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8년∼1351년 1차 흑사병 창궐 원인에 대한 당대 의학계의 인식: 전통적 인식론에서 독(poison) 이론까지

Medical knowledge of medieval physician on the cause of plague during 1347/8-1351: traditional understandings to poison theory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Med Hist. 2022;31(2):363-392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2 August 31
doi : https://doi.org/10.13081/kjmh.2022.31.363
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History, Sungkyunkwan University
이상동,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서양중세사 전공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서양중세사 전공 / 이메일: lacadem@skku.edu
Received 2022 June 27; Revised 2022 July 21; Accepted 2022 August 24.

Abstract

This article sets its investigative goal on determining the medical knowledge of medieval physicians from 1347-8 to 1351 concerning the causes of plague. As the plague killed a third of Europe’s population, the contemporary witness at the time perceived God as the sender of this plague to punish the human society. However, physicians separated the religious and cultural explanation for the cause of this plague and instead seek the answer to this question elsewhere. Developing on traditional medical knowledges, physicians classified the possible range of the plague’s causes into two areas: universal cause and individual/particular causes. In addition, they also sought to explain the causes by employing the traditional miasma-humoral theory. Unlike the previous ones, however, the plague during 1347-8 to 1351 killed the patients indiscriminately and also incredibly viciously. This phenomenon could not be explained by merely using the traditional medical knowledge and this idiosyncrasy led the physicians employ the poison theory to explain the causes of plague more pragmatically.

1. 서론

중세 서유럽에서 이른바 ‘1차 흑사병’이 창궐한 기간은 일반적으로 1347/8년부터 1351년까지로 알려진다. 이때의 역병은 1347년 시칠리아에서 시작하여 1348년 알프스를 넘어 서유럽의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하여 1351년까지 지속되었다. 역병이 창궐했던 기간은 3∼4년에 불과했지만 서유럽 인구의 1/3 정도가 사망하는 미증유의 사태를 초래했다.1), 이전에도 전쟁과 질병 그리고 흉년에 따른 기아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기는 했다. 하지만 1차 흑사병 창궐의 경우 처럼 단기간에 인구의 1/3 가량이 감소하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로 큰 충격을 주었다.2) 당시의 실상에 대해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75년 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1348년의) 재난은 이렇듯 너무나 큰 공포를 남자들과 여자들의 가슴 속에 심어 놓았고, 형제가 형제를 버리고 삼촌이 조카를, 누이가 남동생을, 그리고 더 흔하게는 아내가 남편을 저버리게 했다. 믿기 어렵지만 더 심각하게도 부모가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닌 듯 돌보는 것도 간병하는 일도 거부했다. … 매일 수천 명씩 (역)병에 걸렸다. 그들을 보살피고 병간호할 사람이 없었기에 예외 없이 모두 죽어 갔다. 밤낮 할 것 없이 길거리에 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집안에는 더 많은 시체가 놓여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나면 그제서야 이웃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시 전체에 걸쳐 모두가 죽었다. 시체가 여기저기 사방에 널려 있었다(Boccaio, 1995: 8-9).

당대의 대중 사회는 이렇게 큰 재앙이 왜 자신들에게 닥쳤다고 생각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인간 본성 및 당대 사회의 종교·문화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실존에 대한 자기 확신보다는 불확실성에 압도되어 불안에 떠는 자아를 직면한다. 그런 인간은 자아에 대한 믿음보다는 초월적 존재에 기대는 경향이 커진다. 이러한 의존성은,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극단적 재난에 직면했을 때 더 확대되고 심화된다. 14세기 중반에 창궐한 흑사병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흑사병 창궐에 따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회 전체를 공황에 빠뜨렸으며, 극도의 공포를 야기한 역병을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기독교적 전통이 종교·문화적으로 지배하던 14세기 유럽의 시대적 맥락 아래에서 인간 사회가 역경에 직면했을 때 신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 사회는 인간 사회가 범한 죄에 대해 신이 분노하였고 그에 따라 신이 역병, 즉 흑사병을 내려 인간 사회를 벌하고 있다고 믿었다(이상동, 2021a: 390-392). 종교와 관련된 시대적 맥락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이라는 인간 본성에 기반하여 대중 사회는 흑사병의 원인을 신의 분노에서 찾았다.

대중 사회가 그런 믿음 하에 있었다고 하여 당대 사회 전체가 그랬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동시대의 같은 공간 아래에서 여러 주체들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이 공존하며 복잡한 형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창궐함에 따라 대중 사회는 자신들이 직면한 대재앙의 원인을 신의 분노로 돌렸지만 사회의 다른 측면, 정확히 말해서 본 글에서 논의할,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 집단은 다른 견해를 가졌다. 그들은 당대의 종교·문화적 에피스테메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종교·문화적 맥락과 거리두기를 하며 역병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직면한 재앙의 원인을 단지 초월적 존재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의학·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본 글은 14세기 중반 서유럽에서 흑사병이 처음으로 창궐했을 당시 의사 집단이 역병의 원인을 어떤 인식론적 틀에서 이해했으며, 또 흑사병이라는 대재앙은 역병의 발생 원인을 인식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본 글은 14세기 중반 서유럽을 강타한 역병의 발생 원인에 대한 당대 의학계의 인식론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Ⅱ. 전통적 인식론

중세 서유럽 기독교 세계·우주관에서 ‘제1 운동자(prime cause)’는 다른 모든 것의 작동을 시작·가능하게 하는 신이었다. 그러나 13∼14세기 들어 기존의 세계·우주관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변화는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이 서유럽에 유입됨에 따라 스콜라주의가 신학의 범주를 넘어 지적 영역을 확대하였고, 여기에 더해 14세기 오컴을 통해 유명론이 체계화되는 과정과 관련 깊다. 13∼14세기 지적 세계가 변화하면서 기독교의 자연 철학자들은 우주의 모든 현상이 비록 제1 운동자에 의해 주재되지만 2차 원인, 즉 자연법칙에 좌우된다고 인식하였다. 후자의 경우는 인간 이성으로 규명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와 같은 13세기와 14세기의 학문적 경향의 영향으로 14세기 중반 의사·지식인 계층은 신이 제1 원인으로서 역병을 발생시키지만 또 한편으로 자연법칙이 2차 원인으로 역병을 초래한다고 이해하였다(Arrizabalaga, 1994: 248-249). 이때 2차 원인은 다시 보편(universal) 원인과 특수·직접(particular) 원인으로 구분된다. 14세기 대학에서 교육받은 의사들은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지만, 다시 말해 1348년 역병의 원인을 제1 운동자인 신의 의지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2차 원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1) 보편 원인

위에서 언급했듯이 14세기 의사들은 당대 지적 세계의 영향 하에서 역병의 원인을 신과의 관련성에서 벗어나 자연법칙에 근거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런 시도는 천체의 운행을 읽는 천문학, 그리고 천체의 운행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술을 통해 구체화하였다. 그들이 채택한 천문·점성술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 전통은 아랍을 거쳐 서유럽으로 전파되었다(Aberth, 2021: 62; Campion, 2009: 69-84). 13세기 말〜14세기 초 당대 최고의 지성이던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308년 몰)가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천문학 지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듯이 서유럽의 의사들에게 천문·점성술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Thorndike, 1934: 5).

