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This study traces the typological and historical evolution of Asclepian healing narratives by conducting a comparative analysis of three pivotal texts: the 4th-century BCE public healing inscriptions (Iamata) from the Asclepian sanctuary in Epidauros, the Roman inscription of Poplius Granius Rufus from Lebena in Crete, and the 2nd-century CE autobiographical text, Sacred Tales (Hieroi Logoi), by Aelius Aristides. While Asclepian worship maintains a structural continuity through the shared spiritual media of incubation and divine dreams, it underwent a profound narrative transformation as it intersected with contemporary intellectual and scientific trends. Through a philological examination, this paper demonstrates that the verb dokeo (“it seemed”), which functioned in the Epidaurian inscriptions as a third-person formula employed by priests to objectively describe supernatural miracles, was strategically reused by Aristides. Through a first-person narrative, Aristides elevated the epistemic uncertainty of the dream (onar) into the vivid, waking reality of divine epiphany (hypar). Furthermore, this study establishes a three-stage developmental model of healing narratives: the first stage is dominated by immediate, supernatural miracles performed upon passive patients; the second stage witnesses the systematic integration of advanced pharmacology and rational medical prescriptions of the Roman Imperial era. The final stage, exemplified by Aristides’ Sacred Tales, subsumes this empirical medical knowledge while shifting the narrative locus entirely toward the individual.
In particular, Aristides brings four distinct personas to the fore: his pilgrimage to Athens and the Lyceum to show his close connection with Greek culture, his dream-encounters with Roman governors, his exclusive intimacy with Asclepius, and his spiritual competitions with classical masters like Socrates, Demosthenes, Thucydides, and even Alexander the Great. These elements reflect the appropriation of the healing narrative by the hypertrophied ego and cultural cultivation (paideia) characteristic of the Second Sophistic elite. This study underscores how the text evolved the ancient healing narrative into a profound medium for intellectual self-fashioning and sophisticated religious literature.
1. 서론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꿈을 통한 치유는 종교적,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복합적인 현상이었다. 기원전 8세기경, 특히 호메로스까지만 해도, 신이 인간에게 직접 현현하는 ‘신성한 꿈’은 왕, 왕비, 장군 혹은 영웅과 같은 사회적 엘리트 층만의 전유물이었다(von Eherenheim, 2022: 220-223). 일반 대중이 꿈을 통해 신과 직접 소통한다는 관념은 극히 드물었으며,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정통 신탁체계는 사제라는 중개자를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는 엄격한 위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전기에 접어들면서 그리스 사회에는 중대한 심성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바로 아폴론의 아들이자 치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수면의식(Incubation)’의 대중화가 있었다. 과거의 배타적이고 접근하기 어려웠던 신성한 소통이, 이제는 신전에서 잠을 자는 누구나 신을 만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꿈의 대중화’는 신성의 성격 변화를 동반했다. 아폴론이 거리를 두고 사제를 통해 모호한 신탁을 내리는 접근하기 어려운 신이었다면, 그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간의 구체적인 질병 고통에 공감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경험하는 신’이었다. 에피다우로스 등 여러 지역에 세워졌던 아스클레피오스 성소는 남녀노소,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다. 실제로 성소의 치유 기록에는 군인, 생선 장수뿐만 아니라 여성, 아이, 그리고 심지어 노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전 사회적 대중화는 같은 시기에 발전하던 히포크라테스적 합리주의 의학의 확산과도 궤를 같이한다. 대중이 저렴한 비용으로 의사를 만날 수 있게 되면서 치유에 대한 보편적 기대감이 상승했고, 자연스럽게 종교적 영역에서도 ‘누구나 신에게 나아가 치유를 요구할 수 있다’는 심성적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폴론에서 아스클레피오스로의 이행은, 신성이 소수 엘리트의 권위 정당화 도구에서 대중의 삶과 고통을 보듬는 보편적 구원자로 재정의되었음을 보여주는 일대 전환점이었다. 치유 기록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꿈이 대중화되었듯 문자 역시 대중화되어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수단이 되었다. 기록은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구술과는 달리, 기억과 지식을 축적하고 편집, 재생산할 수 있어서 내용이 발전할 수 있었다. 기원전 4세기 후반 에피다우로스 아바톤(Abaton) 성소에 세워진 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iamata)는 전형적인 ‘편집형 비문’으로 병자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신전의 사제들이 기존의 봉헌판이나 구전 기록을 수집하고 재구성하여 작성한 것이다. 제3자적 시점에서 서술되며, 신의 전능함과 기적의 확실성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다. 그런데 편집자는 단순히 시간순이나 장소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병자들이 경험한 것을 생생하게 전하는 데 집중한다. 기원전 1세기 레베나의 치유기록들은 에피다우로스의 고전적 형식에서 한 단계 나아가, 당대의 발달한 의학적 담론과 처방 형식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에피다우로스의 초기 기록이 외과적 수술이나 초자연적인 기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헬레니즘에서 로마기의 이아마타 형식은 신이 꿈속에서 구체적인 약물 처방, 식이요법, 온천욕, 운동 등 일종의 ‘의학적 레시피’를 지시하는 의사로 등장하는 변화가 관찰된다. 문체 역시 단순한 신화적 경탄을 넘어, 환자의 증상과 신의 지시사항을 의학적 용어로 기록한 것이어서 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이는 병자들의 경험이 지식의 발달과 함께 변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서기 2세기 로마의 수사학자이자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사모하던 제2 소피스트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가 남긴 『신성한 이야기(Hieroi Logoi)』는 앞선 비문 형식들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1인칭 자전적 고백록’이자 문학적 텍스트다. 이 작품은 타인에 의해 편집된 객관적 보고서가 아니라, 만성 질환에 시달리던 지식인이 수년 동안 페르가몬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겪은 꿈과 치유의 경험을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밀한 어조로 상세히 기록한 일기이자 문학적 에세이이다. 여기서는 형식적인 반복 문구 대신, 신과 맺은 영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꿈속에서 나눈 대화의 수사학적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문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병자의 경험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일관적이다. 