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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Hist > Volume 31(3); 2022 > Article
미국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의 한국 도입과 그 비판

Abstract

Recently, Korean medical education circles have proposed a fullscale introduction of America’s health systems science to replace the existing medical humanities education in Korea. The so-called Flexner education system, formed in the early 20th century, was centered on basic and clinical sciences. America’s health systems science education was introduced to supplement the system. The full-scale introduction of health systems science has been promoted, mainly by the Korean Association of Medical Colleges. However, it does not fit into the current circumstance of Korean medical education circles. It is deemed that there are political reasons behind the push – the alignment of interests between the medical education circles and the government.
This study first examined the social and cultural circumstances behind the emergence of health systems science in America, focusing on pragmatism, a native American ideology, to critique the background of the introduction of the American system. It also discussed the negative aspects of pragmatism in American medical education in the cases of American educators Ralph Tyler and Abraham Flexner. Then, it specifically examined the background and reasons for introducing America’s health systems science to Korea and discussed the problems of directly introducing the health systems science to Korea without any adaptation process through a comparative analysis with existing medical humanities. Finally, it suggested a more desirable adaptation form of health systems science that can be considered for its implementation in Korea.

“하나의 유령이 한국의 의학교육계를 떠돌고 있다, 의료시스템과학이라는 유령이.”

1. 들어가는 말

의학은 과학이기에 앞서 인간학이다.1) 의(醫, medicine)의 중심에는 치유의 주체이자 치료의 객체인 환자, 곧 아픈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health systems science) 역시 표면적으로는 그 중심에 아픈 ‘사람’이 있음을 강조한다. 의료시스템과학 교육과정의 이른바 핵심 기능 영역(core functional domains)에 속한 7개 요소 가운데 단연 첫 번째로 꼽고 있는 요소가 다름 아닌 ‘환자, 가족, 지역사회’라는 사실이 바로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은 ‘시스템’을 부각시킨 조어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보다는 그를 둘러싼 의료적 구조를 더 강조한다. 나머지 6개의 요소가 전부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항목들로 채워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2)
1910년 이후 확립된 미국 의학교육의 핵심 모형은 시스템 중심 교육이 아닌 의사 중심 교육(physician-centric education) 모형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의료를 선배 의사(들)에게 배우고 터득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의학교육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의사이다. 즉, 의사가 의료의 주체이자 교육의 주체가 된다. 반면 근래 부상한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은 환자 중심의 시스템적 정체성(patient-centered systems identity)을 강조한다. 그에 따라 의사는 정중앙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의료시스템을 구성하는 일개 요소로서 탈중심화되고 탈주체화된다(Skochelak 외, 2021: 13-15).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이 의사 대신 시스템의 정중앙에 자리하게 된 환자라 해서 예외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록 의료시스템과학이 환자 중심을 천명하고 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료‘시스템’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요컨대 시스템/구조의 강조가 거꾸로 의료의 핵심인 환자/사람을 소외시키는 역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의료시스템과학은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환자의 의료 소외 현상을 오히려 가속화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른바 구조주의의 자장 안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은 인간 주체를 중심으로 한 근대주의를 지양하려는 소위 탈근대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3)
그럼에도 의(醫)에 관한 한, 여전히 사람은 구조에 선행할 수밖에 없다. 탈근대적인 시스템적 정체성을 수용하는 것도 결국은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4) 따라서 의학교육의 근본 목표 또한 결국은 환자/사람을 잘 치료하는 좋은 의사/사람의 양성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의사의 가장 핵심적인 자질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왜냐하면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환자를 염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토버, 2003: 56에서 재인용). 의학이 근본적으로 시스템과학이 아닌 인간학인 이유다.
구조를 강조하면서 구조로써 사람을 대치하려는 의료시스템과학에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 지식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은 인간을 진열대의 장식품으로만 활용할 뿐,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내 과학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구조만 노출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의사에게 의료시스템과의 적극적이고 공생적인 관계성을 촉진시키면 시킬수록 반대로 그 시스템에 매몰되어 의사도 실종되고 환자도 실종되어 버리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식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을 단기간에 직수입하려는 공학적 시도는 많은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의 도입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통속적 맥락의 러다이트가 되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한국의 의학교육은 많은 부분 미국 의학교육에 빚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식 역량바탕교육(competency based education)의 경우 본격적으로 도입된지 10여 년 만에 의학교육 평가인증 제도의 강제력에 힘입어 국내 의과대학 교육체계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5) 이런 점만 보더라도 미국 의학교육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미국식 교육방식이 과연 면밀한 검토를 거쳐 도입되었는가를 질문해 본다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실정에 맞는 착종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회적 합의 없이 성급하게 도입된 미국식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결국 완전한 실패로 끝난 것이 이를 방증한다.6) 이렇듯 착종의 진지한 고민이 없는 미국식 관점의 일방적 이식은 안착이 아니라 거부반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는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의 도입 과정에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미국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이 출현한 사회적, 사상적 배경을 살펴본 뒤 한국에 도입된 배경과 그 이유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의료시스템 과학이 착종 과정 없이 직수입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기존 인문사회의학(의료인 문학)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논한 다음, 바람직한 착종의 형태를 제시해 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 미국의 의학교육, 그리고 의료시스템과학의 출현