이에 대해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점성술에 따르면 천체는 12등분 된다. 이를 황도십이궁(Zodiac)이라고 한다. 황도십이궁에서 개별 별자리는 인간 개인의 체질(기질) 및 그의 미래를 주관한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시기에 해당하는 별자리가 규정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게 점성술이 미래를 예측하는 근거이다. 별자리는 인간의 건강과도 연관되어 각각의 별자리는 신체의 특정 부위에 영향을 미친다. 별자리와 인간 신체의 상관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조디악 맨(Zodiac man)’에 따르면, 예컨대 양자리(Aries)는 머리, 황소자리(Taurus)는 목, 쌍둥이자리(Gemini)는 팔과 어깨, 게자리(Cancer)는 가슴, 사자자리(Leo)는 배와 가슴의 건강 상태를 관장한다. 이는 중세 의학에서 가장 대표적 치유법인 사혈의 시술과 연결된다. 사혈은 나쁜 피를 뽑아냄으로써 체액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의학 전통에 기반을 두었다. 의사는 치료를 잘하기 위해 즉, 사혈을 효과적으로 시술하기 위해 치료하고자 하는 부위에 대응하는 별자리의 상황을 살펴야 했다(Wee, 2015: 217-233; Clark, 1979; Rudy, 2019). 예컨대 배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는 사자자리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언제 사혈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계산한 후 시술하였다. 당대 의사들에게 천문 지식이 필수적인 이유였다.

당대 의사 집단은 1348년 역병 창궐의 보편 원인으로 천체의 배열을 꼽았다. 역병은 천체를 운행하던 행성이 다른 행성과 일직선으로 정렬하여, 즉 ‘합(合)’ 함에 따라 발생하며 이것이 역병을 발생시키는 보편 원인이라고 여겼다. 1348년 창궐한 역병의 보편 원인이 천체의 운행에 있다는 주장은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에 의해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되었다. 그들은 프랑스 왕 필리프 6세(Philippe VI, 제위: 1328∼1350년)의 명령에 따라 1348년 10월에 역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에 따르면 1348년 역병의 원인은 1345년에 있었던 천체의 운행에서 찾을 수 있다. 1345년 3월 20일 세 개의 행성이 물병자리(Aquarius)에서 ‘합’하였다. 우선 토성(Saturn)과 목성(Jupiter)이 일직선상에 놓였고 이어서 화성(Mars)이 합쳐졌다. 이때의 ‘합’은 이전에 발생했던 행성의 (소규모) ‘합’ 및 일(월)식과 더불어 공기를 부패하게 했고, 그 결과 1348년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게 그들의 해석이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를 둔다. 그는 토성과 목성이 일직선상에 위치하면 여러 인종과 많은 왕국에서 상당수의 사람이 사망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스콜라 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280년 몰)는 화성과 목성이 일직선상에 정렬하면 공기가 부패하게 되어 대역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특히 행성의 ‘합’이 황도십이궁 중 물병자리와 같이 따뜻하고 습한 별자리에서 진행되면 큰 역병이 창궐한다고 진술하였다. 다시 말해 목성은 습하고 따뜻한 속성을 지녀서 물과 토양으로부터 사악한 증기(vapour)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한편 화성은 과도하게 뜨겁고 건조한 행성으로 화기가 강하기 때문에 천둥과 불꽃을 만들어내며 유독한 증기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속성을 갖는 목성과 화성이 물병자리와 같이 따뜻하고 습한 속성의 별자리에서 ‘합’했기 때문에 사악한 증기가 훨씬 강하게 생성된다는 게 마그누스의 주장이다(Horrox, 1994: 159, 169; Kubel, 1980: 63). 이와 같은 견해에 근거하여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은 1345년 세 행성이 물병자리에서 ‘합’한 것이 1348년 역병의 창궐로 이어졌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들은 또 1345년 행성의 ‘합’에 더하여 1347년 화성의 운행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화성은 1347년 10월 6일부터 1348년 5월 말까지 사자자리(Leo)에 있었다. 그런데 사자자리는 따뜻한 속성을 지닌다. 화성 역시 따뜻한 속성을 가졌기에 둘의 ‘합’은 화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많은 증기를 발생시켰다. 이런 현상이 발생할 당시 화성은 ‘역행’했다. 행성 운행의 기준 방향인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화성의 ‘역행’은 바다와 토양에서 많은 증기를 끌어내고, 이어서 증기는 공기와 섞인다. 결국 공기가 부패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당시 황도십이궁도 상 화성과 목성의 위치도 문제였다. 황도십이궁도 내에서 화성이 목성을 상대로 90도 되는 곳에 위치하였다. 이러한 각도는 두 행성을 적대 관계로 만들고, 그 결과 공기 중에 사악한 기운을 발생시킨다. 이런 상황은 강한 바람, 특히 남풍을 동반한다. 남풍은 대지에 과도한 열기를 가져오고 공기를 지나치게 습한 상태로 만든다(Horrox, 1994: 159-160).3) 이렇게 되면 사악한 증기의 영향을 받아 공기의 부패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상에서 논의한 것이 1348년 역병 창궐의 보편 원인으로 천체의 배열을 제시했던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의 해석이다.

그들 외에도 당대의 다른 의사들 역시 1348년 역병의 원인으로 천체의 운행에 대해 언급하였다. 예컨대 알폰소(Alfonso de Córdoba)는 1348년 흑사병이 최초로 창궐했을 때 그 원인을 사자자리에서 불길한 행성들이 ‘합’함에 따라 월식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Aberth, 2017: 46). 자크 다크라몽(Jacme d’Agramont), 시몬 드 코빈(Simon de Covin), 제프리 드 모(Geoffrey de Meaux) 등 역시 1348년 대재난의 원인을 행성의 운행과 연관 지어 언급하였다(Aberth, 2017: 52-53; Horrox, 1994: 163-172).