병자가 그리스 문화를 공부하는 수사학자이니, 그에 어울리는 경험이 기록된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치유는 꿈과 치유의 경험을 대중화하면서 개인의 경험이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고, 이는 그리스와 로마 치유 기록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의 『신성한 이야기』와 고대 아스클레피오스 치유 기록에 관한 연구사는 텍스트의 기초적 번안과 전기적 연구에서 출발하여 사회문화사 및 공간론적 접근을 거쳐 최근의 문헌학적 비교 연구로 진화해 왔다. 이 분야의 초석을 놓은 연구는 사료 번역과 주해를 확립한 베어(Behr, 1967)의 연구이다. 베어는 『신성한 이야기』의 영문 번역과 함께 아리스티데스의 생애와 연대기를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파편화된 꿈 기록들을 역사적 실체로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초기 연구는 주로 아리스티데스 개인의 병리학적 상태나 전기적 사실 규명에 치중하였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전기적 학풍을 넘어서서 2010년대 이후에는 아리스티데스의 텍스트를 당대 사회, 종교, 그리고 의학의 다원적 네트워크 속에서 파악하려는 거시적 전환이 일어났다. 페찰리스-디오미디스(Petsalis-Diomidis, 2010)는 물질문화와 공간론의 렌즈를 도입하여 아리스티데스의 서사를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닌, 제정기 로마의 성소 공간과 순례 관행, 그리고 시각적 봉헌물들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종교적 행위의 산물로 재해석하였다. 이어 이스라엘로비치(Israelowich, 2012)는 아리스티데스를 당대 제2 소피스트 지식인 사회의 맥락에 위치시키고, 그의 치유 경험이 로마 제국의 지배 엘리트 계층 내에서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신분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어떻게 기능했는지 사회사적으로 규명하였다. 또한 탈리아부에(Tagliabue, 2016)는 문학 비평적 접근을 통해 『신성한 이야기』가 지닌 독특한 서사 구조와 장르적 복합성을 분석하고, 아리스티데스가 꿈과 현실을 오가는 다층적 서술 방식을 통해 어떻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피스트적 자아를 구축해 냈는지 문헌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최근의 연구는 아리스티데스의 개인적 기록을 고대 치유 기록 전통이라는 보다 넓은 통시적 맥락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오리오 등(Iorio et al., 2023)의 연구는 그리스 고전기부터 로마 제정기까지의 치유 서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였다. 이들은 고전기의 성소 비문과 제정기의 환자 개인 기록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질병과 치유를 소통하고 기록하는 활동이 수동적 기적의 나열에서 환자 중심의 주관적 보고서 형태로 진화했음을 입증하였다.
2. 이아마타 치유 기록의 특성기원전 4세기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소 사제들은 성소를 선전하기 위해 흥미로운 기획을 했다. 치유를 받은 사람들이 헌정한 봉헌물에 새겨진 비문 등으로부터 치유의 이야기들을 모아 ‘이아마타’라고 부르는 네 개의 석비를 제작한 것이다(이상덕, 2025: 31-34). 에피다우로스 외에는 크레타의 레베나 정도에서 이아마타가 발견된다(Dillon, 1994: 241).1) 이 시기는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히포크라테스적 의학과, 경험주의에 기반하고 때로는 마법에서 유래한 신적 치유 등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치유 기록의 서사는 믿기 어려운 신의 치유에 대한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 더 나아가 당시 질병이나 치료법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사료다(Prêtre, 2018: 17). 이렇게 정립된 치유 기록의 구조는 수세기에 걸쳐 큰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삼백여 년의 차이가 나는 에피다우로스와 레베나의 이아마타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특히, 이들이 가진 선전적이자 교훈적(didactic)인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되어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에게까지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하드리아누스 시대의 복고주의적 문화와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를 특징짓는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동경(제2 소피스트 운동)으로 인해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의 의학이 꾸준히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신전 치유에 관한 증언들은 비록 연대기적으로는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할지라도 그 의도에 있어서는 상당히 일관된 모습을 띠었다(Iorio et al., 2023: 2).
2.1. 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는 크게 메시지와 형식(혹은 공식)의 두 가지 면에서 아리스티데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세 가지 정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이상덕, 2025: 36-47). 첫째, 전능한 아스클레피오스를 묘사하고 그를 숭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은 어떤 질병이든 고칠 수 있다. 심지어 절대 해결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해결한다. 그는 5년째 임신한 상태인 여자를 출산하도록 한다든지(Ożarowska, 2018: 57-58), 안구가 없는 사람을 보게 할 수 있다.2) 둘째,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며, 이는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칼로 가슴을 열어 거머리를 꺼내고 다시 봉합한다.3) 이는 의사들이 하는 수술의 방법과 같지만, 신에게는 훨씬 간단하게 느껴진다. 한편, 클리아나타스라는 사람은 이가 많아서 성소를 찾았는데, 꿈속에서 신이 그의 옷을 벗기고 몸을 빗자루로 쓸어 나았다.4) 빗자루로 쓸어내리는 것은 실제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이는 꿈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치유 기록에는 이와 같은 상징이 많이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아스클레피오스는 병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탄원자가 가져오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는 꿈의 전통적 이해에 영향받은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질병의 치유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바위 아래에 하리에이스 출신의 소년 아리스토크리토스. 소년은 바다 속으로 잠수해 헤엄쳐 들어갔다가, 물속에 머무는 동안 바위로 완전히 둘러싸인 마른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곳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소년의 아버지는 사방을 찾아 헤맸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아들을 찾기 위해 아바톤에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상 앞에서 잠을 청했고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신이 그를 어떤 장소로 인도하여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아버지가 아바톤을 나와 그 바위를 깎아내자, 7일 만에 아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5)
