 아니라 하수처리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사회에서는 파이프를 연결해 하수로를 만들고, 오수를 처리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Tarr, 1984: 229). 이와 같은 하수처리 시설의 설립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대규모의 공사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위생이나 공중보건은 시정부와 주정부의 책임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1849년의 콜레라 이후 위생개혁 운동은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시행되면서 상호작용하기 시작했다.
도시 내 하수처리 시설의 설립을 둘러싸고 뉴욕 시민들은 찬성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으로 양분되었다. 하수처리 시설의 설립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Mercury, February 22, 1849)고 주장했다. 하수처리 시설이 설립되면 수채통이나 옥외 화장실에서 배출되는 오수와 오물을 처리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수처리 시설 덕분에 도시의 위생과 공중보건이 향상되면, 유행성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의 치명성 역시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Waring, 2007: 222).
반면, 하수처리 시설의 설립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만약 하수처리 시설이 오염된다면 시민들의 건강과 도시의 공중보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Mercury, February 24, 1849). 하지만 이들이 하수처리 시설의 설립을 반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과세의 부담”(Griffth, 1974: 20)이었다. 대규모의 하수처리 시설 공사가 시작되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제 미국사회에서는 위생개혁을 통해 유행성 콜레라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확산되었다. 미국사회의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1850년에 발간된 『매사추세츠 주 위생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Sanitary Commission of Massachusettes 1850)』였다. 흔히 ‘섀턱 보고서(Shattuck Report)’라고 불리는 이 보고서에서는 미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공중보건의 필요성”(Shattuck, 1850: 102)을 역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행성 콜레라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정부 및 주정부의 위생 및 공중보건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Duffy, 1990: 98).
19세기에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위생개혁은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혁운동을 계기로 위생과 보건이 더 이상 개인이나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정부나 주정부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 발생했던 위생개혁 속에서 위생의 문제가 공중 보건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1849년에 뉴욕에서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는 미국사회에 공중보건 및 위생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분수령이었다.

4. 대중의학에서 전문의학으로: 1866년 콜레라와 의료개혁

1832년과 1849년에 걸쳐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경험하면서 치명적인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운동들이 나타났다. 도덕개혁과 위생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19세기 내내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발생했는데, 어떤 학자들은 미국내전(Civil War)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개혁운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고 주장한다(Rosen, 1993: 206). 그러나 미국내전이 발생했던 시기조차 군인들의 영양 상태나 군복, 숙소 등과 관련해 군대의 위생과 공중보건을 향상시키고자 했던 노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Kramer, 1948: 453-55). 이러한 점에서 살펴본다면, 19세기의 미국사회에서는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개혁운동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미국사회의 여러 가지 개혁운동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치명적인 전염병이 재발했다. 콜레라가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에서 재발했던 시기는 바로 1866년이었다. 1866년 5월 초에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로 인한 뉴욕의 사망자 수는 1천 명 이상이었다(Rosenberg, 1962: 177). 그 결과, 미국사회에서는 콜레라를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의료개혁이 발생했다. 19세기 동안 미국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던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개혁운동은 보다 구체적이고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1) 광역 보건국과 공중보건법