(2) 특수·직접 원인

역병을 발생시키는 보편 원인이 천체의 배열에 있다면 특수·직접 원인으로는 지역 단위에서 사악한 증기를 발생시켜 공기를 부패시키는 것들이다. 흑사병에 대해 기록한 당대 의사·저술가들에 따르면 적어도 23가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역병의 기운을 품고 있는 바람으로 특히 남풍이 그러하다. 또한 매장되지 않은 사체, 늪지대와 호수 그리고 하수구와 같이 고여 있는 물웅덩이, 섞어가는 동식물, 가축의 오물로 가득한 마구간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악한 증기를 발생시키며, 그 증기는 바람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함으로써(Aberth, 2013: 54) 역병을 전파한다. 이러한 의학 지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전통에 기원을 둔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430년 아테네 역병이 창궐할 당시, 매장되지 않은 많은 시체를 목격했으며 그것이 부패했다고 묘사하였다. 그가 표현한 ‘부패’는 “미생물의 활동으로 유기물이 악취를 내며 분해되는” 자연발생적 현상과 다른 의미이다. 보통 새나 짐승들이 시신을 훼손하는 것이 정상이나 아테네 역병의 경우 그것들이 시체에 접근하지 않았다고 투키디데스는 말한다. 짐승조차 멀리할 정도로 사체는 역병을 야기하는 상태, 즉 사악한 증기를 발생시키는 ‘부패’한 상황이었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투키디데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히포크라테스는 부패한 공기 등 환경적 요인이 인간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흘러 로마의 갈레노스는 늪이나 습지대 근처에 거주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부패한 공기가 건강을 해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전통과 궤를 같이한 로마의 저술가들은 대지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 나오는 증기, 병실 혹은 전장에 널브러진 시체, 고인 물 등에서 풍기는 악취를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Aberth, 2021: 69-70).

이와 같은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의 전통은 이븐 시나(Ibn Sina, 라틴어명: 아비세나(Avicenna), 1037년 몰), 이븐 주르(Ibn Zuhr, 라틴어명: 아벤조아르(Avenzoar), 1162년 몰), 이븐 루슈드(Ibn Rushd, 라틴어명: 아베로에스(Averroes), 1198년 몰) 등 무슬림 사상가들을 통해 전승되었고, 이후 서유럽에 전파되었다. 1348년 흑사병 창궐 당시 서유럽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전통에 근거하여 역병 발생의 특수·직접 원인으로 사악한 증기와 부패한 공기를 지목했다. 예컨대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 공기의 부패는 더 치명적이다. 부패한 공기는 심장과 폐로 빠르게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의 역병[흑사병]이 공기의 부패에서 왔다고 본다. … 공기는 본질적으로 맑고 깨끗한데 사악한 증기와 결합하면 부패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행성이 ‘합’할 때 사악한 많은 증기가 대지와 물에서 발생하고, 그 증기가 공기와 섞이고 남풍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한다. … 이 부패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공기는) 심장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기(氣, spirit)와 주변의 수분을 오염시킨다. 그 결과 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생명력을 파괴한다. 이것이 현재 창궐하는 역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다(Horrox, 1994: 160-161; Aberth, 2017: 43).

  • 이어서 그들은 사악한 증기는 “늪, 호수, 깊은 계곡, 매장되지 않거나 화장되지 않은 사체”에서 발생하며 그것이 공기와 섞이면 공기는 부패한다고 진술했다. 이것이 1348년 역병을 야기한 특수·직접 원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진은 지구 중심에 갇혀 있는 사악한 증기를 분출시키는데, 이것 역시 역병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보았다(Horrox, 1994: 161).4) 젠틸레 다 폴리뇨(Gentile da Foligno, 1348년 몰) 역시 유사한 이야기를 했다. 그에 따르면

  • (역병의) 직접 원인은 어떤 한 곳에서 발생했거나 바람, 특히 남풍을 타고 먼 곳에서 이동하여 온 부패이다. 그런 부패는 오랫동안 밀폐되어 있던 우물이나 동굴을 개방될 때 (밖으로) 분출된다. 또 공기가 순환하지 않는 벽이나 천장, 규모가 작은 호수나 웅덩이, 동물의 배설물, 시체, 악취가 나는 썩은 것 … 등에서 발생한다(Gentile da Foligno, 1479: 2-3).

한편 자크 다르라몽은 덥고 습한 바람이 불 때 역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바람은 “공기 중에 습기를 많이 품게 하는데, 습함은 부패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전장에 널브러져 있는 인간과 말의 시체가 역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과 가축의 사체가 썩으면서 공기를 부패시키고, 부패한 공기가 역병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Veny, 1971: 60). 이상에서 살펴본 경우를 비롯하여 당대의 의사들은 1348년 역병의 직접 원인으로, 사악한 증기와 부패한 공기를 발생시키는 여러 요인을 꼽았다.

그런데 사악한 증기를 발생시켜 공기를 부패하게 만드는 여러 요인 외에 1348년 역병을 발생시키는 특수·직접 원인으로 의사들이 가장 많이 거론한 개별 요인은 전염(contagion)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J. 아버스(Aberth)가 여러 편의 “ 흑사병 논고”를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흑사병 논고”들은 1347년∼1351년 사이에 발생했던 역병의 원인으로 여러 개별 요인을 총 73회 언급되었다. 그 중 전염은 9회 거론됨으로써 전체의 12.3%를 차지하여 가장 많이 제시된 개별 요인이었다(Aberth, 2021: 72-75). “흑사병 논고”들에서 언급했듯이, 전염이 역병 발생과 확산의 원인이라는 견해는 역병에 걸린 병자와 직접 접촉하거나 혹은 병자가 사용했던 물건을 만지게 되면 역병에 걸린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보카치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역병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역병에 걸린 자가 그렇지 않은 자와 접촉할 때면 언제든, 마치 불길이 기름기 있거나 건조한 물질을 통해 빠르게 번지는 것과 같이 급격하게 확산한다는 점이다. … (역병을 앓는) 병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병자를 보살피거나, 혹은 병자가 사용하던 물건이나 옷가지를 만진 자는 역병에 걸려 앓게 되고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다(Boccaio, 1995: 6).

보카치오 외에도 당대의 여러 의사가 역병의 전염성에 대해 언급했다. 예컨대 몽펠리에(Montpellier) 출신의 의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염이 된다고 주장했다. 자크 다르라몽은 역병에 걸린 자와 접촉하면 마치 들불이 번지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역병이 전염된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병자를 방문한 의사와 성직자는 모두 역병에 전염되어 사망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Horrox, 1994: 182; Jacme d’Agramont, 1949: 69, 71).5)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1348년 역병의 특수·직접 원인은 여러 가지 있으나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여러 요인을 통해 발생하는 사악한 증기 또는 부패한 공기, 즉 나쁜 공기가 역병을 일으킨다는 것과 이미 역병에 걸린 병자나 그가 사용한 물건을 접촉함으로써 전파된다는 것으로 말이다. 전자는 이른바 미아즈마(miasma) 이론에 근거한 해석이며 후자는 전염론이라고 칭할 수 있다.

