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의관 허준의 임상 의학 사유 엿보기:* 『동의보감』에 수록된 임상 사례 및 의안 분석
Abstract
Heo Joon is one of the best-known physicians of the Chosun (朝鮮) Dynasty, the last imperial dynasty (1392~1910) of Korea. He had served King Seonjo (宣祖) during his practice, and has produced many publications on medicine. Then, how did he actually treat the patients? So far, other than the case when he treated Gwanghaegun (光海君)’s smallpox, it is not clearly known how and when he attended and treated the ill. In his most famous book, the Treasured Mirror of Eastern Medicine (東醫寶鑑, TMEM), he details the physiopathological mechanisms, diagnoses, treatments or prescriptions, and treatment cases, however, it is not clear if they’re from his own clinical experiences. Nevertheless, based on the written method, the original information is reconstituted according to its respective editors of the TMEM, a particular case being included may be considered as an agreement and acceptance of an actual treatment executed. This research analyzes what type of medicinal theory that the main writer Heo Joon employed in his real treatments, as well as how he diagnosed and treated diseases. After analyzing the complete series of the TMEM, we found a total of 301 clinical cases. Here, one may wonder, why does the Section of Inner and External Bodily Elements, that deal with diseases and the structure of the body, have far outnumber cases than the Section of Miscellaneous Disorders? Why does the TMEM introduce the various types of disease experiences and treatment cases, medical cases, simple treatments, nurturing life, materia medica, and also include supernatural phenomena? Why does the TMEM include the experiences and cases from the book published in the Song (宋), Jin (金), Yuan (元) dynasty of China, moreover in the Ming (明) Dynasty of its time. These questions can be answered to the extent that Heo Joon and the others who participated in completing the book sought to justify the new clinical medicine practices, and because it had to be acceptable to the Confucius beliefs which dominated the society, and also because the book came to light in a time when tensions between the pre-existing Chosun medicine and the newly introduced Chinese medicine were evident. Among the clinical cases in the TMEM, there are only 41 cases that can be considered as Medical Cases which include the pathology and treatment mechanism. After analyzing these mechanisms, we were able to discover that they cover not only the theories of the 4 great physicians of Jin-Yuan Dynasty (金元四大家), but also the theories of the Danxi’s Medical Current (丹溪學派), a big trend in the Early Ming Dynasty, and some of the most recent clinical cases that had been just reported at the time. However, Heo Joon did not lean towards a particular theory of medicine; rather, he insisted on establishing a classical medicine (經典醫學) based on the traditional medicinal scriptures such as the Yellow Emperor’s Inner Canon or Shennong’s Classic of Materia Medica, and had created his own Body-Viscera (身形藏府) medicine, as Shin Dongwon’s recent research. Moreover, he successfully secured his own right to be a clinical physician by customizing the amount of medication in prescriptions for the people of Chosun. Heo Joon was one of the chief physicians for the Royal Family of the Chosun Dynasty. Despite the tendency of traditional medicine to lean towards Taoism or Fangshu (方術), for him the most important thing was the actual treatment of diseases. As a result, Heo Joon successfully treated smallpox by utilizing traditional medicinal methods, by breaking the taboo of not using medication on such diseases, as well as he was able to treat an unknown disease, scarlet fever, by discovering the pathological mechanism of the illness. Also he made bold decisions on altering existing prescriptions to treat diseases more efficiently. The TMEM consists of not only justified methods that integrate the different and scattered medicinal and clinical practices, which many insisted their originality, but also was backed with Heo Joon’s such credible and endeavored clinical medicine.
Keywords: Heo Joon (許浚), Treasured Mirror of Eastern Medicine (東醫寶鑑), Synopsis of the Smallpox with Korean Explanations (諺解痘瘡集要), Medical Case (醫案)
1. 들어가는 글
한국 사람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최고의 의사는 누구일까? 체액설을 기반으로 합리적 의학을 추구하며 60여 편의 글을 남긴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Ιπποκράτης), 상한(傷寒)이라는 유행병에 의해 몰살된 가족의 아픔을 딛고 불후의 의서 『상한론(傷寒論)』을 집필한 중국의 장중경(張仲景), 그들과 필적할 만한 의사가 한반도에도 있었을까? 조선의 허준(許浚)이라면 어떨까? 서자라는 신분상의 제약을 극복하고 내의원에 들어가, 임진왜란 발발 이후 10년 이상 선조 곁을 떠나지 않으며 국난 극복의 최전선을 지켰지만, 선조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동의보감』 편찬을 마무리해낸 그의 인생 역정은 여러 차례 TV 드라마로 재가공 되며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렇다면, 허준은 어떻게 환자를 치료했을까? 세상을 떠난지 40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고, 8권에 달하는 의서를 편찬해냈음에도 그가 어떻게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드물다. 내의원 의관이었으니만큼 당대의 승정원일기나 약방일기 등에 치료 사례가 기재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쉽게도 관련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는 않다.
경인년(1590) 겨울에 왕자가 다시 두창에 전염되었습니다. 성상께서 지난 일을 기억하시고 신에게 특별히 명하시어 약을 써서 치료하게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추위의 위세가 대단했고 독열(毒熱)이 한쪽으로 몰리게 되어 험악한 증상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궁 안이나 바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약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가자 주변 모두 어수선했지만 성상의 결단은 더욱 확고하여 더욱 급하게 쓸 것을 재촉하셨습니다. 신은 성상의 뜻을 받들어 효험이 있는 영약을 찾아다녔으며 거의 돌아가실 뻔했지만 세 번 약을 투약해 세 번 일어나게 했습니다. 그 사이 험악한 증상은 사라지고 정신은 맑아졌으며 몇 일 지나지 않아 평소와 같이 회복했습니다(허준, 1988: 284)[1].
위 문장은 『언해두창집요』 발문에 실려 있는 허준의 실제 치험 사례이다. 환자는 훗날 광해군이 된 왕자였으며, 치료 대상 질병은 두창이었다. 발열이 심했고, 수반 증상이 험악했으며, 위태로운 상황이 세 차례 정도 반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과를 보였는지, 어떤 약을 복용했는지, 각각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누락되어 있다. 이어지는 문장이나 『언해두창집요』 중의 설명을 통해 허준이 파악하고 있는 두창의 병리기전또는 개별 증상에 따라 활용되었을 처방을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허준 의학의 전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의관 허준의 실제 임상 의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어떻게 환자 그리고 질병을 바라보았으며, 치료를 위해 어떤 것들을 동원했을까? 혹시 남아있는 다른 자료를 통해 그의 의학에 다가가볼 수는 없을까?
2. 『동의보감』 임상 사례에 주목하는 이유, 분석 방법 그리고 한계
동아시아 전통 의서 중에는 의사 뿐 아니라 환자가 겪은 질병 경험이 사례로써 기록되어 있다. 특정 질환에 대한 특정 약물의 치료 효과를 간단히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의사가 어떻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했는지, 치료 경과는 어떠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등의 내용이 특정 형식으로 기술되기도 한다. 이를 통상 의안(醫案)이라고 부른다. 16세기 무렵 중국 의가 한무(韓懋), 왕기(汪機) 등에 의해 일정한 형태를 지닌 채 편찬되기 시작한 의안 저작은 저자 자신의 평판을 고양시키거나 환자에게 자신의 의술을 설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Cullen, 2011: 310, 318), 증상과 약물 처방의 결합 그리고 처방에 대한 해석 등이 결합 되어 있어 의학 지식의 생산, 학습, 전파, 심지어 학술 유파 전승 등에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Furth, 2007: 14-5, 125-48).