1) 프래그머티즘과 미국

미국의 의학교육은 필자가 보기에 현재 한 가지 거시 원리에 의거하여 작동하고 있다. 그 거시 원리란 다름 아닌 미국 유일의 고유 철학인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으로서 그 가운데 특히 효용성을 중시하는 공학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발현된 사상 체계인 프래그머티즘은 여러 이질적인 경로의 조합과 파생 과정을 거쳐 오늘날 미국 의학교육의 실천적, 실험적 특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비록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철학 사조가 영미권 교육철학의 방법과 관점에 변화를 가져왔으나(한기철, 곽덕주, 김상섭, 2010: 183-184), 의학교육 분야는 20세기 전반에 확립된 프래그머티즘 및 그 영향력으로 형성된 진보주의 교육철학의 자장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근거는 1999년 미국의과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AAMC)가 역량바탕교육을 옹호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이래 10년도 지나지 않아 역량바탕교육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채택되어 널리 이용되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Morcke, Dornan, Eika, 2013: 852-853). 이 역량바탕교육의 사상적 뿌리는 가위 미국식 프래그머티즘이라 할 만하다. 그것은 프래그머티즘이 의료 현장 등 실세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지식이나 비판적 태도 및 능력 함양의 이론적 근거가 되며, 프래그머티즘의 영향력으로 형성된 진보주의 교육철학이 교수자 중심의 학습목표가 아닌 학습자 중심의 학습성과를 더 중시하는 역량바탕교육의 이론적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7)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발전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사상 체계이며, 원래 남북전쟁 후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갖가지 사회적 갈등을 점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온건한 대응책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또한 신생 합중국 미국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통의 이주민들이 기존의 원칙들에 구애받지 않아야 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프래그머티즘이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문제해결, 곧 행동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프래그머티즘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프라그마( )가 행동, 행위, 실천, 실험 등을 의미한다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결국 프래그머티즘이란 미국인들의 행동 지향적이고 결과를 중시하는 생활관이 반영된 미국적 정서에 기반한 사상 체계인 것이다(신일철, 1987: 160-165; 엄정식, 1996: 77-82).8)
신생 합중국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는 인내와 근면을 기반으로 한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었으며, 그 가시적이고도 구체적인 성과는 측정 가능한 업적으로 치환되어 개인의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이러한 태도는 프래그머티즘의 경험론9), 실증주의, 과학주의 전통 속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의거하여 프래그머티즘을 종합 정리하면 “이론보다는 실험을 강조하고 추상적 진리보다는 실천적 지혜를 선호하며 이것을 체계적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증적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고 문제의 상황에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엄정식, 1996: 82). 이러한 까닭에 프래그머티즘을 가리켜 “모든 기존 사유 습관을 철폐하려는 행동주의”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듀이, 2020b: 6).
그러나 신생 합중국 미국의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으로서 제시된 프래그머티즘은 경험과 행동과 그에 따른 가시적 결과를 중시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하여 가치론적 차원에서는 절대성을 부정하고 실제 문제해결에 유용한 상황적 효용성을 강조하게 되며, 따라서 이는 언제든 기계적인 공학적 효용성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미국인들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 관심은 경험 개념을 공학화하고 통계적 수량화의 경향을 강화시킨다.” 요컨대 프래그머티즘에 의해 표현된 실제적 결과란 실증주의적으로 통제된 경험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의 도구화’라 할 만한 것으로서 그 이면의 보다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통찰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신일철, 1987: 182-183).