(3) 미아즈마 이론과 전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1348년 역병의 특수·직접 원인은 미아즈마 이론 그리고 전염론에 근거를 둔다. 여기에 더해 보편 원인 역시 미아즈마 이론과 관련 있다. 보편 원인의 관점에 따르면 천체의 배열에 영향을 받아 사악한 증기, 즉 미아즈마가 생성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역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편 원인과 특수·직접 원인에 대한 논의 모두 미아즈마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따라서 1348년 역병 발생 원인에 대한 논의는 미아즈마 이론과 전염론으로 확장할 수 있다.

아래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미아즈마 이론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지적 전통으로, 의학 교육을 통해 계승되었다. 반면 전염론은 학문적 전통이라기보다는 의사·지식인이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Arrizabalaga, 1994: 259). 위에서 인용했듯이 당대의 의사 혹은 지식인들은 병자와 접촉하거나 병자가 사용한 물건을 만졌을 때 역병이 발병·확산하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경험에 따른 것으로, 지식 체계로서 전염론이 등장한 것은 16세기가 되어서였다. 이탈리아 사회에서 매독이 만연하던 1546년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의사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가 『전염과 전염병에 대하여(De Contagione et Contagiosis Morbis)』를 출간하면서 전염 개념이 이론화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기 코흐(Robert Koch)와 파스퇴르(Louis Pasteur)에 의해 세균학이 발전·확립되기 이전까지는 여전히 역병 확산과 관련해서 미아즈마 이론이 압도적이었다(Kinzeblach, 2006: 370; Morgan, 2021).6)

미아즈마 이론에 따르면 역병이 발생하고 확산하는 원인은 미아즈마이다. 이것은 나쁜 공기 혹은 사악한 증기를 뜻하며, 한자 문화권에서는 장기(瘴氣)로 이해된다. 미아즈마는 ‘오염’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μιαíνω(miaínō)에 어원을 둔다. 이 용어는 애초 민간 전통과 종교적 의미로 통용되었으나 히포크라테스 시대를 거치면서 호흡을 통해 확산하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규정되었다. 다시 말해 히포크라테스 이래로 미아즈마, 즉 나쁜 공기는 곧 역병을 의미했다. 이후 미아즈마 이론은 갈레노스를 통해 더 체계화되었다. 그는 미아즈마 이론과 체액론을 결합시켜, 나쁜 공기가 인체로 들어와 체액의 균형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Jouanna, 2012: 121-128; Byrne, 2004: 42, 44; 반덕진, 2013: 145-163; 이상덕, 2022: 179-208).

여기서 체액론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액론은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전통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4가지 원소 즉, 흙과 공기 그리고 불과 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각 원소는 뜨거움과 차가움, 습함과 건조함 등과 같이 한 쌍의 속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흙은 건조함과 차가움을, 공기는 따뜻함과 습함, 불은 따뜻함과 건조함, 물은 차가움과 습함을 속성으로 한다. 나아가 4가지 원소와 그에 대응하는 속성은 인체와 관련된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물질은 4가지 원소에 상응하는 4체액으로 구성된다. 황담즙, 혈액, 점액, 흑담즙이 그것이다(자크 르고프, 2000: 319-320; Lloyd, 1978: 237; Hays. 1998: 10; Conrad, et al., 1995: 25; 이상동, 2007: 331-332). 황담즙은

  • 열기와 건조함의 원천인 불에서 유래한다. … (혈액은) 열기와 습기가 합해져 생긴 공기에서 유래한다. … (점액은) 한기와 습기가 결합돼서 생겨난 물에서 유래한다. (흑담즙은) 한기와 건조함으로 이루어진 흙에서 유래한다. … 이 4체액은 인간 몸의 물질을 구성하고 있으며 건강을 재는 척도다. … 체질 구성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열이 지나치고 또 어떤 사람은 냉함이 지나치다. 어떤 사람은 습기가 지나치고 어떤 사람은 건조함이 지나치다. 이런 여러 가지 관계의 조합을 바탕으로 체질을 다섯 가지 … 즉 담즙성 체질, 다혈성 체질, 림프성 체질, 우울성 체질, 복합성 체질로 나눈다(자크 르 고프, 2000: 319).

이상에서 거론한 체액론을 바탕으로 다시 미아즈마와 체액론을 결합시킨 논의로 돌아오면, 미아즈마-체액론 관점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나쁜 공기에 함께 노출되어도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체액의 구성에 따라 개인의 체질이 형성되고, 체질에 따라 어떤 질병에는 저항력이 강한 반면 다른 질병에는 취약하게 된다.

이 논의는 1348년 역병의 경우를 설명하는 데도 적용되었다. 1348년 역병을 야기한 1345년 행성의 ‘합’은 따뜻하고 습한 속성을 갖는 물병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이 “안개가 자주 발생하고 습한 날이 빈번한 해에는 많은 질병이 발생(Horrox, 1994: 162-163; Aberth, 2017: 45)”한다고 말했듯이 공기를 부패하게 하는 증기는 습한 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 (1348년) 역병에 가장 잘 걸리는 사람은 따뜻하고 습한 체질의 사람이다. 따뜻하고 습함은 부패와 가장 잘 연결되기 때문이다. … 또한 몸이 사악한 체액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도 (이 역병에) 취약하다. 반드시 체외로 배출해야 하는 노폐물[사악한 체액]을 체내에 축적하기 때문이다. … 체질적으로 건조한 사람은 역병에 더 천천히 걸리게 되는데, 건조한 체질은 노폐물을 잘 배출·제거하기 때문이다(Horrox, 1994: 163; Aberth, 2017: 45).

이렇듯 역병의 발생과 확산은 미아즈마-체액론을 통해 설명하는 게 가능했으며 1348년 창궐한 흑사병에도 이 논리가 적용되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1348년의 역병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아즈마-체액론에 근거하면 미아즈마에 함께 노출되어도 개개인의 체질에 따라 역병에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빨리 걸리는 사람과 천천히 걸리는 사람 등 역병에 대한 반응 정도와 속도가 다양했다. 그런데 1348년의 역병은 그렇지 않았다. 남녀노소, 건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한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역병에 걸렸다. 체질에 따라 역병에 대한 반응이 다양해야 했는데 1348년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1348년 역병은 인구의 상당수를 죽음으로 몰아내는 것으로, 이전의 역병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미아즈마-체액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Gibbs, 2019: 117).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Ⅲ. 독(Poison) 이론: 인식론적 확장

1348년 역병이 창궐한 이래 당대 의사들은 미아즈마-체액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독 이론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였다. 1348년 역병의 발생 원인으로 독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의 의사 젠틸레 다 폴리뇨였다. 그는 1348년 이전에 이미 독을 역병의 원인으로 규정한 바 있으며 1348년 4월 페루자에서 역병이 창궐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글을 추가함으로써 독을 역병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를 확고히 하였다(French, 2001: 281-283; Gentile da Foligno, 1912: 83-87; 332-340). 그는 기존 의학 지식에 따라 역병의 원인으로 행성의 ‘합’, 일(월)식, 악취가 나는 부패물, 오랫동안 밀폐되어 있던 동굴, 물이 고여 있는 물웅덩이, 동물의 오물, 매장하지 않은 부패한 시체 등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역병의 궁극적인 원인이 해명되지 않는다면서 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논의하였다(Gentile da Foligno, 1479: 2-3). 그에 따르면