『명의의안(名醫醫案)』 이래 수차례에 반복된 집대성 작업과 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전통 의학의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중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의안 저작에 대한 수집 또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남일이 조선 의서 중에 실린 의안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10년 이상 『민족의학신문』 지면에서 역대 명의 의안을 소개해왔고( 김남일, 2005: 189-95), 그 외 연구자들이 산발적으로 의서나 관련 자료 중에 실린 의안을 분석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었다 [2]. 얼마 전 이기복은 조선 시대 후기 의안 저작의 성과를 정리해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편리함을 제공해주었고( 이기복, 2012: 429-59), 신동원은 『묵재일기』를 미시사 연구 방법을 활용해 이문건이 유의(儒醫)로서 그의 가족, 이웃들의 질병을 치료한 사례를 분석하며 어떻게 의안을 다룰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신동원, 2014: 186-503). 하지만, 조선 시대 의안의 개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연구 대상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다행히 최근 조선 영조 년간에 활동한 의관 이수기(李壽祺)의 의안 저작 『역시만필(歷試漫筆)』이 공개되고 그 번역 및 해설서 역시 출간되어 현재까지 알려진 환자의 신분이 드러난 조선 시대의 처방전이자 살아있는 역사 자료로서의 의료 기록으로 학계에 소개되었다( 신동원 외, 2015: 6; 김성수, 2015: 5).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임상 기록, 의안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의 의학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허준이 임상 의학을 실천하는 모습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의 『미암일기(眉巖日記)』 등에 기록되어 있다 [3].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대개 다른 의관들과 함께 진맥을 하거나 처방을 하는 모습을 보여 그 만의 목소리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킨 뒤에야 통증이 감소된다’, ‘경맥을 끌어낸 뒤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는다’ [4]는 등의 언급을 통해 그 역시 진맥, 침구 등에 익숙했던 전형적인 전통 시대의 임상 의사이었음을 확인할 뿐이다. 이와 달리 『미암일기』에서는 1569년 6월 6일 나사선(羅士愃)의 중풍을 치료하기 위해 강활산(羌活散)을 권한 이래, 유희춘과 그의 부인 또는 지인들을 위해 지렁이즙, 오수유환, 위령탕, 강심탕, 이황원, 평위원, 청폐음, 건갈상지탕 등의 다양한 처방을 권하거나 제공하는 보다 생생한 기록을 제공해준다 [5]. 이 중 강활산, 지렁이즙, 건갈상지탕은 각각 기운이 허약해져 중풍에 걸린 나사선, 얼굴에 종기가 생긴 유희춘, 그리고 습갈증을 앓고 있는 윤관중의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 권고된 처방으로 대략의 정황이 어떠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두 자료 모두 어떻게 환자를 진단했는지, 왜 그 처방을 선택했는지, 환자가 실제 복용했는지, 치료 경과는 어떠했는지 등의 여부나 임상 의가 허준의 소견이 남겨져 있지 않다. ‘일기’였기에 조선 시대 의가 허준의 생생한 의료 활동을 남겨주었지만, 정식 ‘의안’은 아니었기에 임상 의학 전모를 드러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허준이 주도적으로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의서 『동의보감』은 어떨까? 『동의보감』에는 총 301개의 임상 사례가 실려 있다. 그 중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사례는 257개에 달하지만, 병리 기전이나 치료 기전을 기술하고 있어 ‘의안’이라 불려질만한 사례는 135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병리 기전과 치료 기전 모두를 갖추고 있는 것은 41개에 지나지 않다 [6]. 나머지 대부분은 별도 설명 없이 특정 약물 및 처방의 효능을 간단히 기술한 임상 사례이거나 양생 처치, 질병 현상, 약물 정보, 기이한 경험 등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허준을 비롯한 저자들이 ‘의안’이라는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음은 그 중에 「장옹치험(腸癰治驗)」, 「음탈치험(陰脫治驗)」 등 치료 경험 전달을 목적으로 기술된 임상 사례들이 실려 있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동의보감』 전편을 통틀어 ‘치험’이라고 표제된 사례는 5개에 지나지 않는다. ‘의안’ 만으로 『동의보감』의 임상 의학 성과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에 금번 연구에서는 『동의보감』에 수록된 의안 뿐 아니라 경험 사례 전체를 분석해냄으로써 그의 임상 의학이 기존 사례를 축적하고 전승하는 경험 의학의 전통과 내부 논리를 근거로 자신의 의학을 설명하고자 했던 합리적 의학의 전통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7]. 『동의보감』이 간행된 이래 수많은 저술들이 그것을 모본으로 삼아 자신의 임상 의학적 견지를 펼쳐왔고 또 그것을 매개로 조선 의학을 탐구해왔다. 진부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동의보감』을 선택한 이유는 그 중의 임상 사례나 의안을 고찰한 선행 연구가 희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허준의 생애 말년에 편찬된 『동의보감』이야말로 그의 실제 의학 그리고 임상 의학 사유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연구 대상이며, 간행 이래 수많은 조선 의가들이 이 책을 임상 의학 지식의 원천이자 및 실천의 토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동의보감』에 수록된 임상 의학 사례 중에 허준이 스스로 경험했음을 밝힌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동의보감』 중에 실린 임상 사례를 분석한 뒤 그 것을 곧장 허준 임상 의학의 특징이라 귀결시킬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이 책의 중심 편저자로서 적극적으로 인용 의서의 문장을 가다듬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처방의 분량 역시 과감히 변경하고 있는 만큼 해당 사례나 의안 중에 기재된 병증 인식, 치료 방법 등에 동의했으며 그의 임상 의학 역시 그에 의거해 실천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8]. 조선을 대표하는 의가 허준의 임상 사례를 직접 분석할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그가 선택하고 전재(轉載)한 임상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그가 지니고 있던 임상 의학 사유의 얼개에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9].
이를 위해 『동의보감』 중에 수록된 301개 임상 사례를 모두 추출했다. 이어 외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임상 사례의 배치, 사례의 구분 방식, 임상 지식의 출처 등을 살펴본 뒤, 내용상 의안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례를 추려 병리 및 처치 기전을 중심으로 임상 의학 사유를 분석했다. 개별 임상 사례는 내용에 따라 의안(醫案)), 단순 처치, 양생 처치, 질병 현상, 약물 정보, 기이한 경험, 오치, 미치료 사망 등으로 구분했으며, 출처는 사례 맨 끝에 명기되어 있는 도서명을 중심으로 파악했다 [10].
3. 『동의보감』 임상 사례의 배치, 분류, 그리고 출처
먼저 『동의보감』에 수록된 임상 사례의 개수는 「내경편(內景篇)」 81개, 「외형편(外形篇)」 67개, 「잡병편(雜病篇)」 131개, 「탕액편(湯液篇)」 19개, 「침구편(鍼灸篇)」 3개이다. 사례 개수 만으로 비교할 경우 「잡병편」이 가장 많아 보이지만, 각 편의 분량 대비 사례 수록 비율을 비교해보면 「내경편」 0.15, 「외형편」 0.13, 「잡병편」 0.10, 「침구편」 0.06, 「탕액편」 0.02로 「내경편」과 「외형편」의 비중이 높다( 부록 1). 질병 관련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잡병편」 천지운기(天地運氣), 심병(審病) 등의 내용을 제외하더라도 위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전문적으로 질병을 다루고 있는 「잡병편」 뿐 아니라 몸 안과 밖의 구조 그리고 관련 질병을 다루고 있는 「내경편」 및 「외형편」에 보다 많은 경험 사례가 산재되어 있는 점은 분명 저자의 의도가 담긴 편집이었다. 중국 의학사나 조선 의학사 전통에서 봤을 때 내경·외형·잡병·탕액, 침구 등 다섯 편의 구성은 매우 특이했다. 몸은 내경과 외형으로 나누고, 병은 잡병으로 파악한 뒤, 치료 방편인 탕액과 침구를 하나의 의서 중에 포괄 시킨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신동원, 2015: 247-8).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오장육부 등의 의학적 개념 이외에 정(精)·기(氣)·신(神) 등 도가적 신체 관념을 「내경편」 전반부에 배치한 점, 두 번째, 몽·성음·언어 등의 기능적 현상들에 대해서도 독립된 항목을 부여해준 점, 세 번째,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머리, 목, 팔, 다리, 허리, 피부, 근육 등의 신체 부분을 「외형편」으로 묶은 뒤 개별적인 독립 항목을 부여해준 점 등은 질병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던 『의학입문(醫學入門)』, 『의학강목(醫學綱目)』, 『의학정전(醫學正傳)』, 『만병회춘(萬病回春)』 등 당대 중국에서 편찬된 비슷한 규모의 종합 의서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혁신적이었다. 『동의보감』 「집례」에서 허준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환자의 병세가 가벼운지 무거운지 죽을 병인지 살 수 있는 병인지 등을 물거울 들여다보듯 분명히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11]. 따라서 실제적인 치료 효과를 언급하고 있는 임상 사례는 단순한 예시이기보다 새로운 의서 체제 구축의 당위성 그리고 새로운 체제가 임상 의학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설명 도구이기도 했다.
위의 인용 문장에서 허준은 오장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 중에 간직되어 있던 인격체로서의 ‘신(神))’이 몸 겉에 드러날 수 있음을 사례로 제시하며 도가적 존재로서의 ‘신’을 의학적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잡병편」 「괴질(怪疾)」 「눈에 보이는 다섯 가지 색깔의 물체(眼見五色物)」에서는 위의 사례와 거의 동일한 병증을 약물로써 치료해냈다고 기재하고도 있다 [13]. 주지하다시피 『동의보감』 「내경편」은 도가(道家)에서 몸의 생리를 설명하는 기본 단위인 정·기·신을 의학적인 입장에서 수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동의보감』의 독창적인 성과로 잘 알려져 있다( 김남일, 2010b: 42). 위의 임상 사례는 정·기·신의 개념이 어떻게 실제 임상 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예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4].