아이의 아버지는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에서 수면 의식을 행하고, 꿈을 통해 해결 방법을 얻었다. 질병이 아닌데도 아바톤에서 잠을 자면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신과의 소통이 꿈을 매개로 직접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아폴론 신의 신탁이 대중화되면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수면 의식을 통해 탄원자에게 직접 신탁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von Eherenheim, 2022: 222-224). 고전기 아스클레피오스 숭배에서 꿈은 아직 엄격한 제의의 범위 안에 있었다. 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에서 A.10, A.16, B.6, B.13, B.23, C.4를 제외한 모든 꿈에서 탄원자는 정해진 장소인 아바톤에서 잠을 자고 환영(꿈)을 보며, 이는 정해진 언어로 표현된다. “안에서 자고 환영을 보았다(ἐγκαθεύδων δὲ ὄψιν εἶδε).” 환영은 전통적으로 계시를 위해 “찾아오는(visiting) 것”이자, “보는(seeing) 것”이었다(Dodds, 2004: 412-413). 크로이소스가 아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으려 했던 것은 꿈에 아들이 무쇠 창끝에 찔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고,6)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의 무덤에 제물을 바치도록 한 것은 그녀의 꿈에 아가멤논이 나타나 그녀의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의 왕홀을 빼앗아 화로에 꽂았을 때 그 왕홀에서 나온 무성한 가지가 미케네 전체에 그늘을 만드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7) 상징으로 정해진 비극적 결말을 알려주던 꿈의 이해 안에 있어서 아스클레피오스 꿈은 병의 치유만이 아닌 다양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지만, 그의 꿈은 전통적인 꿈과 달리 수수께끼가 아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러한 특징은 아스클레피오스 숭배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인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아마타는 짧은 이야기들이 메모처럼 적혀있고, 대부분이 탄원자가 문제가 있어서 아바톤에서 수면의식을 하고 나아서 돌아갔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일관된 형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또한, 앞서 언급한대로 어떤 문구들은 공식처럼 들어갔고, 신과 제의에 대한 태도 때문에 특정한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안에서 자고 환영을 본다” 다음이 중요한데, 탄원자가 꿈에서 본 내용을 적기에 앞서 “그가 보기에(에도케이, ἐδόκει)”라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이상덕, 2025: 46). 이 동사(도케오, δοκέω)는 “생각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신이 꿈에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렴풋이 보인다. 환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당사자가 “보기에” 그랬다는 것이다.8) 이 표현은 아스클레피오스 치유의 경험이 매우 개인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고전기의 치유 기록은 아직 전통적 신탁 개념과 제의의 형식에 매여 있었지만, 이렇듯 치유의 경험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표현할 언어적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가능성은 아리스티데스가 물려받을 것이었다.
2.2. 레베나의 이아마타레베나의 이아마타 비문은 기원전 1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Inscriptiones Creticae I, xvii에 있다. 17은 포플리우스 그라니우스 루푸스가, 19는 어떤 여인이 아스클레피오스의 명령에 따라 세운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자:
17
아스클레피오스 신께,
포플리우스 그라니우스 루푸스가
신의 명령에 따라
내가 2년 동안 끊임없이 기침하며 하루 종일 고름과 피가 섞인 살점을 뱉어낼 때, 신께서 친히 나를 치료해 주셨다. 신께서는 나에게 빈속에 루콜라를 씹어 먹게 하셨고, 그다음에는 후추로 향을 낸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게 하셨으며, 그다음에는 다시 뜨거운 물에 탄 녹말을, 그다음에는 성스러운 제단의 재로 만든 가루와 성수를, 그다음에는 달걀과 소나무 레진(송진)을, 그다음에는 다시 액체 상태의 역청(피치)을, 그다음에는 꿀을 섞은 붓꽃(아이리스)을, 그다음에는 모과와 야생 쇠비름을 함께 삶아 그 즙은 마시고 모과는 먹도록 하셨으며, 그다음에는 신께 제물을 바치는 제단에서 가져온 성스러운 재를 묻힌 무화과를 먹게 하셨다.
19
(어떤 여인)... 머리에... 그리고 구원자이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를 바친다.
그녀는 새끼손가락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나 신에 의해 치유되었다. 신은 그녀에게 조개껍데기를 태워 손가락에 바르고, 장미유와 아욱, 그리고 올리브유를 섞은 기름을 손가락에 바르라고 명하였다. 그리하여 신은 그녀를 치유하였다. 그리고 나서도 나는 꿈에서 신의 위대한 업적을 많이 목격했다. 신은 나에게 내가 목격한 것을 비문으로 새기라고 명했다.
내 꿈에 신이 .... 라고 명령했다.
이 비문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환자의 병과 아스클레피오스의 치유 방법이 현실적이어졌다는 점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발견한 약재와 배합 방법을 통해 치유한다. 환자의 경험은 에피다우로스의 그것보다 훨씬 인간적이며 현실적이다. 특히, 여인에게 알려준 조개껍데기 처방은 갈레노스에게서도 발견된다(Chaniotis, 1995: 335).9) 레베나의 이아마타는 각각 따로 세웠다는 점이 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와 다른데, 이 때문에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다. 비문은 신의 “명령에 따라(κατ' ἐπιταγήν)” 세운다. 신은 치유의 증거를 남기고자 하며, 탄원자는 감사의 뜻으로 이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아마타는 신의 초자연적인 기적뿐만 아니라, 조개껍데기를 태우거나 식물성 오일을 바르는 등의 실제 임상적 사항과 경험적 치료법이 융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즉, 과학적 연구와 마법, 신성 의학이 공존하던 당대의 의료적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신전 사제들(에피다우로스)이 세웠든 개인(레베나)이 세웠든, 신의 치유 효험을 널리 알리고 신전 의학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문장의 통사적 형태와 용어 역시 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제의의 특성을 드러내도록 정형화되어 있다. 비록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에 만들어졌을지라도, 그리스 문화를 유지하려는 의도 아래 수 세기에 걸쳐 그 언어와 목적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균질성을 띤다. 이는 제2 소피스트로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 있던 아리스티데스에게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아마타는 기록의 서사적 틀을 제공했다. 아리스티데스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겪은 치유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저서 『신성한 이야기』는 이아마타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역시 꿈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그 명령에 따라(κατ' ἐπιταγήν;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기괴하거나 실제적인 치료법을 수행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수 세기간 누적된 이아마타의 치유 증언들은 아리스티데스에게 자신이 신과 직접 소통하는 ‘선택받은 환자’라는 확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 묘사하도록 했다. 치유 기록의 전통 위에서 아리스티데스는 개인의 경험을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서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의 『신성한 이야기(Hieroi Logoi)』와 내러티브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117-181 AD)는 필로스트라투스가 “그의 분야에서 가장 조예가 깊은 소피스트들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훌륭한 수사학자이자 웅변가였다.10) 그는 흑해 남부의 미시아(Mysia)지역 출신으로 생각된다. 그는 스미르나를 비롯하여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등에서 훌륭한 학자들로부터 사사 받았다. 이 당시에는 제2 소피스트 운동이 한창이었다. 헬레니즘기에 누리지 못했던 정치적 안정과 황제들, 특히 하드리아누스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의 황제로부터 받은 애정과 관심 덕분에 그리스 식자층은 소피스트로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인기를 누렸다(김경현, 2015: 112-118). 아리스티데스도 역시 이렇게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20대의 이른 나이에 병이 들었고, 로마에 뜻을 품고 갔다가 병이 깊어져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페르가몬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소를 찾아 요양하고 치료하게 된 것인데, 여기서 『신성한 이야기』를 집필한다.