  • 심장과 폐 주변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은, 그 물질을 구성하는 주요 특성들이 과도해져서가 아니라 독성이라는 물질 자체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독성 있는 증기를 호흡으로 접하게 되면 전염의 방식을 통해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 사이에서도 이 역병이 활발하게 확산할 것이다(Gentile da Foligno, 1911: 83; Aberth, 2017: 49).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독과 역병과의 관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젠틸레가 1348년 이전에 이미 규정했고 또 1348년 역병을 경험하면서 확신하게 된 개념이다. 그의 독 개념을 통해 볼 때 그는 1348년 역병을 야기한 것은 독성 물질, 즉 독이라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독성 물질은 그것이 얼마나 많이 인체 내에 있느냐 혹은 그 물질을 구성하는 어떤 특성에 따라 작동하는 게 아니라고 보았다. 독성 물질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 물질로 심장과 폐의 기능에 적대적이며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이라고 여겼다. 이 개념은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전통의 체액-체질(기질)론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다시 말해 인체 내 4가지 체액이 불균형 상태가 됨으로써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전통적 개념과 다른 시각이었다. 또한 각각의 체액과 신체의 모든 기관은 뜨거움, 차가움, 습함, 건조함이라는 네 가지 속성이 있으며 그것의 구성 정도에 따라 개개인은 독특한 체질(기질)을 지닌다는 견해와도 상이했다(French, 2001: 283; Gibbs, 2009: 110-111; 2019: 118-119). 체액-체질(기질)론에 따르면 개인의 체질에 따라 특정 질병에 취약하거나 반대로 강한 경향성을 보였는데 반해 1348년의 역병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틸레는 1348년 역병은 개인적 차이에 따른 차별적 선택 없이 모든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데 주목하였다. 그가 보기에 이런 상황은 체액-체질(기질)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독 개념을 활용해 1348년 역병의 창궐을 이해하였다. 젠틸레는 독은 1348년의 경우와 같이 무차별적으로 희생자를 양산하는 역병이 어떤 메커니즘에서 발생하여 확산하는 지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Gibbs, 2009: 106-107; 111; 117; Gibbs, 2019: 122-123; Aberth, 2021: 25). 그렇지만 그는, 뒤에서 더 다루겠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체액-체질(기질)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위에서 논의했듯이 젠틸레는 1348년 역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독 이론을 정교화하였다. 그런데 독과 관련된 논의가 14세기 중반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관련 논의가 진행되었고 그것이 젠틸레를 통해 역병의 창궐과 확산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발전하였으며, 또 1348년 역병의 경우에 적용되었다. 젠틸레에 이르기까지 독 이론이 정교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4세기 중반 이래 서유럽 의학계에서 역병을 이해하는 이론으로 제기된 독 이론은 갈레노스 전통에 기원을 두는데, 그는 독과 관련하여 이전의 산발적인 내용을 의학 지식의 틀로 묶어 체계화하였다(Gibbs, 2019: 20). 독 개념에 대한 갈레노스의 언급 중 본 글의 논의와 관련해서 검토해보면, 그가 보기에 인체에 해로운 독과 이득이 되는 의약품은 명확히 구분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었다. 약물(drug)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인체에 이로울 수도 그래서 의약품이 될 수도, 역으로 몸에 해로운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 몸에 바르면 무해하나 마시면 크게 해로운 약물이 있다. … 복용하면 종종 해로울 수도 있고 이로울 수도 있는 약물이 있다. 복용했을 때와 몸에 발랐을 때 모두 해로운 약물이 있다. (환부에) 바르거나 복용할 때 모두 해로운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체 내외부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는 물질은 없다. … 특정 시간, 적합한 양 그리고 적절하게 혼합된 것을 복용하면 (몸에) 이로운 것이 있고 반면 잘못된 시간과 과도한 양 그리고 바르지 않게 혼합된 것을 복용하면 해로운 약물이 있다(Galen, 1904: 97-98; Singer, 1997: 274-275).

