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1940년대 말, 필자가 농촌지역에서 의원을 개설한 일이 있었는데, 위경련으로 배가 아파 찾아오는 환자가 꽤 많았다. 그 중 노년층일수록 의례 당부하는 말이 있었는데 “선생님! 횟배입니다. 원회(元蛔). 안회(安蛔), 가회(假蛔)만 떨어지는 약을 주시오!”
그럴 때면 나는 원회란 무엇이며 가회는 무엇인가고 되물었다. 하나같이 대답은 “원회는 몸 한가운데 있으면서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그 원회가 지금 노(怒)하였나 봅니다. 그러니 진정을 시켜야지 약을 먹어 떼어내 버리면 내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소진탁, 1992b: 45)
2. 한국전쟁 이전의 인식 : 회충 감염의 일상성
한국과 같이 농사를 지을 때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는 지방에서는 전국토가 우리 회충알로 덮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의 50%가 우리 회충을 가지고 있다 하면, 약 1,500만 명이 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배 속에 기르고 있는 우리 회충의 수는 평균 20마리라 하였으니 암컷의 수를 그 반으로 잡아 10마리라 할 때, 한국 내 여성회충의 총수는 1억 5,000만 마리가 될 것입니다. 암회충 한 마리의 산란수를 하루 10만개라 치더라도 하루에 한국에 뿌려지는 우리 회충알의 총수는 15조개나 됩니다. 이처럼 천문학적 숫자의 우리 회충알이 단 하루분만 한국에 뿌려진다 하여도 끔찍스러울 터인데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요일이나 국경일도 없이 뿌려지며, 이렇게 하기를 이미 단군 개국이래 수백, 수천 년을 계속해 왔으니 한국의 금수강산이야 말로 우리 회충들의 고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국 안에 우리 회충알이 없는 땅은 한 치도 없을 것입니다(이순형, 1974: 32-33).
3. 한국전쟁 이후 회충의 시각화 : 한 소녀의 신체에 천 마리의 회충이
환자가 장에 관통상을 입은 경우, 예외 없이 기생충이 있었다. 크기는 10센티미터에서 30센티미터까지 다양했고, “비 온 뒤 길 옆의 웅덩이에 보이는 지렁이처럼 천천히 꿈틀대고” 있었다. 8055 이동외과병원에서 근무했던 외과 간호사 제네비에브 코너스(Genevieve Connors)는 “수술 시작 후 10분 내에 7-8 마리 정도는 나왔다. 기생충들이 기어나올 때면, 그대로 집어 들어 양동이에 던져 넣고 수술을 계속했다”고 증언했다.
존 베스윅(John Beswick)은 이동외과병원 회의에 참여했던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 기생충에 대한 지식을 처음 습득하게 되었죠. 인구 중 90-100% 가량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거의 모든 사람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강인하고 튼튼해 보였어요. 그런데도 기생충이 있었던 거죠.”(Melady, 2011: 229) [32]
어안이 벙벙한 외국인 의사는 무게를 달아봤다. 5킬로그람.(정양의 체중이 20킬로그람) 이 회충의 연장 길이가 무려 1백 60미터. 정양은 회복을 못하고 장폐색증으로 끝내 죽고 말았다. 비단 정양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95%) 한국인, 그 중에서도 농민들은 전부가 이런 회충 등 기생충 보따리를 뱃속에 두고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있는 셈이다[43].
4. 1960년대 전반기의 인식 변화 : 파독광부와 회충 감염의 수치심
5. 1960년대 중반의 인식 변화 : 생의학적 개입의 확대와 수치심의 강화
에이 에이 챙피해. 네? 뭐가 창피하냐고요. 으유 전 국민의 80%가 회충이 있다니 에이 이거 정말 챙피한 노릇입니다. 에이 저리 들어가 들어가. 헤헤헤 하지만 여러분께서야 설마. 헤헤 있을 겁니다. 에 나요? 나 없습니다. 나 없어요 없어요. 잉. 난 한일약품의 유비론을 먹었단 말씀이야. 잉. 좌우간 회충 요충이 싸악 빠집니다. 온 가족이 잡숴보세요. 에이고 잡숴서 남 주나요. 에. 회충 요충엔 유비론. 한일 약품의 유비론. 물약 말고도 또 알약이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정말 싸악 빠져요. 에이 빠져서 남 주나요. 회충 요충엔 한일약품의 유비론[72].
6. 맺음말
“워매, 요것이 뭐시다냐!”
막내 옆으로 다가서던 월하댁은 질겁을 하며 물러섰다.
큰 감만한 것, 그것은 회충의 덩어리였다. 희읍스름한 회충들은 서로 뒤엉켜 느리게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어찐가? 비암보담 더 무섭제?”
어머니도 놀란 것에 만족한 선진이는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쌕 웃었다.
“워따, 시상에나 징허고 징해라. 저것이 다 니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여? 글 안 해도 잘 묵도 못하는 속에 저런 잡것들이 들앉어 진기럴 뽈아내니 항시 히놀놀해갖고 지대로 크기럴 허냐, 지대로 피기럴 허냐, 개잡녀러 것들!”
월하댁은 저주하듯 세차게 침을 내뱉고는 돌아섰다.
…(중략)…
“나넌 회가 시물네 마리나 나왔는디 누나는 멧 마리나 나왔냔 말여.”
“워메, 징상시럽고 드러라. 니 시방 고것 자랑허잔것이여? 빙신이 넘세시런지도 몰르고.”(조정래, 2003: 7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