팔 다리의 힘줄과 살이 빠져가며 무력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위병(痿病)과 힘줄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고 감각이 없거나 저리고 아픈 증상을 보이는 비병(痺病)은 근육이나 힘줄에 발생하는 전신 질환의 일종이다 [15]. 그런데, 『동의보감』의 저자들은 비병을 질병 전반을 다루고 있는 「잡병편」 중에 배치한 것과 달리 위병은 「외형편」 「족(足)」에 분류시켜두고 있다 [16]. 위병이 어떤 이유로 「잡병편」이 아닌 「외형편」에 속하게 되었는지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열이 치솟으면 위병을 일으킨다(熱厥成痿)」는 항목 중에서 발에서 발생한 위병의 두 가지 치험 사례를 소개하며 자주 발생하는 부위인 발을 통해 위병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17]. 요컨대 허준 등은 자신들의 의학관 및 신체관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내경편」, 「외형편」에 임상 사례를 다수 그리고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자신들이 제기한 새로운 의서 편제가 의료 현장에서도 긴밀하게 또 편리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동의보감』 중에 수록된 임상 사례는 내용상 의안, 단순 처치, 양생 처치, 질병 현상, 약물 정보, 기이한 경험, 오치, 미치료 사망으로 나눠볼 수 있다 [18]. 부록 1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쪽수 대비 임상 사례 소개 비율이 가장 높은 항목은 「잡병편」 「괴질(1.63)」, 「탕액편」 「인부(人部, 0.83)」, 「내경편」 「언어(言語, 0.75)」, 「외형편」 「경항(頸項, 0.75)」, 그리고 「내경편」 「충(蟲, 0.64)」이다 [19]. 아울러 가장 많은 사례를 수록한 항목은 「내경편」 「충(16개)」, 「잡병편」 「한(寒, 14개)」, 「내경편」 「신(神)」과 「잡병편」 「괴질(13개)」이다. 이를 내용에 따라 의안, 단순처치, 양생처치 등으로 구분해보면 아래 표 1과 같다.
표 1. 『동의보감』에 다수의 임상 사례를 수록한 편명과 구분
Chapters including numerous disease experiences and treatment cases in the TMEM(Treasured Mirror of Eastern Medicine) and its classification
구분 |
의안 |
단순 처치 |
양생 처치 |
질병 현상 |
약물 |
기이한 경험 |
오치 |
미치료 사망 |
개수 |
비율(개수/쪽수) |
「雜病篇」 |
怪疾 |
7 |
5 |
0 |
1 |
0 |
0 |
0 |
0 |
13 |
1.63 |
|
「湯液篇」 |
人部 |
0 |
2 |
2 |
0 |
0 |
1 |
0 |
0 |
5 |
0.83 |
|
「內景篇」 |
言語 |
3 |
3 |
0 |
0 |
0 |
0 |
0 |
0 |
6 |
0.75 |
|
「外形篇」 |
頸項 |
3 |
0 |
0 |
0 |
0 |
0 |
0 |
0 |
3 |
0.75 |
|
「內景篇」 |
蟲 |
4 |
13 |
0 |
0 |
0 |
0 |
0 |
0 |
15 |
0.64 |
|
「雜病篇」 |
寒 |
8 |
4 |
0 |
1 |
0 |
0 |
0 |
1 |
14 |
0.12 |
|
「內景篇」 |
神 |
9 |
1 |
1 |
2 |
0 |
0 |
0 |
0 |
13 |
0.29 |
표 1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잡병편」 「한」, 「내경편」 「신」, 「외형편」 「경항」 중에는 병리 기전이나 치료 기전이 설명된 ‘의안’이 주로 수록되어 있는 반면, 「잡병편」 「괴질」, 「탕액편」 「인부」, 「내경편」 「언어」 그리고 「내경편」 「충」 중에는 ‘단순 처치’ 사례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한」, 「신」, 「경항」 등의 경우 기존 의학의 논리로 어느 정도 병리 및 치료 기전에 대한 설명이 가능했기에 ‘의안’형식의 사례를 싣는 것이 가능했지만, 나머지는 설명이 쉽지 않았기에 ‘단순 처치’ 사례를 싣는 것에 그쳤던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실제 「한」 중에는 장기의 『상한론』 이래 송대를 거쳐 오면서 축적되어 있던 상당량의 상한 의학 전통이 기입되어 있으며, 「신」 중에는 『황제내경(黃帝內經)』 이래 전광, 전간 등의 대표 질병에 대한 이해와 처치와 관련된 다양한 논리가 개발되어 있었다. 더불어 앞 목과 뒷 목(頸項)은 눈이나 손으로 직접 확인 가능한 몸의 부분이었기에 경맥, 오장 등의 논리로 병증 현상이나 치료 기전을 설명해내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20].
반면 ‘단순 처치’를 주된 임상 사례로 활용하고 있는 「괴질」이나 「충」, 「언어」, 「인부」는 이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괴질」은 ‘괴이한 질환’이라는 명칭 그대로 당대의 의학적 식견으로는 설명해낼 수 없는 병증들의 모음이었다. 예를 들어 헛것이 보이거나(眼見五色物) 대상이 뒤집혀 보이는(視物倒植) 등의 기이한 발병 양태를 보이는 증상 또는 뱀이나 벌레, 머리카락 같은 것을 토해내는(酒癥·髮瘕·蛇瘕) 증상들은 인과 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질환’들이 사례로 등장한다.
몸에 기생하는 벌레가 일으키는 병증과 치료 방법 등을 언급하고 있는 「충」의 경우 첫머리에서 도가 경전 『중황경(中黃經)』을 인용하며 사람의 생사윤회를 결정하는 삼시충(三尸蟲)이 뇌, 명당, 배와 위장에 살고 있다는 논설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지는 여러 가지 것들이 벌레로 변한다(諸物變蟲), 소리에 반응하는 벌레(應聲蟲) 등의 항목에서는 종교적, 특히 도교적 신체관에 따른 처치법을 소개한 뒤 민간에서 경험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부기한다. 하지만, 「괴질」과 달리 「충」에서는 해당 증상을 의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치료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는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의 소리를 따라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그 병증을 치료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주문을 외는 도가적 치료 방식으로 응성충을 치료하는 뇌환을 찾아냈고 치료해냈음을 소개한 뒤 [22], 이어 또 다른 치료 약물 판람즙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뇌환은 대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균주로 삼시충이나 촌백충, 고독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알려져 있었지만 [23], 뇌부(雷斧)·뇌설(雷楔) 등과 함께 번개가 사물을 때려 발생한 정기(精氣)가 변화된 것이다라고 설명될 만큼 일상과는 거리가 먼 약물이었다 [24]. 반면 판람(板藍)은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쪽풀(藍)의 일종으로 여러 종류의 독, 그 중에서도 벌레의 독을 해소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약물이었다 [25]. 이외에 「내경편」 「충」의 「아홉 가지 벌레(九蟲)」, 「오장에 기생하는 벌레(五臟蟲)」 등의 항목에서는 의서인 『외대비요』와 『천금방』을 인용하며 벌레의 종류, 증상, 치료법을 언급한 뒤, 「회궐토충(蛔厥吐蟲)」, 「노채충(勞瘵蟲)」, 「벌레를 죽이는 약(治諸蟲藥)」 등의 항목에서는 맥법, 오장, 상한 등의 의학 이론을 활용해 병증 진단, 증상 판별, 치료 대책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삼시충’을 전면에 내세워야 할 만큼 당시 의학 수준으로 ‘충’과 관련된 질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기에, 도교에 기반한 종교적 신체관 또는 치료법을 소개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에 대응하는 의학적 신체관 또는 치료법 역시 빠뜨리지 않고 병기하고 있는 것이다.
「탕액편」 「인부」에서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의안’이나 ‘단순 처치’와 달리 수명 연장 또는 건강 증진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양생 처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내경편」 「신형」 중에서는 ‘백이십살을 살았다(「반운복식)’, ‘삽백팔십살을 살았다(「반룡환」)’, ‘백살이 넘었는데도 살이 찌고 피부가 하얀 것이 표주박과 같았다(「인유즙」)’ 등에서는 도가의 신체관 그리고 그에 따른 본초 이론에 입각한 양생 처치법이 소개되고 있다. 비록 도가 서적인 『오진편((悟眞篇)』, 『운급칠첨(雲笈七籤)』 이외에 의학 서적인 『의학정전』, 『침구자생경(鍼灸資生經)』 등 역시 인용 서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의학적인 논리는 여전히 충분치 않다.