2) 프래그머티즘과 미국의 의학교육: 타일러와 플렉스너

프래그머티즘의 집대성자이자 이를 교육학과 교육철학으로 확대 발전시킨 듀이(John Dewey, 1859-1952)에 따르면 교육이란 “환경에 대한 개인의 적응을 가능하게 하는 습관(habit)을 획득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듀이, 2007: 100). 이는 역으로 말하면 교육을 통해 개인의 습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고, 습관이 바뀌면 그 개인의 본성(nature)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듀이는 습관이 자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인간은 이성도 본능도 아닌 습관의 동물이며, 습관이 실제 욕구를 형성하고 활동 능력을 부여한다고 보았다. 이는 곧 인간의 자아가 행동(행위)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으로 행동에 앞서 미리 정해진 자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듀이, 2020a; 김동식, 2002: 169-170). 이러한 점에서 프래그머티즘은 이미 데카르트적인 불변의 이성 주체를 거부하는 탈근대성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행동을 강조하는 프래그머티즘의 이러한 반(反)사변적 성격은 현대 의학교육의 주류가 된 역량바탕교육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교육학자 타일러(Ralph W. Tyler, 1902-1994)에게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주저에서 타일러는 “교육은 인간의 행동 패턴(behavior patterns)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Tyler, 1949: 5-6)이며, “학습은 학생의 능동적인 행동을 통해 발생하는 것, 즉 그가 행한 행동에 의한 것이지 교사의 교수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다”(Tyler, 1949: 63)라고 말함으로써 듀이의 철학적 자장 안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실제로 타일러는 듀이의 영향력 아래 형성된 미국 진보주의 교육 운동을 이끌었던 교육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들과 깊이 교류하였다(김은정, 2018: 15-18).
타일러가 의학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이유는 국내 교육학계의 반복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과정 모형이 의학교육계에서는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전면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10) 이는 타일러 모형이 교육과정학 분야에서 바이블로 통할 만큼 지금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의학교육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되면 누구나 타일러가 처음 공식화한 교육과정에 대한 주장, 즉 ‘교육목표의 설정 → 학습경험의 선정 → 학습경험의 조직 → 평가 → 평가 결과를 반영한 교육목표 재설정 및 학습경험 재선정’이라는 순환 구조 모형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당연시하게 된다.11) 그러나 교육목표를 절대시하고 학습자의 학습경험을 신성시하는 이러한 타일러 모형의 기본 입장은 그간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무엇보다도 타일러 모형은 교육을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도식화하였다는 문제가 있다. 즉, 교육이 사전 결정된 교육목표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면 수업은 그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현재 주류를 점한 역량바탕교육 역시 수업이 사전 결정된 역량(competency)이라는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타일러나 그의 후계자들이 수업 무용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나,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효율성의 측면에서 수업보다 우위의 다른 수단이 등장할 경우 수업은 그 대안적인 다른 수단으로 대치될 수밖에 없다(박채형, 2008: 38). 교육목표란 수업의 결과로 달성되는 최종 결과일 뿐인데, 사전 결정된 교육목표가 수업 자체를 압도하고 도구화하는 주객전도의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학습자의 학습경험을 신성시하는 입장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업이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한, 수업에서 다루어지는 수업내용 역시 수단으로 전락하여 학문적 교과 또는 지식에 내포된 아름다움이 묵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박채형, 2008: 44). 현재의 의학 지식이 한시적이라는 지식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교육 내용의 무게 중심을 쉽사리 교수의 지식/학문적 교과에서 학습자의 경험/학습자의 특성으로 이동시킨다. 사실 의과대학에서 어렵게 배운 지식이 졸업 후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거나 나아가 쓸모없게 된다는 관점이 의학교육계에 과도하리만큼 팽배해 있다. 이는 자연스레 교수자의 전문성과 중요성을 훼손시키고, 교육목표의 재설정도 교수자가 아닌 외부 전문가에게 넘기는 이른바 ‘교사배제 교육과정(teacher-proof curriculum)’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사배제 교육과정’이란 타일러 모형에 입각한 것으로 “교사라는 변수―교사 개개인의 역량이나 자질, 신념 같은 것―들이 작용할 만한 여지를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계획, 기술되어 있어서 신참이든 경력자든 그 것을 적용하기만 하면 애초 의도했던 대로 동일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교육과정”을 의미한다(김학준, 2013: 2). 이는 실제 수업뿐 아니라 교육과정 개발 차원에서도 이루어지는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인간적 상호작용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도외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교수자와 수업 및 그 내용이 아닌 교육목표에 입각한 전체 교육과정의 설계라는 행동 절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타일러 모형은 학계에서도 ‘통제이론’이라 하여 “실제(practice)에 초점을 두며 교육의 과정(process)에서 효율성을 강조하고 기술공학적인 합리성에 기초하는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은정, 2018: 26).
이는 결과적으로 앞서 말한 미국 프래그머티즘의 부정적 유산, 곧 문제해결을 위한 상황적 효용성이 기계적인 공학적 효용성으로 변질된 결과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그대로 수입한 한국의 현 의학교육계는 그 사상적 뿌리에 대한 천착 없이 교육과정과 관련한 무질서한 공학적 설계만 난무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행동과 실천의 강조가 곧잘 공학적 성과로 귀결되어 버리는 이러한 미국적 현상은 현대 미국 의학교육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는 일명 『플렉스너 보고서(Flexner Report)』의 출간과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카네기교육진흥재단(The Carnegie Foundation for the Advancement of Teaching)의 위임을 받고 1910년 일명 『플렉스너 보고서』를 작성하여 출간한 플렉스너(Abraham Flexner, 1866-1959)는 타일러와 마찬가지로 교육학자였다. 보고서의 원제인 『미국과 캐나다의 의학교육(Medical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이 가리키듯 이 보고서는 미국과 캐나다에 산재한 155개 의학교의 실태를 조사한 것이었다. 플렉스너는 이를 위해 155개 의학교 전부를 직접 현장 방문하여 샅샅이 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의 출간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미 1904년 미국의사협회가 의학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의학교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미국의 의학교 상당수가 폐교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이후 의학교육위원회가 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 의뢰함으로써 시작된 플렉스너의 조사는 보고서 출간을 계기로 기준 미달의 소규모 상업적 의학교 폐교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06년 162개였다가 1910년 131개로 감소한 미국의 의학교는 5년 뒤인 1915년에는 95개로 감소했고, 1922년에 이르면 81개로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이는 플렉스너가 보고서에서 31개로의 감축을 건의했던 것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스타, 2012: 180-186).
의학교 설립 기준이 강화되고, 교육 기간이 연장되고, 교과과정의 일관성이 유지되면서 의사의 질과 수준이 높아졌으나, 급격한 개혁은 그만큼의 부작용도 초래하였다. 우선 의학교육비가 상승했고, 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자격조건이 까다로워졌다. 그 결과, 하층 및 노동계급 출신에서 이전과 비교하여 의사가 되기 위한 진입 장벽이 대폭 높아졌다. 또한 이전의 개방적이었던 환경과 달리 여성과 흑인, 유대인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의사들의 출신 계층이 백인 남성 부르주아지로 한층 단일화되어 갔다. 이에 더하여 의학교의 감소로 졸업생이 줄어들면서, 플렉스너의 예상과 달리, 빈민촌과 농촌에서 의사가 부족해지는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이에는 의학교육비의 상승도 한몫하였다. 의사가 되기 위한 전체 비용이 상승하자 졸업 후 이를 충당하기 위해 의사들은 진료비를 인상하였고, 인상된 진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의사들이 개원을 회피하였기 때문이다(스타, 2012: 189-192).
의사 사회 내부에서의 비판도 이어졌다. 그것은 기존의 임상의학을 과학적 환원주의를 앞세운 독일식 실험실 의학(laboratory medicine)으로 변환시키려는 데 대한 저항이었다. 플렉스너는 보고서에서 자신이 졸업한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의학교를 의학교육 개혁을 위한 표준으로 삼았는데, 존스홉킨스의학교는 바로 그 연구 중심의 독일식 모형을 채택한 대학이었기 때문이다.12) 놀랍게도 당장 존스홉킨스의학교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존스홉킨스병원 설립에 기여하였으며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는 “과학을 의학에 적용하는 데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으나, 과학적 정신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 끼어드는 것에는 강하게 저항했다.” 또한 의학교 교수진을 연구 성과에 따라 임명하면 교수들이 학생과 환자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라 경고하면서 플렉스너의 보고서에 근본적으로 반대하였다(토버, 2003: 47-50).
그러나 이러한 소수의 반대 목소리는 이내 묻혀 버렸고, 미국의 의학교육 개혁은 독일식 실험실 의학을 근간으로 한 연구 중심 대학의 추구로 귀결되면서 결국 의사와 과학자의 잡종인 의사과학자(physician scientist) 양성으로 이어졌다. 실증주의와 과학적 환원주의의 물결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임상의학의 전통적인 인도주의를 압도해 버린 것이다. 플렉스너의 보고서가 이후 미국 의학교육과 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점에서 앞서 타일러 모형의 예에서도 보았던 문제해결을 위한 상황적 효용성이 기계적인 공학적 효용성, 나아가 획일성으로 변질된 프래그머티즘의 부정적 결과를 목도하게 된다. 실제로 플렉스너가 견지한 교육철학 또한 학생들이 기계적인 암기보다는 행동이나 문제해결을 통해 배운다는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철학과 유사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그의 철학이 훗날 미국 의학교육을 변혁시키는 데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Duffy, 2011: 270).