서기 2세기에 저술된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의 『신성한 이야기』는 독특한 문학 작품으로 간주 되는데, 이 저작에서 저자는 자신이 오랜 기간에 걸쳐 아스클레피오스로부터 받은 130여 개의 꿈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였다(Panagiotidou, 2022: 22). 그는 병에 걸린 이후 약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신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증상은 매우 다채롭고 고통스러웠다. 극심한 천식과 호흡 곤란, 소화불량과 복부 팽만, 전신의 오한과 고열, 지독한 두통, 그리고 온몸이 마비되거나 종양이 생기는 등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도 특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만성 질환을 앓았다. 이에 따라, 그는 수사학자로서의 경력에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세상의 의학으로는 병을 고칠 수 없었던 아리스티데스는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에서 치유를 구했다. 그는 『신성한 이야기』에서 자신의 나약한 신체와 질병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백하는 한편,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이 책은 증상과 꿈을 날짜별로 짧게 기록한 메모 일기 형태의 제1권과, 시간 순서 없이 내러티브 형태로 서술된 제2-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의 주인공은 아리스티데스이지만, 2-6권의 주인공은 아스클레피오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스클레피오스에 관한 서사를 풀어 놓는다. 이 두 부분 사이의 불일치를 두고 학계는 의문을 제기해 왔다. 탈리아부에(Tagliabue)는 이러한 2부 구성이 아스클레피오스의 개입을 극대화하고 이른바 ‘아스클레피오스 서사’를 정교하게 구축하기 위해 저자가 의도한 고도의 문학적 전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Tagliabue, 2016: 127-128).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1권은 자신의 건강 상태와 꿈을 통한 처방을 기록한 일기다. 신이 지시한 독특한 치료법(찬물 목욕, 금식, 특정 피를 뽑는 사혈 치료 등)과 이에 따름으로써 얻은 치유의 경험을 시간순으로 거의 매일 나열한다. 2권에서는 자신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서술 방식을 설명하고, 아리스티데스가 로마 여행 중 심각한 질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시점부터, 아스클레피오스신의 계시를 받고 스미르나와 페르가몬의 신전으로 인도되는 과정을 다룬다. 또한, 신전 입문 과정과 신이 자신을 특별히 선택받은 자로 구원해 주었다는 신앙적 확신이 형성되는 계기를 설명한다. 3권에서는 장기간 지속된 병마 속에서 신이 어떻게 끊임없이 그를 보호하고 위험에서 구했는지 보여준다. 신의 처방이 의학적 상식과 충돌하는 경우들을 소개하고 믿음을 가지고 이를 이행했을 때 기적적인 회복이 일어남을 설명하기도 한다. 4권에서는 저자의 수사학적 재능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단순히 육체의 병을 고쳐줄 뿐만 아니라, 연설문 주제를 제시하거나 웅변 기량이 향상되도록 영감을 주어 그를 당대 최고의 수사학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주장한다. 5권에서는 전염병(안토니누스 역병 등)이나 역경 속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신의 은혜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기록한다. 자신을 향한 신의 각별한 사랑을 강조한다. 6권은 전체 작의 마무리로서 자신과 신의 영적 일치감을 고백한다. 2-3권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치유에 집중하고, 4-5권은 신이 아리스티데스를 웅변가로서, 신앙인으로서, 엘리트로서 어떻게 발전 시켜주었는가에 집중하는 면을 보인다. 신은 질병의 치유뿐 아니라, 개인의 발전에도 개입한다.
3.1. 형식먼저, 1권은 서론 격인 첫 부분과 아스클레피오스의 명을 잘 따른 자신과, 따르지 않은 아버지의 상반된 운명을 다룬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연속되는 메모 일기 형태이다. 소피스트인 그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이런 형식을 채택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병자와 소피스트 두 가지 모두에서 찾는다. 그는 병을 치유하는 중에도 자신의 상태와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일기로 기록했다. 이는 매일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는 수사학적 선택이다. 글의 서두에서 그는 “파도를 다 헤아릴 수 없듯이 일어난 모든 일을 다룰 수는 없다”고 말한다.11) 그가 기록한 자료가 매우 방대하기 때문이다(그는 자신의 기록 모두를 책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1권에서 약 두 달 간 거의 매일 쓴 일기를 그대로 담으면서 자신이 어떤 일기를 썼는지 예시를 보여준다. 날짜 – 장소 - 자신의 상태 설명 - 꿈의 내용 - 결과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를 담았다. 먼저, 자신의 상태를 전한다. 그는 거의 계속 배가 아프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소화불량이 있다. 신은 그에게 목욕하지 말라고 명령하는데, 이를 어길 때는 토하거나 어지럼증에 시달린다. 신이 신호를 보내면 목욕을 할 수 있는 날도 있다. 꿈에서는 몸의 불편한 상태가 적과의 분쟁이나 조약 협약, 불편한 상대의 등장 등으로 표현된다. 다음으로, 신에 대한 숭배와 찬양을 담는다. 황제에게 입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아스클레피오스를 숭배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꿈에서 일신교와 같은 절대적 순종의 태도를 드러낸다. 또한, 아스클레피오스 치유가 인정받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한다.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꿈에서 안토니누스 황제와 메데스의 왕이 자신의 연설을 듣고 싶어 하고 자신에게 감사를 전하는 내용, 친구들이 실제로 방문해서 그가 침상에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 공부가 위안이 된다는 내용을 쓴다. 1권은 전략적으로 일기의 원본을 일부 보여주는 형식이다.