괴질 뿐 아니라 ‘삼시충’ 그리고 ‘몸을 가볍게 하고 수명을 연장한다’는 도교의 자연관이나 신체관에 기반을 둔 임상 사례가 유학 이외의 어떤 학문도 금기시하며 도교를 이단으로 배척하기까지 했던( 김성환, 2003: 51-5) 조선 정부의 관찬 의서 『동의보감』 중에 수록된 까닭은 무엇일까? 조남호는 『동의보감』에 대해 당대 조선의 지배 담론이자 편찬의 주체인 조선 정부가 유학, 성리학의 관점에서 도교와 한의학을 아우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것은 유가적 계몽주의의 소산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조남호, 2006: 41-56). 반면 정우진은 유학에는 자연관과 신체관이 빈약하며 신선술과 결합된 도가적 수양론이 다양한 양생술과 그런 양생술의 기반이 되는 독특한 신체관을 구성해냈고 『동의보감』은 기존 의론 중에서 도교 양생론과 관련 있는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인용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정우진, 2014: 215). 중국 서한 말기부터 남북조 시기까지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도서 분류의 지침이 되어왔던 『칠략(七略)』에 의하면, 의학은 방기략(方技略)에 해당한다. 그리고 방기략은 이치를 설명하는 경(經), 기술 운용법을 담고 있는 맥(脉), 효능을 달성하기 위한 방(方), 구성 요소를 분멸하기 위한 약(藥) 등의 의학적 내용 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도구(生生之具)라는 측면에서 방중(房中)과 신선(神仙) 등의 내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陳國慶, 1983: 225-35). 따라서, 동아시아의 전통 지식 체계 내에서 편찬된 의서 『동의보감』이 도교 의학과 관련된 사례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 그리 낯선 상황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의보감』의 임상 의학이 도가에서 제시했던 이상적인 신체를 구현할 것을 지향하고 있었다라고 볼 수는 없다. 동아시아 전통 의학의 이론적 특성상 도교적 신체관이나 자연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것 역시 당대 성리학자들이 용인하던 범주에 한정되어져 있었으며 [26], 「내경편」 「충」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마저도 의학적인 언어로 설명해내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었다.
세 번째,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사례 중에 출처로 명기되어 있는 의서는 『본초』가 38회로 가장 많고 이어 『강목』이 31회, 『단심』이 25회, 『본사』가 21회, 『입문』이 18회, 『단계』가 15회, 『자생』이 12회, 『자화』가 11회, 『의설』과 『회춘』이 10회 순이었다. 배치된 항목을 중심으로 개별 사례의 수록 목적을 살펴보면, 병증 소개 또는 발병 기전을 다룬 사례는 119개로 인용 의서는 『단심』(15개), 『입문』(13개), 『강목』(12개), 『자화』(12개)의 순이었으며, 복방이나 단방·침구 등 처방을 다룬 사례는 103개이었고 그 중 복합 처방을 설명하기 위해 활용된 의서는 『본사』(8개), 『강목』(7개), 『단계』(6개), 『단심』(5개), 단방을 설명하기 위해 활용된 의서는 『본초』(14개), 침구를 설명하기 위해 활용된 의서는 『동인』(3개), 『자생』(3개) 순이었다. 처치 방법을 다룬 사례는 51개로 주된 인용 의서는 『강목』(7개), 『자화』(7개)였으며, 약물을 다룬 사례는 23개로 주된 인용 의서는 『본초』(12개)였고, 처치 경험을 다룬 사례는 5개로 주된 인용 의서는 『본사』(2개)였다. 이처럼 다양한 의서들이 서로 다른 항목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은 『동의보감』이 종합 의서로서 여러 의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편찬되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주창한 의학 이론이나 치료법을 강조하기 위해 의안을 활용했던 금원사대의가들과 달리,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허준은 새롭게 정리된 병증의 발병 기전, 활용 처방 등에 대한 신뢰도를 진작시키긴 위해 임상 사례나 의안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의보감』이 편찬되기 직전, 『의림촬요(醫林撮要)』 그리고 『의림촬요속집(醫林撮要續集)』이 관찬 의서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단계심법부여』, 『의학입문』, 『고금의감』, 『만병회춘』 등 최신의 중국 의학 성과가 정리되고 있었다( 이경록, 2014: 24). 『의림촬요』의 저자 양예수(楊禮壽)가 태의(太醫)이자 공동 편찬자로서 『동의보감』 편찬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만큼 허준이 당시 유통되던 중국 의서들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알려진 명대 의가들의 임상 경험과 더불어 송대 의가 허숙미(許叔微), 금대 의가 장종정(張從政)의 처방이나 처치 경험, 치료법 등이 여전히 선택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27]? 과거의 의약 경험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거나 의학 지식의 수용은 신중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허숙미나 장종정의 의학은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온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다. 허숙미의 의서 『상한백증가(傷寒百證歌)』나 『상한발미론(傷寒發微論)』 등은 조선 전기 관찬 의서 『의방류취』 중에 이미 인용되어 있었으며, 더불어 인용된 송대 의서 『본초』, 『동인』, 『자생』 등 역시 고려 시대 또는 조선 초기부터 한반도에 전해지던 의서들이었다 [28]. 장종정의 의서는 1464년(세조 10년)에 의관 취재 과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정부로부터의 신망이 두터웠다 [29].
허준 보다 조금 앞서 활동한 유학자 이황(李滉, 1501-1570)은 당대 의료계에 과거의 처방, 고방(古方)이 아닌 새로운 처방, 신방(新方)이 유행하고는 있지만 대개가 의문스럽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최신 명대 의서를 선호하는 서울 의학과 여전히 예전 의서를 따르고 있는 지방 의학 사이의 갈등을 기록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고방과 신방의 절충 및 종합이라는 과제를 수행한 『동의보감』에 의해 해소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신동원, 2014: 524-30). 『동의보감』 중에 인용된 임상 사례에 대한 분석 결과는 이러한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준다. 송대 그리고 금대 의가들의 의학이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조금 앞서거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명대 의가들의 최신 임상 사례를 소개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고, 허준은 『동의보감』을 통해 처방이나 단순한 의학 지식을 넘어 임상 사례, 의약 경험 전반까지도 절충하고 종합해내는 과업을 수행해냈던 것이다.
4. 『동의보감』 의안(醫案) 중의 의학 이론 그리고 적용
이제 『동의보감』 중에 수록된 사례 기록 중 의안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을 추려 그 내용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의안은 임상 사례를 기술하는 하나의 글쓰기 장르로 대개 환자에 대한 일반 정보, 병증, 진단 결과, 치료, 경과, 예후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성별, 나이, 직업 등의 일반 정보나 망문문절(望聞問切) 등을 통한 진단 결과는 의사의 주관적 견해가 결부될 가능성이 비교적 적지만, 질병의 병리 기전에 대한 이해, 치료 기전 설명 방식, 처방 구성에 대한 풀이 등은 어떤 의학 이론을 견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근거로 어떻게 병증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하고자 했었는지 하는 등의 개별 의가가 지닌 임상 사유가 드러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병리 기전이나 치료 기전에 대한 의가의 직접적인 기술이 드러나 있다면 이를 ‘의안’으로 간주하고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동의보감』 「소아」 「만경풍(慢驚風)」의 경풍 치료 경험(驚風治驗)으로 소개되고 있는 위의 사례는 병리 기전과 치료 대책을 설명하는 의사 전을(錢乙)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병리 기전에 대해 전을은 첫 번째, 억지로 소변을 보게 하면 몸이 차가워진다. 두 번째, 억지로 대소변을 보게 하면 비장과 위장의 기운이 허약해져 몸이 차가워지고 죽을 수 있다. 세 번째, 서늘한 약을 사용하여 소변을 배출시키면 비장과 신장의 기운이 허약해진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어 잘못된 복약으로 허약해진 비장과 신장의 기운을 충실하게 채워주어야 한다는 치료책을 제시했다. ‘차갑다’, ‘기운이 없다’ 등은 음양표리한열허실陰陽表裏寒熱虛)의 8개 기준으로 증상을 분별하는 팔강 변증의 적용 사례이고, 비장과 신장의 기운 허약을 중심으로 만경풍을 파악하는 것은 전을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오장 변증 방법이다. 오장 변증의 기초 하에 그는 익황산과 사군자환, 그리고 육미지황환을 복용할 것을 권고했다. 익황산과 사군자환은 비장의 허약함을 치료하고 육미지황환은 신장의 허약함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동한 시대 의서 『황제내경』 이래 줄곧 활용되어 왔던 ‘허약하면 보충하고 채워져 있으면 덜어낸다(虛實補瀉)’는 원리가 구체화된 치료 처방이었다. 