3) 프래그머티즘과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토대로 의료시스템과학의 성격과 출현 배경을 검토해 보면, 의료시스템과학의 대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단단히 유지되어 온 미국의 플렉스너 체제 및 의사과학자 양성 체제를 부정 또는 개혁하려는 의도가 아닌 일개 보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플렉스너 전통의 기존 질병 및 장기 계통별 교과목 중심의 교육과정으로부터 임상 표현 중심,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 중심의 통합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이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조차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세기 전에 구축된 플렉스너 체제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플렉스너 체제의 성립부터 이후 현재의 역량바탕교육의 확립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의 기저에 프래그머티즘의 실리 추구를 위한 공학적 속성이 부정적 유산으로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러한 질문은 이제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도 플렉스너 체제가 유지, 확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올바른 질문이 될 것이다.
실례로 2010년 『플렉스너 보고서』 출간 100주년을 맞이하여 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서는 ‘제2의 플렉스너 보고서’라 할 만한 보고서를 출간하였다.13) 이 보고서에서 저자들은 플렉스너 체제를 빛나는 과거라 칭하고 이 빛나는 과거가 탁월한 미래를 위한 충분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Cooke, Irby, O’Brien, 2010: 1) 도입부를 플렉스너 체제의 전개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새 보고서를 살펴보면 플렉스너 체제의 근본적인 폐기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플렉스너 체제의 재조정과 이에 따른 확대 발전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새 보고서는 플렉스너 체제의 폐기와 단절이 아닌 성숙한 플렉스너 체제로의 이행을 얘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빛나는 과거가 곧 탁월한 미래인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7년 미국의사협회 교육컨소시엄(AMA Education Consortium)에 의해 공식적으로 첫 모습을 드러낸 의료시스템과학 역시 플렉스너 체제와의 단절이 아닌 심화ㆍ성숙을 의미한다.14)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2017년 출간된 『Health Systems Science』 초판의 5쪽에 실린 두 가지 도식이다(Skochelak 외, 2017: 5). 첫 번째 도식을 가리켜 저자들은 의학교육의 전통적인 ‘두 기둥 모형(two-pillar model)’이라 칭하면서 그 두 기둥을 기초과학(basic science)과 임상과학(clinical science)으로 설정해 놓았다. 이는 곧 과학적 의학을 추구한 현재의 2+2 플렉스너 체제에 해당한다.15) 다음으로, 두 번째 도식에 대해서는 의학교육의 새로운 ‘세 기둥 모형(three-pillar model)’이라 칭하면서 기존 두 기둥에 한 기둥을 의료시스템과학(health systems science)이라 하여 새로이 ‘추가’해 놓았다. 기존의 과학적 의학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여기에 시스템적 사고(systems thinking)를 연결 고리로 한 의료시스템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 축으로 덧붙인 것이다. 의학의 과학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플렉스너 체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의료시스템과학을 가리켜 저자들이 기초과학, 임상과학에 이은 ‘제3의 의과학(the third medical science)’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Skochelak 외, 2017: 10).
앞서 필자가 제기한 질문, 앞으로도 플렉스너 체제가 유지ㆍ확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로 되돌아가 보자. 왜인가? 플렉스너가 19세기 후반의 독일식 의과학 모형을 제시하면서 확립한 ‘의학의 과학화’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한 가지 답변이다. 19세기까지 의학은 치료라는 측면에서 다른 과학 분야와 비교했을 때 사실상 발전이 없었다. 독일식 실험실 의학의 유산은 그러한 의학의 치료적 비효용성을 실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19세기 후반 세균학에서의 혁명적 변화를 가리켜 의학적 지식의 진보가 실제적인 치료적 진보로 이어진 역사적 출발점이라 부를 만하다(우튼, 2007: 9-40). 플렉스너 체제는 그 직후 구축되었다.
치료적 진보라는 측면에서 의학의 진보는 이제 불과 한 세기의 시간이 경과한 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의학의 인도주의적 요소를 불필요할 정도로 희생시켜 가면서 확립한 과학화, 그리고 그에 기반한 의학교육 체제를 되돌리거나 전환해야 할 확실한 이유를 찾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의료시스템‘과학’이 희생당한 인도주의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3. 의료시스템과학의 한국 도입 배경과 의도의 정치적 함의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이란 “의료시스템 내에서 환자와 인구 집단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전달의 질, 결과 및 비용을 개선하는 원리, 방법 및 실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Skochelak 외, 2017: 11). 그리고 이를 기초과학, 임상과학에 이은 제3의 의과학이라 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학생들에게 교육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이 대두된 이유에 대해 Skochelak 등은 진단 및 치료와 연계된 기초과학 지식의 양적 폭발과 복잡화, 건강과 질병의 생물-정신-사회-환경 모형에 대한 이해의 극적 진전, 그리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압력 등이 엄청난 데이터와 정보 시스템의 뒷받침 하에 미국 의료의 풍경을 그 사이 극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Skochelak 외, 2017: 5). 간단히 말해서 기존 의사-환자-연구 중심의 과학적 의학 모형, 곧 플렉스너 체제가 의료와 사회의 다변화 및 복잡성 증가로 한계에 봉착하게 되자 이를 보완 또는 타개할 목적으로 특히 사회과학적(예방의학, 사회의학, 의료관리학, 의료사회학 분야를 아우르는) 측면을 도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조직화하여 교육시킴으로써 의사의 전문성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는 취지이다.