다시 말해 갈레노스는 약물이 인간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적정 시간에 적절한 양을 복용 또는 도포하느냐에 달려있으며, 또 여러 약물을 얼마나 조화롭게 혼합하느냐에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갈레노스의 견해는, 즉 같은 약물이라도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의약품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은 “동일한 물질이 음식이나 약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Grant, 2000: 7; King, 2018: 36). 이와 관련해서 갈레노스는 “독미나리는 어류에게는 영양물이지만 인간에게는 (해로운) 약물[독]이다. 박새에게 헬레보레[미나리아재비과 식물로 독초]가 음식인 것과 같이 말이다”라고(Galen, 1904: 109; Singer, 1997: 284) 예를 든 바 있다. 결국 갈레노스는 같은 물질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인체를 파괴하는 독이 될 수도 인간에게 유익한 의약품과 음식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갈레노스가 독 관련 정보를 의학 지식의 틀에 넣어 체계화했다면 독 개념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이븐 시나였다. 독 개념과 관련하여 이븐 시나는 『의학전범(Canon medicinae)』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 의학서적과 마찬가지로 독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하였다. 그는 독을 간략히 분류하고 독에 걸렸을 때의 증상과 그에 대한 치유법에 관해 설명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Gibbs, 2019: 26). 그가 새롭게 제기한 것은 작동 방식에 따라 독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는 데 있다. 하나는 물질의 특성 중 뜨겁고 차고 습하고 건조한 속성에 따라 독이 작동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물질 자체가 독성을 가진 형태이다. 다시 말해 전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여러 속성 중 어떤 것이 상황에 따라 독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후자는 ‘물질 자체’가 본래적으로 독성을 갖는 경우를 뜻한다. 전자의 경우와 비교하여 후자가 더 치명적이다. 그러나 후자는 소수만이 존재하는데 투구꽃속(napellus), 뿔 모양의 향신료(cornu spice), 군소(lepus marinus) 등이 이에 해당한다(Avicenna, 1564: IV. 6.1.2). 그는 또한 역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 부패한 공기가 심장에 도달하면 (체액을 통해 형성된) 심장의 기질(체질: complexion)을 부패하게 만들고 이어서 심장을 포위한 뒤 심장 역시 오염시킨다. 그런 후 부자연스러운 뜨거운 열기가 몸 전체로 퍼져 결국 역병에 걸리게 된다. (동일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역병이 확산할 수 있다(Avicenna, 1564: IV. 1.4.1).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븐 시나는 독과 역병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이전과 비교하여 독 개념을 더 체계화하였으나 뜨거운 열기와 같은 것이 체액의 불균형을 야기하고 그것이 역병을 발병케 한다고 말함으로써(Gibbs, 2019: 122; Aberth, 2021: 28) 역병의 발생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갈레노스의 이론적 틀에 머물러 있었다. 즉 이븐 시나는 물질은 뜨겁고 차고 습하고 건조한 4가지 속성을 통해 인체에 작동한다는 체액론에 기반을 두어 역병의 창궐과 확산을 이해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제기한 바대로 본래적으로 ‘물질 자체’가 독성을 갖는 경우가 더 치명적이라는 주장과 그리고 ‘물질 자체’가 독성을 갖는 것에 대한 강조는 독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Gibbs, 2019: 26). 다시 말해 이븐 시나가 제기한 독 개념은, 어떤 물질이 특정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의약품이나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갈레노스식의 기존 개념과 달리 상황적 조건과 무관하게 물질 자체가 독인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각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독에 대한 인식 변화는 어떤 물질이 인간에게 해로운 것인지, 즉 독성이 있는지 그리고 독성이 있는 물질과 그렇지 않은 물질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븐 시나가 제기한, 물질 자체가 독이라는 개념은 이후 젠틸레의 독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젠틸레가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은 파두아(Padua) 대학에서 그를 지도한 것으로 여겨지는 피에트로 다바노(Pietro d’Abano, 1316년 몰)였다. 피에트로는 독의 독특한 특성을 비롯하여 인체 내에서 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 독은 우리 몸을 위한 음식과는 반대로 작용한다. 음식이 우리 몸에 유용한 일부가 되고 우리 몸에 완벽히 흡수되어 영양분을 제공하고 분해되듯이, 독은 우리 몸에 섭취되면 몸 전체를 독성[물질](으)로 변화시킨다. 그런 후 독은 우리의 몸을 독에 동화시킨다. 우리가 동물 및 땅에서 자라는 것들을 (섭취하여) …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분과 살로 바꾸듯이 말이다. 그래서 어떤 물질이든 그것이 독에 닿게 되고 우리가 그것을 섭취하게 되면 몸은 독으로 변화한다. … 이는 마치 불이 볏짚을 상대로 완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볏짚은 불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고 결국 불로 변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의사들이 독이 인체의 기질(체질)을 파괴하고 생명의 지속성을 방해하는 물질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독이 야기하는 질병은(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일반적인 것이지 개별 기질(체질)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Pietro d’Abano, 1473: fol. 3r).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피에트로는 독은 인체에 해를 가하는 강력한 물질이며 개개인의 기질(체질)적 차이와 무관하게 질병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그는 갈레노스 이래로 신봉되어왔고, 이븐 시나 역시 추종했던 체액론을 부정하였다. 나아가 피에트로는 독이 인체 내 흡수되면 몸 전체를 독성 물질로 변화시킨다고 말함으로써 독의 ‘자기증식(self-multiplication)’성을 강조했다. 결국 그에게 독은 독성을 갖는 독자적이고 고유한 물질 자체이며 인체 내 체액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였다. 이런 점에서 피에트로의 독 개념은 이븐 시나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피에트로 역시 여전히 독과 역병을 연관 지어 사유하지는 않았다.

역병의 원인으로 독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젠틸레였다. 그는 독성이 있는 증기를 들이마시면 심장과 폐 주변에 독성 물질이 발생하게 되며, 이것이 역병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그는 역병과 독의 상관관계를 제시하였고, 그의 독 개념은 1348년 역병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이전의 의학지식을 기반으로 전개하였다. 우선 그는 독성 물질은 그것을 구성하는 특성들 때문이 아니라 독성 자체 때문에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진술하였다. 이는 이븐 시나가 제기했던, 독은 물질 자체가 독성을 지닌다는 독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젠틸레는 독성이 있는 증기가 인체 내로 들어와 심장에 도달하여 심장을 독으로 변화시키고 인간의 생명력을 파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논함으로써 피에트로와 마찬가지로 독을 체액론과의 관련성에서 보는 것을 거부하고, 동시에 독의 ‘자기증식성’을 통해 역병의 원인을 설명하였다(Avicenna, 1564: IV. 6.1.2; Gibbs, 2019: 123).

아울러 젠틸레의 주장은 미아즈마-체액론과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미아즈마-체액론에 따르면 미아즈마가 외부에서 인체로 들어오고, 개개인의 체액(체질)에 따라 미아즈마에 반응하는 방식과 정도가 다르다. 즉 사람의 체액(체질)에 따라 동일한 상황에서도 질병에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병세가 심각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데 젠틸레가 말하는 독 이론에서는 본래적으로 독성이 있는 물질이 체액(체질)의 특성과 무관하게 인체에 해를 끼친다고 본다. 개개인의 체액(체질)에 따라 외부에서 인체로 유입되는 물질이 유해한 것이 될 수도 무해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미아즈마-체액론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독 이론에서 말하는 이 논리가 기존의 미아즈마-체액론에 기반한 역병의 원인과 확산 메커니즘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본래적으로 독성을 품고 있는 물질이 존재하며 그것이 인간에게 해를 입힌다는 면에서, 이전의 역병과 다른 양상을 보였던 1347/8년 역병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젠틸레는 1348년의 경우를 비롯하여 역병을 발생시키고 확산케 하는 원인으로 독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전통적인 체액-체질(기질)론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체액-체질(기질)론에 따르면 체액의 불균형이 병을 초래하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체액을 다시 균형 상태로 회복해야 한다. 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체액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체액을 균형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음식을 비롯하여 수면, 운동 등 전반적인 생활 습관이 올발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액-체질(기질)론에 근거할 때 건강의 유지·회복은 섭생법과 관련 있었다(이상동, 2007: 332; Conrad, et al., 1995, 26). 젠틸레 역시 섭생법을 중요시하였다. 이는 갈레노스 전통에 근거한 ‘태생적이지 않은 6가지 요소들(six non-naturals)’에 대한 그의 강조를 통해 구체화하였다(Gentile da Foligno, 1479: 20). ‘태생적이지 않은 6가지 요소들’이란 인간 본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것으로 인체의 본래적 요소와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공기, 음식과 음료, 휴식과 운동, 수면과 깨어있음, 배설과 축적, 감정으로 구분된다(Jarcho, 1970: 372-377; Yaguchi, 2010: 53-66). 다시 말해 이 ‘요소들’은 인간 개개인이 태생적으로 갖는 신체적·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 스타일, 즉 섭생법과 관련 있다. 젠틸레는 역병과 섭생법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하면서, 역병에 대한 개인의 반응 정도는 주로 섭생법에 의존하기에 과도한 성생활, 잦은 목욕 등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Gentile da Foligno, 1479: 34-35; 38). 이런 면에서 젠틸레는 전통적인 체액-체질(기질)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였다. 젠틸레 본인의 의학 지식 전반에는 여전히 체액-체질(기질)론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French, 2001: 141; Aberth, 2021: 33-34).