그런데, 위에 인용된 전을의 치료 사례는 그의 의서 『소아약증직결(小兒藥證直訣)』 또는 다수의 『동의보감』 인용문의 출처로 지목받고 있는 『의학강목』 원문과도 차이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동의보감』의 저자들은 기존 문장을 그대로 전재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사항은 생략하고 번잡한 내용은 압축 기재하는 글쓰기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31]. 이와 같은 글쓰기 방식은 단순히 전을의 치험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의 의학 성과를 완전히 이해했을 뿐 아니라 또 그의 질병 이해 또는 치료 방식에 동의하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임상 의학을 실천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41개 의안을 분석해보니, 병리 기전 설명을 위해 정기신, 진액, 담음, 오행, 육기, 오장육부, 경맥, 칠정, 육울(六鬱), 상화(相火), 오장 변증, 팔강변증, 그리고 외과적 인식 방법 등과 관련된 의학 이론이 활용되고 있었고, 치료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정기신, 기혈, 오행, 육기, 오장육부, 육경, 칠정, 독기(毒氣), 자연 법칙, 외과 처치, 한하토(汗下吐), 보사(補瀉), 본초 효능, 고욕보사(苦欲補瀉), 반치법 등의 이론이 활용되고 있었다( 부록 2). 이 중 병리 기전을 설명하는 상화·담음·육울, 본초의 효능을 설명하는 고욕보사, 구체적인 치료 방법인 한하토 등의 이론은 각각 이고(李杲), 주진형(朱震亨), 장원소(張元素), 장종정 등의 금원 시대 의가들이 제기했던 의학 이론이었다. 금원 시대에 등장했던 다양한 의학 이론이나 루영(樓英)의 『의학강목』, 이천(李梴)의 『의학입문』, 공정현(龔廷賢)의 『종행선방(種杏仙方)』 등 명대 초기 의가들의 다양한 임상 사례를 수용하며 당대의 중국 의학계와 함께 호흡하고는 있었지만, 왕기(汪機, 1463-1539)를 필두로 한 온보학파의 의학 이론이나 오유성(吳有性, 1582-1652)이 주창한 온역 이론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접하지 못했거나 또는 정리해내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동의보감』 의안을 통해 알 수 있는 허준의 임상 의학 특징 중 하나는 중국 의학의 어느 한 조류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의보감』 「집례」에서 그는 당대 중국 의학계가 ‘정기를 북돋아 사기를 몰아내는 치료 방식(扶正祛邪)’을 강조하는 북쪽 의사(北醫) 이고와 ‘음기를 보충하면서 화기를 내려주는 치료 방식(滋陰降火)’을 강조한 남쪽 의사(南醫) 주진형 [32] 의학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잡병편」 「근세의 의학에 대해 논함(近世論醫)」 중에서는 묵은 것을 몰아내 새 것이 생겨나도록 하는 유완소(劉完素)와 사시 음양의 변화에 따라 치료 방식에 변화를 주는 장원소의 의학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33].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의보감』 의안 중에서도 장원소, 장종정, 이고 뿐 아니라 주진형 등의 의학 이론은 모두 확인된다. 그렇다면 허준은 자신이 지적한 중국 의학 혼란상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그의 의학 내부에서 서로 다른 의학 간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혹자는 주진형 및 그의 문인들의 의서가 다수 인용되었음을 내세워 명대 초기 중국 의학의 주류였던 주진형의 의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거나( 李黎 외, 2008: 11, 严馀明 외, 2011: 171) 새롭게 들어온 명대 의서 그 중에서도 『의학입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三木榮, 1962: 195)고 주장한다. 41개 중 13개의 의안이 주진형의 의학을 정리하거나 그것을 계승한 『단심(丹心)』, 『단계(丹溪)』, 『의학입문』을 인용하고 있는 점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동의보감』 전편을 통틀어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는 『동의보감』이 조선 의서로서는 처음으로 의학 저술에 『소문(素問)』, 『영추(靈樞)』 등을 본격 활용했으며 그것을 활용해 후대 의학의 잘잘못을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동원, 2015: 290). 약물에 대한 설명 역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나 그것을 계승한 『증류본초(證類本草)』의 주된 논지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오재근, 2011: 117; 신동원, 2015: 292-4). 『동의보감』이 당대에 소개된 여러 가지 임상 의안을 수록하며 병리 기전 또는 치료 방법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지만, 그 근간에는 『황제내경』, 『신농본초경』 등의 의학 경전이 줄기차게 논의해오던 기일원론적인 신체관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 의학 이론의 골격인 음양오행, 오장육부, 경맥, 약리(藥理) 이론 등이 여전히 놓여 있었다. 송대 교정의서국에서 『황제내경』, 『증류본초』 등을 비롯한 기존의 의서들을 정리하며 구축해두었던 경전의학(經典醫學)의 성과 위에 금원 및 명대에 등장한 다양한 임상 의학 성과를 쌓아올려 이른 바 신형장부의학을 구축하고 동아시아 의학의 전범을 확립시켰던 것이다( 신동원, 2015: 221-72). 『동의보감』에는 누락되었지만, 「집례」에서 언급한 중국 의학 북의(北醫)·남의(南醫) 구분론의 원 출처인 왕륜(王綸)의 『명의잡저(明醫雜著)』에서는 해당 설명에 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덧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말 그대로라면 『본초』, 『내경』과 같은 신농, 황제, 기백의 말 역시 북쪽에서만 시행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인가 [34]?” 어쩌면 허준은 ‘동의(東醫)’를 내세운 의서 『동의보감』 중에서 복희, 신농, 황제의 정통 의학의 토대 위에 당대 뿐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임상 의학 성과, 임상 사례 및 의안를 함께 배치하며 중국 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의학이 전승되고 또 실시되고 있음을 적시함으로써 이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35].
의안을 통해 알 수 있는 허준 임상 의학의 또 다른 특징은 당시 사람들의 기품에 맞도록 처방의 변경을 꾀하고 있는 점이다. 허준은 처방 용량을 어떻게 변경할지를 두고 상당히 고심했다.
표 2에서는 『태평혜민화제국방』의 치험 사례와 『세의득효방』의 처방 설명이 더해진 『동의보감』의 향소산(香蘇散)에 대한 기술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태평혜민화제국방』과 『세의득효방』에 따르면 본래 향소산은 향부자, 자소엽, 진피, 감초 등의 약물을 대량 투입해 가루로 만든 뒤, 세 돈 또는 네 돈 정도의 가루를 물에 넣고 달여서 먹는 처방이었다. 그런데, 『동의보감』은 가루가 아닌 약물 자체를 물에 달이는 탕약(湯藥)의 형태로 제형을 변경하며 동시에 개별 약물 용량 전체를 조정하고 있다. 변경 기준은 “한 첩 분량을 일곱 돈에서 한 냥 정도”로 삼았던 명대 의서 『고금의감』, 『만병회춘』이었으며, 그 목표는 “약의 가짓수는 온전하게 보전하면서 양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요즈음 사람들의 기품에 들어맞게 하기 위함이었다 [37].” 예로부터 중의약계에는 “중의학이 전해지지 않는 비밀은 바로 용량에 있다(中医不传之秘在于量)”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38]. 허준 역시 「잡병편」 「의가는 책을 저술하지 않는다(醫不著書)」는 항목 중에서 손사막(孫思邈)의 입을 빌려 “의학은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때에 따라 더하거나 덜어주어야 하지 약물에 정해진 방문은 없다”고 했다 [39]. 어떤 이유로 향소산의 산제를 탕제로 변경했는지 또 무엇을 근거로 향소산 처방 중의 향부자, 자소엽 등의 개별 약물의 처방 용량을 확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처방을 ‘요즈음 조선 사람들의 기품에 들어맞도록’ 과감히 변경해내는 임상 의가로서의 자율성과 중국의 처방을 조선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하도록 변경시키고 있는 자신감 바로 그것이다.
표 2. 『동의보감』의 향소산(香蘇散) 처방 용량 변경
Table 2. Modifing the dose of prescription, Xiangsu-San, in the TMEM
처방명 |
수록 의서 |
본문 |
香蘇散 |
『태평혜민화 제국방』 |
治四時瘟疫, 傷寒. |
香附子 炒香 去毛 紫蘇葉 各四兩 甘草 炙 一兩 陳皮 二兩 不去白 |
上爲粗末, 每服三錢. 水一盞, 煎七分, 去滓, 熱服, 不拘時候, 日三服. 若作細 |
末, 只服二錢, 入鹽點服. |
嘗有白髮老人授此方與一富人家, 其家合施, 當大疫, 城中病者皆愈. 其後疫 |
鬼問富人, 富人以實告. 鬼曰, 此老教三人矣, 稽顙而退.” |
|
『세의득효방』 |
治四時傷寒傷風, 傷濕傷食, 大人小兒皆可服. |
香附子 五兩 炒去毛 紫蘇 去根 二兩半 陳皮 二兩 甘草 二兩 蒼朮 二兩 |
切上銼散, 每服四錢. 水盞半, 生姜三片, 蔥白二根煎, 不拘時候, 得汗為妙. |
|
『동의보감』 |
治四時瘟疫. |
香附子 三錢 紫蘇葉 二錢半 陳皮 一錢半 蒼朮 甘草 各一錢 |
右剉作一貼, 入薑三葱白二, 水煎服. 『得效』 |
昔有白髮老人授此方與一富人家, 令其合施城中大疫病者, 服此皆愈, 疫鬼問 |
富人, 富人以實告. 鬼曰, 此老敎三人矣. 稽顙而退. 『局方』 |
5. 조선 의관 허준은 어떻게 환자를 치료했을까
1588년 왕자 성(珹)이 두창으로 죽었다. 그리고 1590년, 훗날 광해군(光海君)이 될, 왕자 혼(琿)이 두창에 걸렸다. 손도 대지 못한 채 왕자 성을 잃었던 선조는 허준에게 치료를 명했지만 증세는 점차 악화되어 갔다. 주변에서 비난이 빗발쳤고 선조 역시 허준을 재촉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허준의 방책은 다름 아닌 기존 의서 중에서 효험 있는 처방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투약 과정 끝에 왕자 혼의 증상을 열흘 만에 해소시킬 수 있었고 모두가 탄복해 마지않았다. 이후 두창을 앓고 있는 집에서 앞 다투어 달려와 그 처방을 구해갔으며, 조금이라도 사용하기만 하면 곧장 아이들을 회생시킬 수 있었다. 선조는 두창 치료 방법을 정리해 『두창집요』를 편찬할 것을 명령했으며 허준은 발문 중에서 그 경위를 기술하고 있다 [40].