아리스티데스는 약 300,000줄의 분량을 썼다고 증언하며, 이 중 일부는 헷갈려서 버리거나 잃어버렸다고 한다.12) 그 방대한 양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그는 144년 말부터 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초기부터 아스클레피오스는 자신의 치유를 기록하라고 명한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러, 꿈의 계시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 일들을 밝혀 드러내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만큼은 말할 수 있으니, 처음부터 신께서 나에게 내 꿈들을 기록하라고 명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분의 첫 번째 명령이었다.13)
내 양아버지는 신이 이러한 모습으로 나의 이 연설들에 관한 다른 일들을 자신과 논의했으며, 이 계획을 “신성한 이야기”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에 대한 승인의 뜻을 나타내셨다고 말했다.14)
1권만 비교하면 이아마타와 유사하지만, 그러면 2-6권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놀랍게도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의 『유행병』과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유행병』 역시 구조적으로 이분할 수 있는데, 유행병에 걸린 환자를 방문하며 메모식으로 정리한 사례 부분과, 이 사례들을 모아서 그해 유행병의 경향을 도출한 ‘구성(καταστάσις, constitution)’ 부분이다. 그리스 문화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소피스트로서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에 살면서 아리스티데스는 히포크라테스를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가 히포크라테스의 서술방식을 따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례 부분은 아리스티데스의 1권과 유사하며, 구성 부분은 2-6권과 유사하다. 사례를 비교해보자.
『유행병』 1권 사례 14
헤라 신전 근처에 아파서 누워있던(신전의 한 자리를 잡음) 멜리디아는 머리와 목, 가슴의 격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급성 열병에 걸렸고, 약간의 생리혈을 흘렸다. 이 모든 부분의 지속적인 통증이 있었다.
여섯째 날. 혼수상태, 메스꺼움, 엄격함, 볼에 홍조증, 경미한 망상
일곱째 날. 땀, 열은 있다 없다 했고, 고통은 여전했다. 재발, 약간의 수면, 좋은 색상의 소변, 그러나 가는 소변, 대변은 가늘고 담즙 과다, 매서움, 매우 빈약하고 검고 악취, 소변 속의 희고 매끄러운 침전물, 땀,
열한 번째 날. 고비 끝.
『신성한 이야기』 1권 6절
그달 12일에 신께서 나에게 목욕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고, 그 다음 날과 또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사흘 동안 밤낮으로 연속해서 완전히 땀을 흘리지 않고 지냈으므로 심지어 속옷을 입을 필요조차 없었으며, 그 전에는 한 번도 내 자신이 이보다 더 편안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침 이 기간이 축제일이었기에, 나는 집 안을 걸어 다니거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포세이돈을 기리는 앞선 축제에 이어 신을 위한 철야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신성한 이야기』가 더 문어체이긴 하지만, 둘 다 간결하게 있었던 일을 정리한 것이다. 날짜(와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며, 증상과 처방, 예후를 있는 그대로 적고 있다. 수사가 거의 없고, 묘사와 설명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경험하는 주체는 환자이다. 다만, 『유행병』에는 신이 등장하지 않고, 『신성한 이야기』에는 신이 등장한다. 아리스티데스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찬양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만, 그 형식은 히포크라테스를 빌린다. 그는 “하지만 이제 나의 복부 상태를 당신에게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매일매일의 일들을 하나씩 헤아려 기록하겠습니다”라고 글의 서두에 밝힌 바 있다.15) 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가 그랬듯이 이부분에서 평가나 의미의 도출과 같은 저자의 내러티브는 발견할 수 없고, 그 내러티브의 재료가 되는 이야기들만이 있다. 피어시는 재료가 되는 이야기들을 “아포그라페(ἀπογραφή)”로, 저자의 의도가 들어가는 내러티브를 “디에게시스(διήγησις)”로 구분하여 아리스티데스의 글을 설명한다(Pearcy, 1988: 380).
『유행병』의 저자는 3권의 구성 에서 “알다”를 뜻하는 동사로 에우포레오(εὐπορέω)를 사용하는데, 이는 “지식을 갖다, 의심을 풀다”의 뜻이다(이상덕, 2023: 221).16) 저자는 축적된 지식의 중요성을 이 동사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자기 생각을, 사례를 통해 풀어낸 디에게시스이다. 한편, 『신성한 이야기』 2권의 초반부에 아리스티데스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자신의 여정과 의사들이 자신을 고치지 못했던 무력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아스클레피오스 신이 아리스티데스를 치유하기 위해 찾아오며, 이 시점부터 텍스트는 신에 의해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초점이 옮겨진다.17) 그 결과 2-6권에서는 신이 서사의 주인공이 되며, 이 부분은 아리스티데스가 생각하는 ‘아스클레피오스에 관한 디에게시스’가 된다. 이러한 서사 구조의 변화는 독자의 심리와 종교적 경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1권의 서사는 파편적이지만, 시간의 구속이 사라진 2-6권의 서사는 독자가 시간의 제약을 벗어난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초월적 시간과 신성한 섭리를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짧은 메모들은 저자의 생각을 이끌어내기 위한 재료로 활용되며, 이 재료를 통해 저자는 확장된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아리스티데스는 이 방식을 활용하여 아스클레피오스의 위대함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 주목할 점은 꿈에서 아스클레피오스의 신탁을 보는 것에 대한 느낌,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이아마타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ἐδόκουν τοῦτο μὲν τὸν ἥλιον ἐκ τῆς ἀγορᾶς ἰδεῖν ἀνίσχοντα, τοῦτο δὲ ἀνὰ στόμα ἔχειν “Ἀριστείδης μελετήσεται τήμερον ἐν τῷ βουλευτηρίῳ ὥρας τετάρτης. ταῦτα φθεγγόμενος καὶ τούτων ἀκούων ἀφυπνιζόμην, ὥστε διεσκόπουν εἴτ᾽ ὄναρ εἴη εἴθ᾽ὕπαρ.