또한 독 이론은 역병이 어떤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확산하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독 이론은 어떠한 메커니즘에서 개개인이 역병에 걸리는지에 관해서는 전통적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여 병리학적으로 설명하지만 개인 간 전파에 따른 역병의 확산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는 젠틸레가 제기한 독 이론은 미아즈마-체액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에 특히 주목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한계에도 젠틸레가 독 개념을 통해 역병을 해석했다는 점은 역병 창궐에 대한 인식론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가 제시한 역병과 독의 상관관계는 당대 의사들에게 영향을 주어 1347년과 1353년 사이에 작성된 27편의 “흑사병 논고” 중 21편에서 역병의 원인으로 독을 제시하였다(Aberth, 2021: 34-35). 당대 의학계는 전통적 인식론만으로는 역병의 창궐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여 독 이론을 적용한 것으로, 역병의 원인에 대한 인식론적 확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Ⅳ. 결론

1347년 시칠리아에서 역병이 창궐한 이래 1348년이 되면 역병은 알프스 이북에서 본격적으로 발생하였다. 역병 발생의 원인을 신의 분노로 돌렸던 대중 사회와 달리 의사 집단은 당대 의학·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1348년 역병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시대적 패러다임 하에서 역병을 야기하는 제1 원인으로서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2차 원인, 즉 자연법칙을 통해 역병의 원인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2차 원인은 다시 보편 원인과 특수·직접 원인으로 구분되었다.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을 비롯하여 의학계는 1348년 역병 창궐의 보편 원인으로 토성과 목성 그리고 화성이 ‘합’하는 천체의 배열을 꼽았다. 한편 특수·직접 원인으로는 지역 단위에서 사악한 증기를 발생시켜 공기를 부패시키는 것들이 제시되었다.

1348년 역병을 발생시키는 보편 원인의 관점에 따르면 천체의 배열에 영향을 받아 사악한 증기, 즉 미아즈마가 생성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또한 특수·직접 원인으로는 지역 단위에서 사악한 증기를 생성시켜 공기를 부패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결국 1348년 역병을 발생시키는 보편 원인과 특수·직접 원인 모두 이른바 미아즈마 이론에 근거했다. 미아즈마 이론은 체액론과 결합되어 역병의 발생과 확산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미아즈마-체액론 관점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나쁜 공기에 함께 노출되어도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체액의 구성에 따라 개인의 체질이 형성되고, 체질에 따라 어떤 질병에는 저항력이 강하고 또 다른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348년 역병은 미아즈마-체액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전과 달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건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한 구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희생자가 나왔다. 또한 이전의 역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강력한 것이었다. 이렇듯 미아즈마-체액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독 이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독 개념과 관련된 논의는 갈레노스 시대부터 진행되었으며 젠틸레에게 와서 역병의 원인으로 독을 제기하게 되었다. 젠틸레는 1348년 역병이 개인적 차이와는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데 주목하였다. 이런 상황은 전통적 체액-체질(기질)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지점이었다. 대신 그는 독 개념을 활용해 1348년 역병의 창궐을 이해하였다. 당대 의사들은 그의 독 개념을 수용하여 역병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정리하자면 당대 의학계는 1348년 역병의 원인을 전통적 인식론에 근거하여 천체의 배열 및 미아즈마 이론, 체액-체질(기질)론을 통해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 이론을 적용하였다.

1348년 역병 원인을 독 이론을 통해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인식론적으로 확장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역병의 원인과 관련하여 전통적 인식론이 폐기되고 독 이론으로 완전히 대체된 것이 아니다. 흑사병이 서유럽에서 창궐한 1347년부터 이후 1353년까지 작성된 27편의 “흑사병 논고” 중 23편에서 역병의 원인을 여전히 체액-체질(기질)만으로 설명했다. 반면 21편은 독 이론만을 6편에서는 체액-체질(기질)론과 독 이론을 함께 제시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354년부터 1400년 사이에 작성된 53편의 “흑사병 논고”와 1401년부터 1450여 년 사이에 제작된 100편의 논고에서도 확인된다(Aberth, 2021: 34-35). 독 이론이 역병의 발생과 확산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일지라도 당대 의학계에서는 전통적인 인식론, 즉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전통에 기반을 둔 체액-체질(기질)론이 여전히 권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1348년 역병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당대 의학계는 전통적인 인식론과 독 이론을 함께 활용하였으며, 그런 점에서 흑사병 창궐 원인에 대한 인식론적 확장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Notes

1)

사망률과 관련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예컨대 Ole J. 베네딕토우(Benedictow)와 J. 애버스(Aberth)는 사망률이 전체 유럽 인구의 50~60%는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Benedictow, 2004: 245-384; Aberth, 2010: 89-94; 2017: 2-3; 이상동, 2021a: 379쪽).

2)

예컨대 1315~1318년 사이 기후 이상이 초래한 이른바 대기근(Great Famine)으로 북유럽 인구의 10% 가량이 사망하였다(Campell, 2018: 21).

3)

황도십이궁도에서 운행하는 행성들은 다른 행성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해당 행성과의 상호적 의미를 갖게된다. 예컨대 두 행성의 위치가 황도십이궁도 상 180도나 90도에 있다면 두 행성은 서로 해로운 상태에 있는 것이다. 반면 120도나 60도에 위치한다면 서로 자애로운 상태이다(Horrox, 1994: 160). 남풍의 유해함은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거론되었는데 남풍이 지중해의 습한 공기를 동반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Byrne, 2004: 47). 천문학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47305&cid=62801&categoryId=62801, Accesed 5 April 2022.

4)

지진 관련해서는 호록스와 아버스를 참조하라(Horrox, 1994: 177-182; Aberth, 2017: 43-44).

5)

당대인들은 바실리스크라는 전설 속의 뱀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독성을 지녔다는 전설 속의 뱀이다(Aberth, 2017: 120-121; 이상동, 2021b: 156).

6)

19세기 세균학자들은 그가 제기한 “질병의 씨(seeds of disease) 이론”을 근대 세균론의 전신으로 평가한다(이상동, 2021c: 190).