허준이 어떤 처방으로 왕자 혼을 구해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언해두창집요』에 담긴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저미고와 용뇌고자 등의 처방이 활용됐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신동원, 2015: 261-4). 그렇다면, 저미고와 용뇌고자는 어떤 약이었을까? 저미고와 용뇌고자는 위중한 두창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저미고는 두창이 안으로 함몰해 들어가며 밖으로 돋아나오지 않거나 독기가 몸 속으로 들어가 위태로워진 증상을 치료하고, 용뇌고자는 두창이 바깥으로 터져나오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고 발광하며 숨을 헐떡이고 헛소리를 하며 귀신을 보거나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증상을 치료한다 [42]. 두 처방 모두 강한 방향성으로 막힌 곳을 소통시키는 용뇌(龍腦)를 활용하고 있지만 [43], 저미고는 돼지 꼬리 끝에서 낸 피(猪尾尖血) 그리고 용뇌고자는 돼지 심장에 담겨있는 피(猪心血)로 약을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언해두창집요』 발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두 개 처방과 『언해두창집요』 본문 중에 실려 있는 처방의 출전 그리고 효능 설명을 통해 허준이 어떻게 처방을 선택하고 또 환자를 처치하려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허준은 독자적으로 처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 의서를 섭렵해가다가 가장 효과 있다고 판단되는 처방을 선택했다. 『언해두창집요』 「흑함」에서 소개하고 있는 저미고나 용뇌고자는 『의학입문』, 『단계부록』, 『활인서』 등에서 유래한 병증 설명과 함께 소개되고 있는데, 처방 구성, 용량, 복용 후 증상 그리고 효능에 대한 설명이 『동의보감』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동의보감』 해당 문장 끝에 표기된 『활인서(活人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44]. 『활인서』는 송대 의가 주굉(朱肱)의 저작으로, 주굉은 창진과 상한을 주의 깊게 감별할 것을 강조하며 소아 창진 처방의 대강을 제시한 대표적인 상한 의가였다( 田思胜, 2006: 130). 허준이 자랑한 백발백중의 치료약, 저미고와 용뇌고자는 모두 허준 스스로가 만들어낸 처방이 아니라 출처가 분명한 선택된 처방이었던 것이다. 단, 그의 의학 지식 범위는 명대 의서 뿐 아니라 송대 의서로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45]. 실제 허준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다름 아닌 제서(諸書)에 널리 통달하여 약을 쓰는 데에 노련하다는 것이었다 [46].
두 번째, 그의 임상 의학 처방은 의학적 합리성과 함께 방술(方術)로서의 성격 역시 띄고 있었다 [47]. 저미고 설명 중에서 허준은 돼지 꼬리에서 낸 피(猪尾尖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돼지 꼬리의 뜻을 빌어 두창의 독기를 떨쳐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활인서』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48]. 이것은 약물이 지닌 형태나 색깔 등을 통해 효능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본초 효능 설명 방식인 법상이론(法象理論)을 운용한 것으로 [49], 의식을 잃은 환자를 깨우는 효능을 지닌 용뇌에 독기를 떨쳐내는 움직임을 지닌 돼지 꼬리에서 낸 피를 버무려 만든 환약으로 두창의 독기를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용뇌고자는 의식을 일깨우는 효능의 용뇌에 정신을 담당하는 심장의 문제를 치료하는 돼지 심장의 피를 버무려 만든 환약으로 두창으로 인한 정신 이상 증세를 치료하고자 했던 처방이었다 [50]. 앞서 『동의보감』 「충」의 내용을 소개하며 도교의 종교적 신비성과 의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병증 설명 및 치료 방식이 병존하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허준이 신묘하다고 평가했던 처방, 저미고와 용뇌고자를 통해서도 방술에 기반한 설명 방식과 함께 의학적 효능에 기반한 나름의 합리적 설명 방식이 병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허준이 전통 시대의 패러다임이었던 천인합일론적인, 음양상관론적인, 기일원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의 임상 의학, 약물 활용 방법은 이와 같은 사유의 범주 안에서 배태되었던 것이다.
기존 의서 중에 기록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으면서도 의학적 효능 뿐 아니라 방술의 논리에 의존하고 있던 허준의 의학이 과연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실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허준은 생애 말년, 당독역(唐毒疫)이라는 미지의 유행병을 목도했다. 갑작스레 일어난 강력한 유행성 돌림병에 대해 그는 『벽역신방(辟疫神方)』이라는 얇은 저작 중에서 군화(君火)와 상화(相火)의 동시 작용이라는 운기학적인 논리로써 발병 원인을 설명하며, 병리 기전, 수반 증상, 그리고 나름의 치료 및 예방 방법을 제시했다 [51]. 흥미로운 것은 『벽역신방』에 실린 당독역 대처 처방 중에서 1610년에 편찬이 종료된 『동의보감』 또는 1612년에 편찬된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 중에 수록된 기존 처방과 완전히 다른 처방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의 경우 구성은 서로 다르지만 인용 서적을 다르게 하고 있을 뿐이며, 죽엽석고탕(竹葉石膏湯)의 경우 석고(石膏) 용량에 일부 변동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온병(溫病)이라는 새로운 병을 맞이한 뒤 의학 이론, 치료 방법, 처방 등의 방면에서 혁신을 이룩한 오유성을 필두로 한 명청대의 온병 의가들의 행로가 그에게서 찾아지지 않는다. 당독역이라는 미지의 병을 마주했지만, 허준은 새로운 의학 이론을 제기하지도, 새로운 진단 방법이나 치료 방법을 사용하지도, 새로운 처방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존의 정보 만으로 질병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치료 대책을 정리해내며 그에 대처할 만한 적절한 처방을 찾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뿐이었다. 제한된 담론의 틀 안에서 민활하게 움직이는 실천적인 의가의 모습, 허준이 보인 임상 의가로서의 위대함은 오히려 여기서 찾아져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대처법을 기존 의학에서 찾는 허준의 고답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후대의 정약용(丁若鏞)은 기존의 논의를 사용하는데 그쳤을 뿐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청대의 의학적 성취를 입수해 당대의 유행병인 마진에 대처한 의가 이몽수(李夢叟)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52]. 기존 의서에 기반을 둔 허준의 치료는 내의원 소속 의관이라는 신분적 한계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조선 시대 내의원 의관은 되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관직이 승급되기도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신동원, 2010: 93-5). 허준 역시 왕과 왕족의 질환을 다루며 끊임없이 주변 관료들에게 견제를 받았으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의학적 근거를 확보하면서도 효과적이면서도 안전한 치료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적어도 새로운 의학 성과를 재빨리 받아들인다거나 중국의 금원사대의가들과 같이 의학 이론을 창발해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허준과 마찬가지로 내의원 의관으로 활동하며 영조의 진료 과정에 의약동참으로 참여했던 이수기(李壽祺)는 자신 당대에 유행하던 홍진(紅疹)을 『벽역신방』 중에 기재된 운기학적 논리 그대로 설명하며 허준의 임상 의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신동원 외, 2015: 35-6) [53].