이는 미국 의료의 특성상 이른바 공공성이 사회적으로 한국의 의료 체제보다 뒤떨어져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국가 주도의 전국민의료보험 체제가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의료 자체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미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더욱이 한국의 의과대학은 통칭 예방의학 분야에서 의료시스템과학과 많은 부분 중복되는 영역을 이미 교육하고 있어 의료시스템과학의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제(學制)도 상이한 한국의 의학교육계가 미국의 급변하는 의료 현실과 4년제 학제에 맞추어 설계된 의료시스템과학을 서둘러, 그것도 본격적으로 도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래그머티즘적인 보완재로서의 성격이 강한 의료시스템과학을 도입하려는 이유에 대해 앞서 미국의 저자들이 제시한 복합적인 설명은 미국 의료계의 정황으로선 거의 필연에 가까운 성격의 것이었다면, 한국에서의 설명 방식은 매우 당위적이며 단선적이고 또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체제 구축 사업을 위해 한국의과대학ㆍ의학전문대학원협회(이하 KAMC)가 제출한 최근의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연구의 필요성으로 든 첫 번째 이유가 “공공ㆍ지역의료 인력 양성 및 관리를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 추진이 소기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든 이유가 “2020년 의정 사태”이다.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 지식, 술기, 태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의학교육 모델에 근거하여 의료와 사회를 통합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역량과 노력이 정부, 의료계 및 국민 모두 미흡”했음이 이 “의정 사태”(이하 2020년 의사 파업)를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16) 정부의 연구용역보고서임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편향성이 상당한 편이다(한국의과대학ㆍ의학전문대학원협회, 국민건강보험공단, 2021: 3).
2020년 의사 파업은 2000년 의사 파업 이후 20년 사이 발생한 가장 큰 의사와 정부 간 대립이었다. 2000년 의사 파업이 의약분업 시행 여부를 둘러싼 의사ㆍ약사ㆍ정부 간 대립이었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발생한 2020년 의사 파업은 당시 대한의사협회가 규정한 이른바 의료 4대 악법 척결을 명분으로 발생한 의사ㆍ정부 간 대립이었다.17) 전자가 개원의 중심의 중년층 의사들 주도로 벌어졌다면, 후자는 전공의 중심의 청년층 의사들 주도로 확대되었다. 쟁점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20년 의사 파업은 의사들이 여론과 언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파업을 주도했던 전공의들이 배제된 채 대한의사협회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합의로 일단락되었다. 합의서에 따르면 핵심 쟁점이었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며,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을 중심으로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기로” 했다. “또한 논의 중에는 관련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김장한, 김현아, 박형욱, 2021: 82).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정책의 완전 철회나 중단을 요구했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 가운데 전공의들은 불가피하게 업무에 복귀한 반면, 의대생들은 의사국가시험 거부라는 단체 행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국가시험 미응시에 따른 대량 결원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최전선 의료인력인 인턴의 대량 공백으로 이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부담을 느낀 정부도 결국 재응시 기회 부여라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났고, 학생들도 우여곡절 끝에 국가시험에 응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이전보다 더 부정적이 되었고, 특히 청년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대사회적 이미지는 세대 논쟁과 연결되면서 한층 부정적이 되어 버렸다.
이를 계기로 의학교육계 내부에서는 상반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나는 소위 MZ세대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이른바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까지의 교육이 학생들의 사회화에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새로운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였다. 이 가운데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시각에 포착된 것이 다름 아닌 의료시스템과학이었다. 이와 동시에 지금까지의 인문사회의학(의료인문학) 교육이 의사의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는 부정적 시선 및 성급한 재단과 함께 의료시스템, 의료정책, 의료사회학, 리더십 등 사회과학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재난 앞에서 의료의 공공성 및 의과대학 교육의 사회적 책무성 확보를 이유로 합리화 내지 정당화되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2020년 7월 23일 공공의대 신설,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하려다 곧바로 의사 파업에 부딪혀 정책 추진이 좌절된 바 있다.18) 이 실패는 정부가 ‘의사 집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은 의료의 공공성 확보라는 정부의 입장과 의사에게 결여된 사회적 책무성 함양이라는 의학교육계의 입장 양쪽 모두를 담아낼 수 있는 편리한 그릇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정부의 의뢰로 2021년 12월 KAMC/의학교육계 연구팀이 제출한 연구용역보고서 『의료와 사회의 통합적 이해와 실천을 위한 보건의료시스템과학 교육체제 구축 사업』은 그러한 양자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부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19)
의료시스템과학의 한국 도입 배경을 살펴보면서 그 정치적 함의가 불순함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또한 그로부터 의료시스템과학이 사그라든 인도주의의 불씨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의료시스템과학은 기존 인문사회의학(의료인문학) 분야를 대신할 명실상부한 제3의 의과학이 될 수 있을 것인가?