1866년에 유행성 콜레라가 재발하기 몇 달 전이었던 2월 26일, 뉴욕 주에서는 중요한 법안이 하나 통과되었다. 바로 ‘광역 보건법안(Metropolitan Health Bill)’이었는데, 이 법안에서는 무엇보다도 뉴욕시 공동주택의 위생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광역 보건법안의 적극적인 옹호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당시 뉴욕시의 의사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는 공동주택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유행성 콜레라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공동주택 소유주들에게 “위생 상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적 권한이 시정부에 부여되어야 한다”(Baumgartner, 1974: 956)고 역설했다.
광역 보건법안의 제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1865년에 뉴욕 시민 협회(Citizens’ Association of New York)에서 제출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위생 및 공중보건 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Council of Hygiene and Public Health of the Citizens’ Association of New York)』로서 “19세기 내내 뉴욕 시민들이 콜레라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고, 만약 공동주택이나 보건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것”(Citizens’ Association of New York, 1865: 54-6)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보고서에서는 열악한 위생 상태와 치명적인 유행성 전염병이 시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경제후생까지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이 위생을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과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Jimenez, 1997: 40),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미국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뉴욕시가 직면했던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66년에 새로운 보건국이 설립되었다. 바로 광역 보건국(Metropolitan Board of Health)이었는데, 이는 미국사회의 위생 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치시에서 설립했던 최초의 보건국이었다. 광역 보건국의 설립 직후 바로 유행성 콜레라가 재발했기 때문에 광역 보건국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치명적인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뉴욕의 위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Duffy, 1990: 120-21). 『위생 및 공중보건 위원회 보고서』나 ‘광역 보건법안’에서 무엇보다도 공동주택의 위생 상태 개선을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광역 보건국 역시 공동주택의 비위생적인 환경이 치명적인 콜레라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Journal of Public Health, 1896: 700)이라고 주장했다.
광역 보건국에서 공동주택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행했던 전략은 하수 시설과 공기 정화를 점검(Potter, 1999: 152)하는 것이었다. 광역 보건국에서는 비위생적인 공동주택에 보건 위원을 파견하여 위생 상태를 조사하도록 했는데, 당시 한 보건 위원에 따르면 “한 방에 15명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공동주택”(Bynum, 2008: 80)도 있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광역 보건국은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바로 1867년에 제정된 ‘공동주택법(Tenement Law)’이었는데, 이 법은 공동주택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최초의 법이다. 이제 공동주택법에 따라 모든 침실에는 반드시 창문을 설치해야만 했고, 비상 대피로도 만들어야만 했으며, 청결한 위생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화장실도 구비되어야만 했다(Rosen, 2015: 140).
1867년의 ‘공동주택법’은 유행성 콜레라의 온상으로 간주되었던 공동주택의 위생 상태를 향상시킴으로써 뉴욕과 더 나아가 미국사회 전체의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법은 이후 1901년에 제정된 ‘공동주택 특별법(Tenement House Act)’의 제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 유행성 콜레라가 수차례에 걸쳐 재발하면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 미국사회에서 다양한 개혁운동이 발생했던 것처럼, 20세기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있는 대도시의 공동주택에서 결핵이라는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다. 결핵을 통제하기 위해 시정부는 1901년의 ‘공동주택 특별법’에 따라 공동주택 전담부서를 따로 설립했고(Bial, 2002: 21), 공동주택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정책들을 수립했다. 이러한 점에서 1866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는 19세기에만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니라 이후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미국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사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의사의 전문화와 조직화

1866년에 뉴욕에서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위생개혁으로 인해 무엇보다도 공중보건과 관련된 새로운 조직이 설립되었고, 일련의 법들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1866년의 유행성 콜레라는 광역 보건국의 설립이나 발전과 밀접한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광역 보건국이 설립되기 이전 시기에는 치명적인 유행성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보건국이나 보건위원회에 의사들이 파견되곤 했다. 그러므로 1866년 이전까지 미국사회에서 위생과 공중보건, 그리고 전염병은 주로 정치적 영역에 국한되어 논의되어 왔다(Duffy, 1990: 120).
그러나 1866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계기로 미국사회에서는 의료개혁이라는 새로운 개혁운동이 발생했다. 광역 보건국은 미국사회의 위생과 공중보건을 향상시킴으로써 치명적인 콜레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훈련된 의료인력”(Woods, 1986: 333)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를 위해 총 10명의 광역 보건국 인력 가운데 반드시 3명 이상은 전문적인 의학교육을 받고, 의료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임명하도록 했다(Metropolitan Board of Health, 1866: 17). 광역 보건국의 이와 같은 정책에 따라 이제 미국사회에서는 의사들이 위생과 공중보건 업무를 전담해야 한다는 담론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나 시보건국에 전문 의료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1840년 대부터 제기되었다. 당시 뉴욕시의 의사였던 존 그리스콤(John H. Griscom)은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위생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도시의 위생 공무원들을 모두 의사로 교체해야 한다”(Griscom, 1845: 14-5)고 주장했다. 비록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이 즉각적으로 수용되지는 못했지만, 1866년에 광역 보건국이 설립되고 곧바로 유행성 콜레라가 재발하면서 그리스콤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제 19세기 중반의 미국인들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의료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광역 보건국에 의무적으로 전문 의료인력이 배치됨에 따라 미국사회에서는 새로운 변화들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변화들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의사의 권위가 높아진 것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사회에서 의사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도 당시 사람들이 질병이 “자연적인 원인”(Buchan, 1798: 328-29)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전문적인 치료법보다 대중적인 치료법을 더욱 선호했고, 그 결과, 18세기 후반부터 각 가정에서 쉽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주는 가정 의학서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12]. 따라서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사회에서 의사는 별다른 전문성을 가지지 못했다.
물론 전문가로서 의사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19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발생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8세기 중반부터 의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많은 의학교들이 설립되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의과대학도 설립되었다. 원래 미국사회에서 의과대학은 3년 동안 수업을 듣고, 2학기에 걸쳐 강좌를 수강한 다음 시험에 합격하고 논문을 쓰는 매우 복잡하고 엄격한 과정이었다(Starr, 1982: 43). 이는 무엇보다도 의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와 같은 제도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의과대학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의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높이고자 했던 이와 같은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의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사회에서 나타났던 또 다른 노력으로는 의사면허제를 들 수 있다. 18세기의 미국사회에서 의사면허는 오늘날처럼 “진료나 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 자격”(Mohr, 2013: 16)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중적인 치료법이 유행했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빈번하게 의료행위를 했고, 질병을 가정에서 치료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18세기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면허를 발급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등장했다. 이를 위해 1760년에 뉴욕시에서는 의사들에게 면허를 발급하고, 무면허 의사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지만(Duffy, 1990: 65-6), 별다른 효과를 야기하지 못했다.
이제 미국사회에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학적 지식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유행성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정치 담론이 아닌 과학과 의학 담론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이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위생 및 공중보건을 향상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교육을 받고 실제 의료경험을 토대로 전염병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효과적인 치료법과 통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1866년의 콜레라는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토대로 미국사회에서 전문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의료개혁이 시작되는 데 중요한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표 1.
19세기 뉴욕의 유행성 콜레라 통제를 위한 미국사회 개혁운동 비교
1832년 1849년 1866년
콜레라 발생 원인 ● 인간의 타락 ● 비위생적인 환경 ● 비위생적인 환경
● 부도덕한 사람들