허준은 도교 또는 방술에 의존적인 그러면서도 임상 효과에 기반을 둔 의학을 실천하는 조선 시대의 임상 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창에는 약을 쓰지 않는다는 당대의 금기를 깨고 누구도 손대려 하지 않았던 왕자 혼의 두창을 기존 의서 중에서 찾아낸 유효한 처방으로 치료해냈다 [54]. 눈 앞에 닥친 미지의 질병 당독역의 병리 기전을 파악하고 기존 의학 정보를 총동원해 효과있는 처방을 탐색해갔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구성 약물의 종류 그리고 용량을 과감하게 변화시켜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의원 의관으로서 선조의 명령을 따라 당대의 분열된 의학을 정리하고 새로운 의학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시대적 과업, 『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6. 에필로그
선조는 생애 만년, 내의원 수의(首醫)였던 허준의 약을 1년 가량 복용했지만 평상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인 1607년 11월 대사간 유간(柳澗), 사간 송석경(宋錫慶) 등은 허준이 독한 약재를 쓴다며 그의 죄를 묻는 상소를 올렸다. 허준은 죄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56], 선조가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마자 사간원에서는 재차 허준의 죄를 묻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표현 그대로 허준이 차가운 성질의 약을 허투루 썼기에 선조의 질환을 치료하지 못했던 것일까? 의성(醫聖)으로 칭송받는 허준이지만 그의 의학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보여주는 자료는 여전히 부족하다. 본 연구에서는 『동의보감』에 실린 임상 사례 그리고 의안을 분석함으로써 허준의 실제 임상 의학에 다가가보고자 했다. 연구 대상으로 삼은 임상 사례나 의안 등이 허준의 치료 경험을 직접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한 약점이자 또 한계이다. 다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허준에 대한 실제적인 기록을 남긴 『미암일기』와 함께 그의 의서 『언해두창집요』와 발문에 실린 임상 사례 그리고 만년 저작인 『신찬벽온방』, 『벽역신방』 등까지도 함께 분석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허준이 단순히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눈앞의 환자를 두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한 명의 의사로 평가되기를, 향후 관련 자료가 추가 확보되어 허준의 임상 의학 실체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를, 그리고 『동의보감』 이후 펼쳐진 조선 후기 그리고 말기 전통 의학의 모습과 의가들의 임상 의학 사유가 조금 더 생동감 있게 이해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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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CES
부록 1.
『동의보감』에 수록된 처치 사례 개수 및 분량 대비 비율
Appendix 1. Number and rate of the disease experiences and treatment cases in the TMEM
편제 (개수) |
항목 |
개수 |
쪽수 |
비율 (개수/쪽수) |
편제 (개수) |
항목 |
개수 |
쪽수 |
비율 (개수/쪽수) |
內景篇一 (29) |
身形 |
9 |
37 |
0.24 |
雜病篇一 (3) |
天地運氣 |
0 |
31 |
0.00 |
|
|
精 |
6 |
20 |
0.30 |
審病 |
0 |
12 |
0.00 |
|
|
氣 |
1 |
32 |
0.03 |
辨證 |
1 |
18 |
0.06 |
|
|
神 |
13 |
45 |
0.29 |
診脈 |
0 |
13 |
0.00 |
|
|
內景篇二 (18) |
血 |
2 |
37 |
0.05 |
用藥 |
1 |
20 |
0.05 |
|
|
夢 |
4 |
13 |
0.31 |
吐 |
1 |
14 |
0.07 |
|
|
聲音 |
3 |
12 |
0.25 |
汗 |
0 |
5 |
0.00 |
|
|
言語 |
6 |
8 |
0.75 |
下 |
0 |
8 |
0.00 |
|
|
津液 |
3 |
20 |
0.15 |
雜病篇二 (14) |
風 |
8 |
78 |
0.10 |
|
|
痰飮 |
0 |
34 |
0.00 |
寒上 |
6 |
61 |
0.10 |
0.12 |
|
|
內景篇三 (18) |
五臟六腑 |
0 |
32 |
0.00 |
雜病篇三 (13) |
寒下 |
8 |
58 |
0.14 |
|
|
肝臟 |
0 |
8 |
0.00 |
暑 |
0 |
15 |
0.00 |
|
|
心臟 |
0 |
8 |
0.00 |
濕 |
3 |
16 |
0.19 |
|
|
脾臟 |
0 |
8 |
0.00 |
燥 |
0 |
3 |
0.00 |
|
|
肺臟 |
0 |
7 |
0.00 |
火 |
2 |
41 |
0.05 |
|
|
腎臟 |
0 |
9 |
0.00 |
雜病篇四 (7) |
內傷 |
6 |
63 |
0.10 |
|
|
膽腑 |
0 |
4 |
0.00 |
虛勞 |
1 |
53 |
0.02 |
|
|
胃腑 |
0 |
8 |
0.00 |
雜病篇五 (11) |
霍亂 |
0 |
13 |
0.00 |
|
|
小腸腑 |
0 |
3 |
0.00 |
嘔吐 |
2 |
29 |
0.07 |
|
|
大腸腑 |
0 |
4 |
0.00 |
咳嗽 |
9 |
74 |
0.12 |
|
|
膀胱腑 |
0 |
4 |
0.00 |
雜病篇六 (9) |
積聚 |
0 |
41 |
0.00 |
|
|
三焦腑 |
0 |
5 |
0.00 |
浮腫 |
3 |
22 |
0.14 |
|
|
胞 |
2 |
34 |
0.06 |
脹滿 |
2 |
20 |
0.10 |
|
|
蟲 |
16 |
25 |
0.64 |
消渴 |
1 |
24 |
0.04 |
|
|
內景篇四 (16) |
小便 |
12 |
46 |
0.26 |
黃疸 |
3 |
21 |
0.14 |
|
|
大便 |
4 |
78 |
0.05 |
雜病篇七 (10) |
痎瘧 |
1 |
33 |
0.03 |
|
|
外形篇一 (20) |
頭 |
2 |
33 |
0.06 |
瘟疫 |
4 |
23 |
0.17 |
|
|
面 |
6 |
17 |
0.35 |
邪祟 |
3 |
12 |
0.25 |
|
|
眼 |
12 |
78 |
0.15 |
癰疽上 |
2 |
49 |
0.04 |
0.08 |
|
|
外形篇二 (17) |
耳 |
1 |
21 |
0.05 |
雜病篇八 (10) |
癰疽下 |
5 |
40 |
0.13 |
|
|
鼻 |
2 |
13 |
0.15 |
諸瘡 |
5 |
76 |
0.07 |
|
|
口舌 |
4 |
24 |
0.17 |
雜病篇九 (33) |
諸傷 |
10 |
37 |
0.27 |
|
|
牙齒 |
3 |
23 |
0.13 |
解毒 |
4 |
21 |
0.19 |
|
|
咽喉 |
2 |
30 |
0.07 |
救急 |
1 |
14 |
0.07 |
|
|
頸項 |
3 |
4 |
0.75 |
怪疾 |
13 |
8 |
1.63 |
|
|
背 |
2 |
6 |
0.33 |
雜方 |
5 |
30 |
0.17 |
|
|
外形篇三 (11) |
胸 |
4 |
37 |
0.11 |
雜病篇十 (12) |
婦人 |
12 |
116 |
0.10 |
|
|
乳 |
3 |
14 |
0.21 |
雜病篇十一 (9) |
小兒 |
9 |
158 |
0.06 |
|
|
腹 |
1 |
13 |
0.08 |
湯液篇一 (10) |
湯液序例 |
0 |
27 |
0.00 |
|
|
臍 |
0 |
6 |
0.00 |
水部 |
4 |
10 |
0.40 |
|
|
腰 |
0 |
14 |
0.00 |
土部 |
0 |
4 |
0.00 |
|
|
脇 |
2 |
10 |
0.20 |
穀部 |
0 |
22 |
0.00 |
|
|
皮 |
0 |
21 |
0.00 |
人部 |
5 |
6 |
0.83 |
|
|
肉 |
0 |
7 |
0.00 |
禽部 |
0 |
16 |
0.00 |
|
|
脈 |
0 |
16 |
0.00 |
獸部 |
1 |
37 |
0.03 |
|
|
筋 |
1 |
9 |
0.11 |
湯液篇二 (2) |
魚部 |
0 |
9 |
0.00 |
|
|
骨 |
0 |
5 |
0.00 |
蟲部 |
0 |
24 |
0.00 |
|
|
外形篇四 (19) |
手 |
3 |
12 |
0.25 |
果部 |
1 |
19 |
0.05 |
|
|
足 |
8 |
27 |
0.30 |
菜部 |
0 |
23 |
0.00 |
|
|
毛髮 |
2 |
13 |
0.15 |
草部 上 |
1 |
25 |
0.04 |
0.05 |
|
|
前陰 |
4 |
41 |
0.10 |
湯液篇三 (7) |
草部 下 |
3 |
48 |
0.06 |
|
|
後陰 |
2 |
34 |
0.06 |
木部 |
3 |
39 |
0.08 |
|
|
총계 |
內景篇 |
81 |
541 |
0.15 |
玉部 |
0 |
2 |
0.00 |
|
|
外形篇 |
67 |
528 |
0.13 |
石部 |
1 |
16 |
0.06 |
|
|
|
金部 |
0 |
8 |
0.00 |
|
鍼灸篇 (3) |
鍼灸 |
3 |
124 |
0.02 |
|
총계 |
雜病篇 |
131 |
1370 |
0.10 |
|
湯液篇 |
19 |
335 |
0.06 |
|
鍼灸篇 |
3 |
124 |
0.02 |
부록 2.