나는 한편으로는 아고라(광장)로부터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본다고 생각했고(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입상에 오르내리는(소문이 자자한) 것을 들었다. ‘아리스티데스가 오늘 네 시에 평의회 회의장에서 연설을 할 것이다’라는 말을. 이러한 것들을 (내가) 말하고 또한 이러한 것들을 (내가) 들으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이 꿈에 본 것이었는지 아니면 깨어서 본 것이었는지를 분별하고자 깊이 살폈다.18)
굵은 글씨에서 보이듯이 이 부분에서도 꿈을 보는 단어는 ‘도케오(δοκέω)’를 사용하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명확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본다고 생각”하거나, “느낀” 것이다. 그는 이것이 “꿈에 본 것(ὄναρ)이었는지 아니면 깨어서 본 것(ὕπαρ)이었는지” 헷갈린다. 신은 이렇듯 알 듯 모를 듯한 행적을 베풀지만,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실제이고 현실이다.
3.2. 메시지이 글에서 주요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스클레피오스를 찬양하고, 저자가 신과 아주 가까운 관계임을 강조한다. Hieroi Logoi는 문학 장르의 하나이기도 한 데, 종교적 활동이나 의식에 대한 원인론적 설명, 또는 “계시를 내리는 남신이나 여신의 현현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어쩌면 이는 당연하다(Festugière, 1954: 88; Petsalis-Diomidis, 2010: 125). 아리스티데스는 다양한 표현으로 신을 찬양한다: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이자 아폴론이었다. 둘 다 클라로스의 신이며, 칼리테크노스(아름다운 자손을 둔 자)이자, 세 개의 신전 중 가장 먼저 신전을 받은 신이었다.19)
여기서 나는 신에게 다른 것들을 소리쳤고, 그를 “운명을 결정하는 자”라고 불렀다.20)
아스클레피오스는 아리스티데스에게 최고의 신탁을 가진 아폴론 신과 동일시 되며, 탄원자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구원자로 표현되었다. 신은 그를 질병의 운명에서 구원했고, 연설가로 훈련 시켰으며, 그에게 살아갈 의지를 다시 불어넣어 주었다(Israelowich, 2012: 137). 아리스티데스는 방대한 양의 메모 일기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모호한 환영(꿈)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에 기억이 제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신을 찬양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모티브에 따라 시간을 들쭉날쭉하게 작성하였다.
아리스티데스는 『신성한 이야기』의 실질적인 화자가 아리스티데스 본인이 아니라 아스클레피오스 신이라고 독자들이 믿도록 이끈다. 그는 『신성한 이야기』의 서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어떤 사건을 포함해야 할지, 그리고 더 나아가 무엇이 유의미한지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그대로 표현한다(Israelowich, 2012: 21-22). 예를 들어, 서기 149년 1월에 클라조메나이와 포카이아를 거쳐 키오스섬으로 떠났던 순례길을 묘사한 후 아리스티데스의 서사는 잠시 멈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앞으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야 할 지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러나 주인이시여, 이다음에 이어질 내용은 주인께서 명확히 밝혀주시고 드러내 주실 몫입니다. 저희가 무엇을 말하고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주인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미 강과 지독한 겨울, 그리고 목욕에 대해 언급했으니, 다음으로도 이와 같은 범주의 다른 일들을 말씀드리며 마치 겨울철의 신성하고도 매우 기이한 목욕의 목록을 엮어내듯 해야 하옵니까? 아니면 이야기를 나누어 그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필해야 하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중간의 일들은 모두 건너뛰고 제 첫 번째 이야기의 결말, 즉 그 세월에 대한 신탁이 어떻게 유지되었고 모든 것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를 전하는 편이 가장 좋겠습니까?21)
그 역시 시간순으로 사건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신의 뜻에 맞도록 글을 쓰기 위해 고심했던 것이다.
아리스티데스는 신을 찬양하는 한편, 자신의 고통과 치유, 그리고 명예를 알리려고 한다. 5권에서 그는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에서 신이 자신을 어떻게 구원했는지 꿈을 그대로 적는다. 그는 “꿈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울리는 듯하고, 이를 빼놓을 이유도 없어서” 적는다고 한다.22) 꿈에 두 명의 의사가 히포크라테스에 따라 10 스타데스를 달려가서 찬 바닷물에 목욕하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 실제로 행하자 “발을 끌지도 않았고, 거센 북풍이 내 겉옷을 날렸다. 땀이 많이 났다. 바람이 멈추지 않아 내 몸을 식히도록 뒀다. 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쁘게 물에 들어갔다. 일어났을 때 모래가 묻어 중간쯤 가서 한 번 더 씻었다. 몸을 좀 문지르고 반대쪽 둑으로 가서 햇빛 아래 살랑거리는 바람에 쉴 수 있었다... 따뜻함을 즐기고 완전히 다른 몸 상태를 느꼈다.”23) 몸이 너무 아파서 불가능할 것 같은 치료도 신의 뜻에 따르면 가능하다. 그는 이렇듯 신의 뜻을 따르면서 자신이 신과 매우 가까운 관계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다우니는 이를 “전문가적 자화상(professional self portrait)”이라고 이름 지었다(Downie, 2008: 116). 저자는 또한 꿈에서 누군가가 “테오도로스 만세!”라고 소리쳐서 테오도로스, 즉 신의 선물이 별명으로 지어졌다고 하고, 뒤에 “아시아의 지도자(Asiarch)”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24) 신을 전지전능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하고 그 신과 자신의 관계를 가깝게 정립함에 따라 자신을 훌륭한 인물로 격상시키는 전략을 편 것이다. 이는 다음 절에서 아리스티데스의 제2 소피스트적 특성과 연관해서 더욱 깊이 살펴볼 것이다.