References

1. Avicenna, Canon Medicinae, Joannes Costaeus and Joannes Paulus Mognisu eds. (Venetiis: apud Vincentium Valgrisium, 1564).
2. Boccaio, Giovanni, The Decameron, trans. G. H. McWilliam (Penguin Books, 1995).
3. Galen, De Temperamentis, G. Helmreich ed., Galeni temperamentis libri (Leipzig: Teubner, 1904).
4. Gentile da Foligno, Consilium contra pestilentiam (Colle di Valdelas, c. 1479).
5. Gentile da Foligno, Consilium contra Pestilentiam reprinted in Karl Sudhoff, “Pestschriften aus den ersten 150 Jahren nach der Epidemie des ‘schwarzen Todes’ 1348,” Archiv für Geschichte der Medizin, 5 (1911), pp. 36-87.
6. Gentile da Foligno, Consilium contra pestilentiam reprinted in Karl Sudhoff, “Pestschriften aus den ersten 150 Jahren nach der Epidemie des ‘schwarzen Todes’ 1348,” Archiv für Geschichte der Medizin, 5 (1912), pp. 36-87, 332-396.
7. Horrox, Rosemary, The Black Death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4).
8. Jacme d’Agramont, “Regiment de preservacio a epidimia o pestilencia e mortaldats,” M. L. Duran-Reynals and C.-E. A. Winslows trans., Bulletin of the History of Medicine 23(1949), pp. 58-89.
9. Kubel, W. ed. Alberti Magni Opera omnia (Münster, 1980), vol.v, pars II.
10. Lloyd, G.E.R. ed. Hippocratic Writings, trans. J. Chadwick and W. N. Mann (Londonn: Pennguin Books, 1978).
11. Pietro d’Abano, De venenis (Mantua: Johannes Vurster, 1473).
12. Singer, Peter N. trans., Galen: Selected Work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13. Veny, Joan ed. ‘Regiment de reservacio de pestilencia’ de Jacme d'Agramont (s. XIV). Introducció, transcripció i estudi lingüístic (Tarragonna: Publicaciones De La Excelentisima Diputación Próvincial, 1971).
14. 반덕진, 「그리스 고전에 나타난 전염병의 원인에 관한 인식」, 『의철학연구』 16 (2013), 145-163쪽.
15. 이상동, 「영혼의 질병, 나병: 11∼14세기 서유럽에서」, 『사림』 27 (2007), 325-348쪽.
16. 이상동, 「채찍질 고행: 1260년과 흑사병 창궐시기(1348-9년) 활동에 대한 비교사적 접근」, 『사림』 75 (2021a), 379-405쪽.
17. , 「흑사병 창궐과 유대인 학살(pogrom): 1348〜51년 유대인 음모론과 사회적 대응」, 『서양중세사연구』, 47(2021b), 153-186쬭.
18. , 「흑사병(Black Death) 병인(病因)론: 흑사병은 페스트인가」, 『서양사론』 149 (2021c), 188-221쪽.
19. 이상덕,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미아스마(μíασμα) 개념과 히포크라테스」, 『사총』 106 (2022), 179-208쪽.
20. 자크 르 고프, 장 샤를 수르니아 편, 장석훈 역, 『고통받는 몸의 역사』 (서울: 지호, 2000년).
21. Aberth, John, From the Brink of the Apocalypse: Confronting Famine, War, Plague, and Death in the Later Middle Ages, 2nd ed., (London: Routledge, 2010).
22. , An Environmental History of the Middle Ages: The Crucible of Nature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13).
23. , The Black Death: The Great Mortality of 1348-1350 (bedford/st.martin’s, 2017).
24. , Doctoring the Black Death: Medieval Europe’s Medical Response to Plague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2021).
25. Arrizabalaga, Jon, “Facing the Black Death: Perceptions and Reactions of University.
26. Medieval Practitioners,” Luis Garcia-Ballester et al. eds., Practical Medicine from Salerno to the Black Death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27. Benedictow, Ole J., The Black Death, 1346-1353: The Complete History (Suffolk: Boydell Press, 2004).
28. Byrne, Joseph P., The Black Death (London: Greenwood Press, 2004).
29. Campell, Bruce M. S., “The European Mortality Crises of 1346-52 and Advent of the Little Ice Age,” Dominik Collet and Maximilian Schuh eds., Famines During the ‘Little Ice Age’ (1300-1800) (New York: Springer, 2018).
30. Campion, Nicholas, A History of Western Astrology (London: Bloomsbury, 2009), vol. II.
31. Clark, Charles West, “The Zodiac Man in Medieval Medical Astrology,” PhD diss., University of Colorado, 1979.
32. Conrad, Lawerence I. and Neve, Michael, et al., The Western Medical Tradition: 800 BC to AD 180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33. French, Roger, Canonical Medicine: Gentile da Foligno and Scholasticism (Leiden: Brill, 2001).
34. Gibbs, Frederick W., “Medical Understanding of Poison circa 1250-1600,” PhD diss.,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2009.
35. , Poison, Medicine, and Disease in Late Medieval and Early Modern Europe (New York: Routledge, 2019).
36. Grant, Mark, Galen on Food and Diet (London: Routledge, 2000).
37. Hays, J. N., The Burdens of Disease (New Brunswick, New Jersey and London: Rutgers University Press, 1998).
38. Jarcho Saul. Galen's six non-naturals: a bibliographic note and translation. Bulletin of the History of Medicine, 44(4)1970;:372–377.
39. Jouanna, Jacques, “Air, Miasma and Contagion in the time of Hippocrates and the survival of Miasmas in post-Hippocratic medicine,” Greek Medicine from Hippocrates to Galen (Buckinghamshire: Brill, 2012).
40. King, Helen, ““First Behead Your Viper”: Acquiring knowledge in Galen’s poison stories,” Ole Peter Grell, Andrew Cunningham and Jon Arrizabalaga eds., “It All Dependes on the Dose”: Poisons and Medicines in European History (London: Routledge, 2018).
41. Kinzeblach Annemrie. Infection, Contagion, and Public Health in Late Medieval and Early Modern German Imperial Towns. Journal of the History of Medicine and Allied Sciennces, 61(3)2006;:369–389.
42. Morgan, Ewan, “The Physician Who Presaged the Germ Theory of Disease Nearly 500 Years Ago,” Scientific America (2021),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the-physician-who-presaged-the-germ-theory-of-disease-nearly-500-years-ago/, Accessed 15 April 2022.
43. Rudy, Kathryn, “Medieval medicine: astrological ‘bat books’ that told doctors when to treat patients,” The Conversation (2019), https://theconversation.com/medieval-medicine-astrological-bat-books-that-told-doctors-when-to-treat-patients-126737.
44. Thorndike, Lynn, A History of Magic and Experimental Science, Vols. III and IV: Fourteenth and Fifteenth Centuries (New York: Colombia University Press, 1934).
45. Wee John Z. Discovery of the Zodiac Man in Cuneiform. Journal of Cuneiform Studies 672015;:217–233.
46. Yaguchi Naohide. “Non naturals” in Islamic medicine. Journal of the Japanese Society for the History of Medicine, 56(1)2010;:53–66.

Article information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