『동의보감』에 수록된 의안 중에 담긴 의학 이론 분석
Appendix 2. Analysis of Medical theory on the Medical Cases in the TMEM
구분 |
병리기전 |
이론 |
치료기전 |
이론 |
인용서 |
精 |
夢泄亦屬鬱 |
鬱滯 |
육울 |
下之 |
한하토 |
『綱目』 |
|
神 |
驚悸 常法治驚 |
夫驚者 神上越也 |
칠정/정기신 |
從下擊几 使之下 |
한하토 |
『張子和』 |
|
五志相勝爲治 |
思想氣結 |
정기신/칠정 |
怒則木氣升發 而衝開脾氣矣 |
오행/오장 |
『丹溪』 |
|
神病用藥訣 十四友元 |
憂愁思慮耗心血 |
칠정/오장 |
滋養心血 心氣愈散 |
오장 |
『經驗方』 |
|
夢 |
虛煩不睡 思結不睡 |
此脾受邪也 脾主思故也 |
오장/오행귀류 |
膽虛 不能制脾之思慮而不寐 今激之以怒 膽復制脾 |
오장/오행귀류/오행 |
『子和』 |
|
津液 |
盜汗 童子盜汗 |
相火逼腎 腎水上行 乘心之虛而入手少陰 心火炎上而 |
오행/오행귀류 |
先以凉膈散瀉胸中相火 次以三黃丸瀉心火以助陰分 則 |
오행/오장 |
『海藏』 |
入肺 欺其不勝已也 |
腎水還本汗自止矣 |
|
胞 |
帶下治法 吐下療白帶 |
此帶濁水 本熱乘太陽經 其寒水不禁固 故如此也 |
육경/육기 |
夫水自高趍下 宜先絶其上源 乃以瓜蔕散涌痰二三升 次 |
육경/육기/자연법칙 |
『子和』 |
日服導水丸 下汚水十餘行 三遍汗出周身 至明朝 |
|
小便 |
小便不通 癃閉宜吐 |
積痰在肺 肺爲上焦 而膀胱爲下焦 上焦閉則下焦塞 |
오장/육부 |
比如滴水之器 必上竅通 而後下竅之水出焉 |
자연법칙 |
『丹溪』 |
|
轉脬證 參朮飮 |
胎壓膀胱下口 |
육부 |
令産婆以香油抹手 入産門托起其胎 |
외과처치 |
『丹溪』 |
|
小便不禁 猪脬湯 |
因收生者不謹 以致尿脬損破 得小便淋瀝病 |
외과처치 |
盖是血氣驟長 其脬自完 |
기혈 |
『丹溪』 |
|
膏淋 |
惑蠱之疾也 實由小腹熱非虛也 |
- |
瀉積穢數行 |
보사 |
『子和』 |
|
大便 |
老人秘結 蘇麻粥 |
藏府壅滯 氣聚胸中 則腹脹 惡心不欲 食上至於巓 則 |
장부/정기신 |
氣泄下結糞十餘枚 藏府流暢 |
한하토 |
『本事』 |
頭痛 神不淸 |
|
頭 |
風頭旋 |
肝血液盛 外有風熱乘之 肝屬木 木盛而脾土爲木所 |
오장/오행 |
但損肝祛風而益脾 |
오행/오장/보사 |
『綱目』 |
剋 脾與肺是子母 俱爲肝所勝 而血遂漬於大便 故 |
便血不止 |
|
面 |
面寒 |
陽明之氣不能上榮故也 |
육경 |
溫其中氣 |
- |
『入門』 |
|
面見五色 |
心肺之陽氣虛 不能行榮衛 而光澤於外 肝腎陰氣 上 |
오장/음양/오행 |
助陽明生發之氣 |
보사/육경 |
『寶鑑』 |
溢於陽中 故黑色顯於面 又脾之華在脣 今水來侮土 |
故黑色見於脣 |
|
面見五色 |
此爲臭氣所熏 穢氣畜於面部不散 |
- |
盖腎臭腐 脾臭香 脾能剋腎 |
오행/오행귀류 |
『孫兆』 |
|
眼 |
目不得開合 |
目系肝膽 恐則氣結 膽橫不下 |
오행귀류/칠정/육부 |
隨酒入膽 結去膽下 則目能瞑矣 |
육부/오행귀류 |
『入門』 |
|
視一物爲兩 |
邪中其精 精散則視岐 故見兩物 |
- |
驅風入腦藥 |
육기 |
『本事』 |
|
口舌 |
口臭 |
肺金本主腥 金爲火所乘 火主臭 應便如是也 久則成腐 |
오장/오행/오행귀류 |
病在上宜涌之 |
한하토 |
『子和』 |
腐者 腎也 此亢極 則反兼水化也 |
|
舌腫 |
血實者 |
팔강 |
宜決之 |
한하토 |
『子和』 |
|
頸項 |
頸項 項强 椒附散 |
腎氣自腰狹脊 上至曹溪穴 然後入泥丸宮 曹溪一穴 非精於搬運者 不能透 今逆行至此 不得通 |
오장/정기신 |
氣上逆 椒下達 |
정기신/한하토 |
『本事』 |
|
胸 |
七情心痛 |
憂則氣結 |
칠정 |
喜則氣散 喜勝悲 |
칠정/오행 |
『入門』 |
|
水結胸 |
頭有汗 心下滿 非濕病 乃水結胸脇也 |
육기 |
水旣去 其病當愈 |
육기 |
『綱目』 |
|
腹 |
積冷腹痛 |
風露之根入胃 |
육기/육부 |
良薑 菖蒲爲能散其邪 巴猫借氣爲能伐其根也 |
본초효능 |
『直指』 |
|
脇 |
腎邪上薄爲脇痛 |
腎上薄於脇 不能下 且腎惡燥 今服燥藥過多 非得 |
오장 |
向用神保元者 以腎邪透膜 非全蝎不能引導 然巴豆性熱 |
본초효능/인경/고욕보사 |
『入門』 |
利不愈 |
非得硝黃蕩滌 後遇熱必再作 乃大泄數次病遂愈 |
|
足 |
脚氣治法 當歸拈痛湯 |
飮發於中 諸痛爲實 |
담음/팔강 |
胕腫於下 血實宜決之 |
한하토 |
『寶鑑』 |
|
熱厥成痿 |
相火熾盛 以乘陰位 |
육기/상화 |
以瀉相火而復眞陰 陰旣復其位 |
육기/상화 |
『東垣』 |
|
寒 |
陽明形證用藥 |
肝有熱邪 淫于胃經 |
오장/육기/육경 |
則肝平而胃不受剋 |
오행/오장/육부 |
『本事』 |
陽明病惡候 |
|
陰盛隔陽 |
陰中伏陽也 |
음양 |
破散陰氣 導達眞火之藥 |
음양 |
『本事』 |
|
可汗不可汗證 |
榮血不足 不可以汗 |
혈 |
盖附子 白朮 和其腎氣 腎氣得行 故汗得來也 |
육경/본초 |
『孫兆』 |
腎氣不足難得汗 |
若但責太陽 惟能乾涸血液爾 |
|
可下不可下證 |
此陰盛膈陽於外 非熱也 |
팔강 |
吾以熱因寒用之法治之 |
팔강 |
『東垣』 |
脉不鼓擊不可下 |
|
內傷 |
內傷脾胃則不思食不嗜食 |
因事忤意 鬱結在脾 脾氣實 |
장부/팔강/육울 |
非枳實不能開 |
본초효능 |
『丹心』 |
脾結不食 |
|
呑酸吐酸 |
病因留飮 |
담음 |
以苦劑越之 |
한하토 |
『子和』 |
|
癰疽 |
囊癰 |
濕熱入肝經處治 |
육기/육경 |
補陰藥佐之 |
보사 |
『丹心』 |
|
疔疽 |
食自死牛馬禽獸之肉 |
- |
出毒氣 |
독/한하토 |
『種杏』 |
食疫死牛馬禽獸肉生疔 |
|
怪疾 |
怪疾異常 視物倒植 |
上焦反覆 致倒膽府 |
육부 |
法當復吐 以正其膽 |
오장/한하토 |
『入門』 |
|
婦人 |
産後陰脫 陰脫治驗 |
此非腸胃 乃糟粕也 |
육부 |
肌肉破 尙可補完 若氣血充盛 |
육부/보사 |
『丹心』 |
|
産後淋瀝遺尿 參朮膏 |
思肌肉在外而破 尙可補完 |
외과 |
峻補 |
보사 |
『丹心』 |
|
小兒 |
驚搐有聲無聲 |
二藏相戰 金木相擊 |
오장/오행 |
瀉强補弱 |
오행/보사 |
『錢乙』 |
|
慢驚風 驚風治驗 |
此因凉藥利小便致脾腎俱虛 |
오장/팔강 |
今脾已實 腎尙虛 |
오장 |
『錢乙』 |
|
諸瘡 紅絲瘤 |
汝腎中伏火 精中多有紅絲 以氣相傳生子 |
오장/오행 |
瀉腎中火邪 養其陰血 |
오장/보사 |
『東垣』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