4. 의료시스템과학과 인문사회의학20)

한국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이 2020년 의사 파업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급부상했다면, ‘인문사회의학’은 20년 전에 벌어진 한국 최초 의사 파업인 ‘2000년 의사 파업’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그 직접적 계기가 되어 부상했다. 인문사회의학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도 그즈음으로 의사 파업 3년 뒤인 2003년의 일이다(전우택, 양은배, 2003: 99-103). 그러나 처음부터 명확한 개념 정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이전부터 의학계에서 꾸준히 논의되어 왔던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배경으로 한 ‘인성교육’ 개념을 확장시켜 “의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연계 교육 강화”를 통해 “의학 전문가로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교육”하고, “의료가 가진 독특하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한 윤리적 고민과 지적인 이해, 그리고 행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등을 인문사회의학 교육 도입의 목적이라 보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전우택, 양은배, 2003: 36-37, 119).
이러한 최초의 공론화는 2000년대 초 서구 의학계에서 의사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그 담론의 국내 소개와 더불어 심화되기 시작했다.21) 이후 국내 의학교육계는 과학적 의학 모형, 즉 플렉스너 체제를 극복하고자 ‘좋은 의사(good doctor) 만들기’를 의학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였다(전우택, 김상현, 오승민, 2010: 62). 이에 따라 인문사회의학 교육의 중요성 또한 한층 부각되었으며, 이는 2010년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까지 반영되어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크게 ‘기초의학, 임상의학, 의료인문학’의 세 영역으로 구성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0년도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 포함된 ‘의료인문학’이라는 명칭은 개념 정의상 오해와 혼란을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였다. 모호하게 “어문학, 사학, 철학, 윤리학, 사회학, 법학, 경영학, 인류학, 심리학, 예술 등의 전공을 의미”한다고만 기술해 놓았기 때문이다(한국의학교육평가원, 2010: 29). 다만 한국에서 인문학이라 하면 대개 협의의 문학, 사학, 철학이 아닌, 자연과학과 대비된다는 의미에서 흔히 사회과학까지 포함하는 광의로 보기도 하므로 이를 반드시 잘못된 정의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전우택, 김상현, 오승민, 2010: 61).
이상의 기조는 2017년 최초 공개되고 2018년 개정 시행된 최신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이하 ASK2019)에도 이어져 의료인문학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용어상의 혼란을 의식한 까닭인지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을 다시 “의료인문학, 행동과학, 사회과학, 의료윤리, 의료법규 등”으로 세분화하였다(한국의학교육평가원, 2018: 22). 이는 2015년 세계의학교육연합회(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 이하 WFME)가 제시한 기본 의학교육 국제 기준(Basic Medical Education WFME Global Standards for quality improvement)을 직접 반영한 결과이다.22) WFME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영역은 한국과 사실상 동일하지만, 나머지 의료인문학 영역은 한국과 달리 “행동과 사회과학, 의료윤리와 법규(Behavioural and Social Sciences, Medical Ethics and Jurisprudence)”라는 용어 및 내용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행동과학, 사회과학, 의료윤리, 의료법규 이 네 분야가 교육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 2015: 22).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현재 한국 의과대학의 인문사회의학 교육은 기초의학에 포함시킬 수도 없고 임상의학에 포함시킬 수도 없는 의학의 나머지 전 영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형성되었다. 심지어 기존 행동과학과 예방의학 관련 교과목까지도 인문사회의학 교육에 포섭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인문사회의학이라는 영역의 모호성을 한층 배가시키는 한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전통적이면서 보다 본질적인 인문학 교육을 의과대학 내에서 더욱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더욱이 각 의과대학마다 사용하는 해당 영역의 용어조차 인문사회의학, 인문의학, 의료인문학, 의인문학 등으로 제각각이다 보니 이러한 난맥상이 가중된 상황이다. 이에는 인문사회의학에 대한 개념적 합의가 학계에서든 교육 현장에서든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점도 한몫하였다.
사실 ASK2019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료인문학이라는 용어는 ASK2019가 WFME 기준을 본격 도입한 이상, 이제 더는 적절치 못한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용어와 내용에 따른 이러한 개념적 혼란은 2017년 KAMC가 개발하여 출간한 『기본의학교육 학습성과: 사람과 사회 중심』, 그리고 KAMC가 이를 토대로 현재 출간 준비 중인 가칭 『인문사회의학 교과서』로써 상당 부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책자는 공통으로 의료인문학이 아닌 인문사회의학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고, 다루는 내용 역시 ASK2019가 제시하는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의학교육계에서 생각하는 인문사회의학은 인문학에 방점을 찍은 의료인문학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 아주 분명해졌다. 그 결과 인문사회의학과 의료시스템과학 사이에는 교집합이 형성되었고, 나아가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이 인문사회의학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게 되었다.23)
현재 국내외 의과대학의 인문사회의학 교육을 종합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직접 의학과 접목한 전문직교육(직업교육) 중심의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교양과 인성을 강조하는 인문교육 중심의 경향이다. 이 가운데 국내 의학교육계의 주된 경향은 전자로서 미국과 WFME가 주도하고 있으며, 기존 의사의 전문직업성 담론을 확장함으로써 이미 앞서 논한 대로 의사의 역할을 강조하던 이전 관점을 벗어나 환자를 둘러싼 의료환경, 즉 시스템의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크게 선회하였다. 국내 의학교육계에서 인문학보다 사회과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이다.
그러나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은 의사로서의 전문직교육의 충실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겠으나, 한국 의과대학의 교육 실정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큰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의과대학 학제의 상이함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처럼 4+4 학제가 보편화된 미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의학과 직접 접목된 이러한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으로의 직행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거의 모든 의과대학이 6년제로 회귀하여 학제가 의예과 2년과 의학과 4년으로 사실상 단일화된 한국에서는 전문직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과 달리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교양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교육의 제공은 필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4) 6년제 학제가 대부분인 유럽의 의과대학들이 미국과 달리 교양 중심의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전우택, 김상현, 오승민, 2010: 71).