3.3 아리스티데스의 제2 소피스트적 면모와 치유 기록의 변화제 2 소피스트 운동(Second Sophistic)은 로마 제국 전성기에 그리스어 문화권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문화적, 수사학적 부흥 운동을 뜻한다. 이는 “포스트고전주의(post-classisism)”와 같은 개념을 생성하기도 했다(Whitmarsh, 2013: 1).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과거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영광(특히 고전기 아테네)을 그리워하며, 당시의 순수한 언어와 화려한 웅변술을 로마 제국이라는 새로운 무대 위에서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리스와는 달리 정치적 실권이 로마 황제에게 넘어간 시대였기에, 골치 아픈 정치 논쟁보다는 수사학의 예술적 아름다움, 연극적인 공연, 그리고 고전 그리스 문화의 보존에 치중했다. 이 시대의 뛰어난 소피스트들은 인기가 많아 그들이 도시에 와서 극장에서 즉흥 연설을 하면, 황제를 비롯한 수천 명의 관중이 몰려들기도 했다. 이들은 멋과 순수성을 위하여 당시 일상에서 쓰이던 쉬운 그리스어(코이네)를 거부하고, 기원전 5세기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가 쓰던 까다롭고 고전적인 아티카 방언을 구사했으며, 그리스 스타일의 웅변을 즐겼다(김경현, 2015: 118). 이는 결과적으로 지독한 자부심과 자기애를 낳았다. 아리스티데스의 글에서도 보이지만, 이들은 황제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대단한 지적 자부심을 가졌다. 고전기 유행하던 히포크라테스 의학과 치유의 이아마타는 소피스트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특히 아리스티데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치유 기록으로 변화했다.
아리스티데스는 제2 소피스트 중 한 명으로서 극심한 고통을 장기간 경험했지만, 그의 경험을 제2 소피스트답게 표현했다. 이 절에서는 아리스티데스가 자신의 소피스트적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냈고, 어떻게 수사학을 이용했으며, 소피스트로서의 자긍심과 자기애를 표현한 방법을 살펴본다. 아리스티데스는 페르가몬의 성소에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친구들을 만났고, 성소의 의사나 사제들과 자주 대화했다.25) 성소의 의사 앞에서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자신 있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페르가몬에는 상당한 지위를 지닌 소피스트라고 인지되던 의사 사티루스(Satyrus)가 머물고 있었다. 이 사람이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찾아와 나의 가슴과 복부를 진찰하였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혈을 했는지 듣게 되자, 그는 내게 사혈을 당장 중단하고 신체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사티루스는 ‘대신 내가 그대의 위와 복부에 바를 매우 가볍고 단순한 고약을 줄 것이니, 그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보게 될 것일세’라고 말하며 이러한 처방들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나의 피에 관해서라면, 나는 그 어떠한 권한도 나에게 없음을 알려주었다. 오직 신께서 나의 사혈을 명령하시는 동안에는 내가 기쁘든 그렇지 않든 오직 복종할 뿐이며, 나아가 결코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티루스의 처방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 보관해 두었다. 내가 (모든 처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풍요의 뿔(Cornucopia)은 아니었기 때문이다.26)
여기서 풍요의 뿔은 일종의 유머다. 그는 자기가 의사와 대등하게 토론하고 있으며, 자신이 무조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잣대로 판단하고 배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식이 있으면서도 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지식을 가지고도 다른 이를 배려하고, 신을 숭배하는 경건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리스티데스는 스스로를 아프지만 역량이 있는 자로 묘사한다. 4권에서는 신이 그에게 웅변을 다시 하도록 독려하고, 5권에서는 관직으로 나아갈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는 숭고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페르가몬에 있을 때 연설을 다시 시작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 꿈에서 신은 그에게 소크라테스, 데모스테네스, 투키디데스, 혹은 그 정도로 당대에 뛰어났던 사람들과 나란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전 스토아에 가서 즉흥적인 경연 연설의 첫 작품들을 바치라고 명령했다... 웅변을 하면 숨을 쉴 수 있었다... 세다티우스라는 친구와 종종 꿈을 해석하곤 했는데, 이 꿈에 대해서 아리스티데스가 자신 없어 하자, 그는 자신이 청중이 될 것이고, 그 꿈이 어떤 대단한 것을 준비한 것일지 모른다고 응원한다.27)
의사 포르피리오가 키지코스 사람들(Cyzicenes)에게 와서, 마치 아테나 여신이 파이아케스인들에게 말했던 것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내게 보였다. 그는 나를 극찬하고 그들이 내 연설을 들을 수 있도록 홍보했다. 그들은 설득되었다.28)
여기서 신의 명령을 받기도 하지만, 인간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는 세다티우스라는 친구와 성소의 그늘에 앉아서 지난밤 꾼 꿈에 관해 토론하곤 했다고 전한다. 이 부분에서도 웅변을 다시 하라는 신의 명령의 속뜻을 가늠하려고 둘은 노력한다. 또한, 의사인 포르피리오가 키지코스 사람들에게 아리스티데스의 웅변을 들으러 가라고 설득하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아리스티데스를 돕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그리스 문화를 잘 아는 것을 충분히 드러낸다. 소크라테스, 데모스테네스, 투키디데스의 이름을 자신과 동등한 선에 언급하며, 『오디세이아』의 모티브를 활용한다. 그리스 문화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데, 4권에서 아리스티데스는 직접 아테네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소에 머문 이야기를 전하며, 이때 리케이온도 방문했다고 한다.29) 그는 5권에서 자신이 플라톤이고 투키디데스라고 한다.30)
한편, 꿈에서 아리스티데스는 총독 세베루스로부터 관직(liturgia) 제안을 받는다.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총독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티데스는 이를 거절한다:
세베루스가 관직을 제안하자... 나는 내가 이 일들에 관하여 총독의 서기에게 말하는 꿈을 꾸었다. 그 서기가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가 모든 사정을 전해 듣고는, (이전의) 판결을 취소하고 변경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으며, 나에게 500드라크마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다.31)
500 드라크마는 큰 돈이 아니다. 결국 여러 행정처리를 하고 마지막에 계산해보니 딱 500 드라크마를 썼다고 한다. 꿈과 들어맞는 현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강직한 면모까지 완벽한 구성이다.