콜레라 통제 전략 및 정책 ● 도덕적 정화 ● 오수 및 하수 상태점검 및 개선 ● 전문 의료인력 활용
● 이민 제한

대표적인 개혁운동 ● 도덕개혁 ● 위생개혁 ● 의료개혁

개혁운동으로 인해 미국 사회에 나타난 변화 ● 광역 보건국 설립
● 반(反)이민주의 ● 정화조 설치 ● 공중보건법 제정
● 토착주의 ● 하수처리 시설 설립
● 의사의 전문성 강화

5. 맺음말

19세기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급변하고 있던 미국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이전 시기의 다른 유행성 전염병들과 마찬가지로 콜레라가 발생했던 원인 역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따라서 1832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발생했던 콜레라를 비롯해 1849년과 1866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발생했다. 그리고 콜레라 통제 전략과 정책들은 이 시기에 미국사회가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 개혁운동과도 결합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미국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다양한 이민 등으로 인해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와 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식했던 사람들은 미국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우려하고 비판했다. 결국 이와 같은 담론의 분열과 대립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고, 19세기에 발생했던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는 이와 같은 상황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미국사회에서 처음 발생했던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한 과학적, 그리고 의학적 지식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전염병을 통제하고 예방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미국사회의 개혁운동으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로 인해 물질주의가 만연함에 따라 미국사회가 타락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도덕개혁을 제시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과 미국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나 신념에 부적합하다고 간주되었던 사람들을 정화시킴으로써 치명적인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앙과 인종 및 민족의 도덕적 정화를 통해 미국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개혁하고자 하는 시대적 열망과 담론이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처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시기에 미국사회가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개혁운동은 비단 도덕개혁뿐만이 아니었다. 1849년이나 1866년에 재발했던 콜레라 통제 정책은 전염병을 통제하고 예방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위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1849년의 콜레라를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주로 개인이나 가정에서의 위생만을 강조해왔던 위생담론은 이제 도시와 국가 전체의 위생과 공중보건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확대되었고, 1866년에는 전염병이 더 이상 정치적 영역에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의학적 전문성과 권위를 지닌 의사들을 중심으로 병리학적, 그리고 의학적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개혁운동이 발생했다.
미국역사 속에서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열망과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났던 19세기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는 미국사회의 발전과 변화에 상당히 기여했다. 치명적인 전염병을 통제하고 미국사회를 정화시키기 위한 위생과 보건의 문제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본다면, 19세기 동안 뉴욕을 비롯해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세 차례의 치명적인 유행성 콜레라는 종교적 관점을 넘어 다양하고 광범위한 컨텍스트 속에서 미국사회의 개혁운동을 야기했던 계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혁운동은 결코 일시적인 움직임으로 그치지 않았다. 치명적인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도덕개혁은 위생개혁과 더 나아가 의료개혁까지 확대되면서 이 시기의 미국사회가 변화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결국 콜레라와 여러 가지 개혁운동의 상호작용은 19세기 미국사회를 보다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속에서 이 시기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고찰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Notes

1) 19세기에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개혁운동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종교적 개혁운동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비(非)종교적 개혁운동이었다. 종교적 개혁운동이 인간의 도덕성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려는 청교주의를 통해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운동이었다면, 非종교적 개혁운동은 도덕성 회복을 토대로 이 시기의 미국사회가 직면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사회 개혁운동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非종교적 개혁운동은 종교적 개혁운동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도덕성을 회복함으로써 미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회 개혁운동으로는 금주개혁이나 교육개혁, 여권운동, 노예제 폐지운동 등을 들 수 있다.