따라서 한국 의과대학의 인문사회의학 교육은 교양교육 중심의 의예과 교육과정, 그리고 의학과 직접 접목한 전문직교육 중심의 의학과 교육과정 이렇게 두 가지로 개념적인 이원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구를 통해 의사라는 직업인이 되기 이전에 삶의 가치와 목적을 찾고 사회 및 세상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과 시민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전통적인 인문교육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향후 의예과를 폐지하고 통합 6년제로 의과대학 학제가 개편되었을 때도 유지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의 존재 이유는 직업전문학교의 추구 및 단순 기술직의 양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ASK2019가 WFME 기준을 그대로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WFME 기준에는 없는 별도의 ‘의료인문학’ 분야를 계속 유지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라 사료된다(한국의학교육평가원, 2018: 22).
20여 년 전 발생한 의사 파업의 결과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인문사회의학 분야가 이제야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불과 2년 전 발생한 제2의 의사 파업에 대한 의ㆍ정 이해관계의 일치에 따라 선택된 의료시스템과학, 그것도 미국식 4+4 학제에 최적화되어 있는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을 착종 과정 없이 그대로 수입하여 기존 인문사회의학 분야를 대체하고자 했을 때 과연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할지는 그 누구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5. 나오는 말: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플렉스너의 과학적 의학 체제에서 의학은 곧 과학이다. 한국에서 기초의학이 사실상 몰락하다시피 한 현 상황에서도 미국보다 50여 년이나 뒤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근래 이와 관련한 공론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서구 의학이 과학의 힘을 빌려 주류 의학의 위치를 점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과학의 힘을 빌려 질병 치료 분야에서 크나큰 진전을 보인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적 의학의 질병 중심주의가 환자/사람 소외 현상을 초래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의학의 역사, 철학, 윤리, 법, 문학, 예술 등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통칭 인문사회의학 분야가 국내에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의학은 단순하게 과학으로만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감각이 없는 물질을 대상으로 한 수학과 물리학 중심의 일반적인 자연과학 분야가 아니라,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생명현상을 가진 환자/사람을 대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직접 사람/생명을 대하는 분야이므로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과 지점이 돌출하는 분야이다. 이러한 까닭에 고전적인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역시 원문을 확인해 보면 의(醫)에 접근할 때 학문이나 지식으로서의 의학(醫學, medical science) 외에 기술이나 행위로서의 의술(醫術, medical art), 그리고 덕목이나 윤리로서의 의덕(醫德, medical virtue)이라는 삼중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의학은 이론적 측면이, 의술은 실천적 측면이, 의덕은 도덕적 측면이 강하다(반덕진, 2006: 62-67). 의과대학에서 역량바탕교육에 따른 학습평가를 시행할 때 흔히 지식(knowledge), 술기(skill), 태도(attitude)라는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의학의 전통적인 삼중적 측면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의학은 곧 과학이라는 편견이 지금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이유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의학이 소위 이과 학문이라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학이 이과 학문이라는 근거는 사실 그 어디에도 없다. 인문ㆍ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문과, 이과라는 프레임으로 양분하는 작위적 방식은 그 제도를 메이지(明治) 시기에 처음 시행한 일본과 그 영향을 직접 받은 식민지 조선 및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주로 통용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25) 그렇다고 플렉스너 체제에서 의학이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 의학이 이과 학문이어야 할 근거가 되지도 못한다. 앞서 ‘선서’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굳이 분류를 하자면 오히려 의(醫)로서의 의학이야말로 애초 이과, 문과 구별이 불가능한 타고난 융합학문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중세 유럽의 대학에 의학부가 설치되면서 항구적인 학문으로서의 길을 열게 되었다. 대학에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 의학은 타 학문 분과들과도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다. 이는 대학 출신 의사 공동체의 영향력을 오늘날까지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사회적 신분 상승의 계기 또한 마련됨으로써 전문직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린드버그, 2009: 529-536). 그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의학은 플렉스너 체제 등의 과학화를 통해 치료적 학문으로서 실질적인 진보를 이룩해낼 수 있었고, 이로써 의사들은 전문화와 함께 더 높은 신분 상승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현대 의학은 과학이라는 학문을 토대로 실제적인 치료적 효과를 발휘하는 좋은 의학이다. 이 좋은 의학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과학 이외에 인간학으로서의 의료와 그 의료를 행하는 좋은 의사라는 존재가 반드시 요구된다. 의료시스템과학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러한 의(醫)의 통합적 측면을 달성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과학’이다.
한국에서 현재 의료시스템과학이란 실체 없는 유령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뿌리 없는 유령이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미국의 의료시스템‘과학’ 전부를 이식해 올 필요는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조건 이식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성급함보다는 한국화된 학문적, 교육적 시스템에 대한 역사적 선이해와 함께 이에 따른 면밀한 보완이 더 시급한 것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점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이 미국처럼 제3의 의과학으로서 전면에 나서 거대 프레임을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기존 인문사회의학 분야의 성숙을 보완하는 보완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더 타당한 수순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프래그머티즘의 부정적 자장에 포섭된 한국의 미국식 의학교육이 보여주는 교육과정의 공학적 설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 생각한다.