역량을 충분히 표현한 아리스티데스는 자신의 훌륭함을 한 부분에서 과도하게 표현한다:
(꿈에서) 그리고 그곳 신전의 오른편에서 나는 나와 필립포스의 아들 알레산드로스를 위한 공동의 기념비(무덤)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중간의 칸막이벽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다. 그는 한쪽에 누워 있었고, 나는 다른 한쪽에 눕게 될 것이었다. 그곳에 서서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나는 향의 기이하고도 달콤한 냄새를 즐겼다. …… 나는 기뻐하며 우리 두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추측(확신)했다. 즉, 그는 군사적 권력(무력)에서, 나는 수사학적 권능(연설 능력)에서 말이다.32)
알렉산드로스와 자신이 동급으로 등장하는 이 꿈은 어쩌면 꿈이 픽션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면, 비난받을 것이지만, 꿈이었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아리스티데스는 당대 제 2소피스트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에게 어떤 계획된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경향에 발맞추어 자신의 위트와 대범함을 이렇게 표현했다(Borg, 2005: 157-158).
마침내 아리스티데스는 책을 마무리할 장소로 에피다우로스를 택한다:
이처럼 신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일을 지시하시며 무엇을 해야 할지 징표를 주셨고, 신을 따르는 그 어떤 이 못지않게 우리 역시 신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아이세포스 강을 떠난 지 2년째 되던 해이자, 병을 앓기 시작한지 12년째 되던 해에, 내게 수많은 경이로운 환영이 찾아왔으며, 이는 나를 신성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지인 에피다우로스로 인도하였습니다.
매우 짧은 6권을 추가하면서 에피다우로스에 갔다고 하는 것은 시간순 때문은 분명 아니다. 에피다우로스를 방문한 해를 계산해 보면 서기 155년 경이다. 이는 의도를 가진 편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티데스는 글 전반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묘사하고, 꿈을 통해 치유받는 과정을 설명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찾는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을 경험했지만, 결국 마무리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제1 성소로, 그리스 치유 문화의 한가운데로 돌아간다. 이는 길게 이어질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에 짧다. 아리스티데스는 결국 아스클레피오스의 고향으로, 치유의 본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글의 구성으로도 표현해 냈다.
4. 결론: 치유 기록의 의미고대의 치유 기록들은 현대 우리에게 단순한 ‘기적의 보고’나 신화적 이야기를 넘어,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 다층적인 의미를 전달했다. 우선, 종교적 선전과 교육적 의미이다. 에피다우로스의 이아마타와 같은 거대한 비문들은 신전의 눈에 띄는 장소(아바톤 실내 등)에 전시되어 성소를 찾는 초기 방문객들에게 강력한 시각적 효과를 주었다. 신을 의심하거나 비웃던 자가 치유를 통해 개과천선하는 ‘믿지 않는 자’의 이야기 등은 성소를 찾는 탄원자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교화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기록을 읽거나 듣는 행위 자체가 치유 의례의 전초 단계였으며, 탄원자들에게 나도 나아질 수 있다는 심리적 확신과 공동체적 신뢰를 심어주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질병의 원인은 신의 징벌과 같은 초자연적인 원인으로만 치부되지 않았다. 이아마타의 기록에서도 질병의 원인 자체는 대개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아스클레피오스의 치유 방식 역시 당대 인간 의사들의 기술을 밀접하게 모방하고 있었다. 즉, 인간 의술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신적 개입이라는 초자연적 영역을 덧입힘으로써,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려 했다는 당대의 유연한 인식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치유 기록은 ‘인간 경험의 사적 역사’다. 역사서가 주로 왕들의 전쟁과 정치적 대사건만을 다룰 때, 치유 비문과 아리스티데스의 기록은 고대 평범한 민중들, 여성, 노예들이 일상에서 마주했던 가장 날것의 고통과 질병, 그리고 간절한 염원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보존하여 우리에게 전해준다. 신의 거대한 행적을 찬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질병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꿈을 통해서라도 구원을 갈구했던 고대인들의 생생한 삶의 태도가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기원전 4세기 에피다우로스 성소의 공적 치유 비문인 이아마타, 로마 공화정기 크레타 레베나 성소의 이아마타, 그리고 서기 2세기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의 자전적 텍스트인 『신성한 이야기』를 대상으로 아스클레피오스 치유 내러티브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추적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앙은 수면의식과 꿈을 공유하는 지속성을 지니지만, 당대의 지성적 흐름과 결합하며 내러티브의 구조적 전환을 이루었다. 도케오(δοκέω, ~처럼 보였다) 동사는 주관적인 신의 현현은 뚜렷하게 경험했지만, 흐릿한 꿈이어서 명료하게 기억하기 어려운 상태를 표현했다. 이는 1인칭의 경험을 정당화시켜주는 언어적 도구였다. 고전기의 사제들이 초자연적 기적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 동사를 사용했다면, 아리스티데스는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포장하기 위해 이 동사를 사용했다. 아리스티데스의 『신성한 이야기』는 과거의 지식적 기반을 모두 포섭하되, 서사의 중심을 주관적 내면으로 이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아리스티데스는 아테네와 리케이온 순례, 꿈속의 로마 총독 대면, 신과의 독점적 친밀성, 고전기 거장들과의 영적 경연이라는 네 가지 페르소나를 전면에 부각한다. 이는 제2 소피스트기 엘리트 특유의 자기애와 문화적 교양이 치유 서사를 전유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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