2) 콜레라의 원인 및 치명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최근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Johnson, 2007; Byun, 2008; Gradmann, 2009; Sekar, 2012; Nair, 2014). 그리고 19세기의 콜레라에 대한 연구 성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Bannister, 2000; Gilbert, 2004; Sherman, 2006; Magnus, 2007; Mercer, 2014).

3) 역사적 접근 방법을 토대로 19세기의 콜레라를 분석했던 중요한 연구 성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Rosenberg, 1962; Peters, 2004; Mclean, 2005; Walson, 2006; Adler, 2013; Whooley, 2013; Devine, 2014; Strong, 2014). 특히 미국의 저명한 의학사가인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의 연구 성과는 19세기 동안 미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가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4) 로젠버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1832년과 1849년, 그리고 1866년에 뉴욕에서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타락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을 정화시키는 ‘도덕개혁(moral reform)’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분석은 콜레라를 통제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종교적 개혁 운동으로만 국한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1832년과 1849년의 콜레라로 인해 미국사회에서 도덕적 정화를 추구하는 개혁이 시작되었으며, 1866년의 콜레라 통제 전략들 역시 ‘공중 보건의 복음(gospel of public health)’이었다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Rosenberg, 1962).

5) 미국의 사회학자인 폴 스타는 미국내전(Civil War)을 계기로 의사의 전문화가 나타났고, 이와 더불어 미국의학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Star, 1982).

6) 19세기에 시작되었던 산업화나 서부 팽창 등과 같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미국사회에서 물질주의는 더욱 만연하게 되었다(Edwards, 1955: 140-48; Franklin, 1938: 183). 그 결과, 19세기 미국사회에서는 도덕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담론과 인간의 본성 및 욕망을 강조하는 담론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7) 미국 역사 속에서 신앙 대각성 운동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제1차 신앙 대각성 운동은 1730년대부터 1740년대까지 발생한 것으로서 구원을 위한 회개와 하나님의 은총 및 성경 연구를 강조했지만, 교회를 분열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쇠퇴했다. 제2차 신앙 대각성 운동은 1790년대부터 1850년대에 걸쳐 나타났는데, 인간의 원죄를 회개하고 도덕적 완전함을 추구함으로써 산업화 및 도시화가 급속하게 나타났던 당시 미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제3차 신앙 대각성 운동은 185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에 걸쳐 발생했다.

8) 1919년 1월에 비준되어 1920년부터 효력이 발생했던 미국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8조로서 미국의 모든 지역에서 술을 제조, 판매, 운송, 수입 및 수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1933년에 제정된 미국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1조에 의해 폐지되었다. 19세기 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금주개혁의 결과였던 금주법은 13년 동안 그 효력을 발생했다(Okrent, 2011: 195)

9) 1620년에 영국 국교회의 종교적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의 레이덴(Leiden)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찾아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타고 아메리카로 이주했다. 당시 메이플라워호에 타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필그림은 102명의 탑승자 가운데 35명뿐이었다. 이들은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주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해 식민지 공동체를 형성했는데, 이것이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국 식민지였다(Beale, 2010: 53-4)

10) ‘외국인법과 선동 방지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법이었다. 1798년에 열린 제5회 연방의회에서 존 애덤스(John Adams)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통과되었는데, 이 법은 크게 4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민들이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을 어렵게 하는 법과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외국인을 구금하거나 추방하는 법,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에서 온 사람을 구금하거나 추방하는 법, 그리고 연방정부를 비판하고 대항하는 선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기소하는 법이 바로 그것이다. ‘외국인법과 선동 방지법’은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경우에는 이를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으로서 이 법이 통과됨에 따라 연방정부는 미국사회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이민들을 규제하고 이들을 추방하고자 했다. Fifth Congress, Sess. II. Ch. 54. (1798).

11) 19세기 중반에 미국 내 16개의 대도시에 설립된 급수 시설은 136개였고, 19세기 후반에는 600여개로 증가했다(Fanning, 22013: 625).

12) 대중의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가정 의학서들로는 1760년대 후반에 출판된 윌리엄 버컨(William Buchan)의 『가정의학(Domestic Medicine)』이나 1830년에 출판되었던 존건(John C. Gunn)의 『가정의학(Domestic Medicine)』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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