Notes

1) 이 논문에서 말하는 인간학이란 인간의 본질과 과제를 규명하는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적 또는 신학적 인간학(anthropology)을 의미하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인간에 대한 관심 또는 사랑을 가리킨다.

2) 핵심 기능 영역의 7개 요소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환자, 가족, 지역사회(patient, family, and community), 2. 의료 구조와 프로세스(Health care structure and process), 3. 의료 정책과 경제(Health care policy and economics), 4. 의료정보과학과 의료 기술(Clinical informatics and health technology), 5. 인구, 공중,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Population, public, and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6. 가치 기반 의료(Value in health care), 7. 의료시스템 개선(Health system improvement)(Skochelak 외, 2021: 8-10).

3) 이 논문에서는 구조주의를 보다 포괄적으로 확대하여 해석하기로 한다. 즉, 구조조의를 철학사적 맥락에서 언어학적인 면에 한정하지 않고 실존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탈근대, 탈주체의 시작을 알리는 한 흐름으로 보았다.

4) 구조주의적 관점은 이와 정반대이다. 즉, 인간중심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인간이 사회구조/시스템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구조/시스템이 인간을 만들고 움직인다고 본다.

5) 미국에서 역량바탕교육의 역사는 멀리는 1949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1950-60년대에 행동주의 심리학의 영향 아래 이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역량바탕교육이 의학교육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에 이르러서였다(Morcke, Dornan, Eika, 2013: 852-853). 한국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제도에 역량바탕교육이 성과(outcomes)라는 이름으로 강제화된 것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2010년도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 및 규정』에 학습성과와 졸업성과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동년의 일이다(한국의학교육평가원, 2010: 21-23).

6)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제도는 김대중 정부 시기였던 2002년 1월 교육인적자원부가 제도 도입의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모든 의과대학이 의예과 2년과 의학과 4년의 6년제 학부 과정으로 운영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였던 2005년 첫 입학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의전원으로 전환한 의과대학은 당시 전국 41개교 중 65.9%에 해당하는 27개교(의과대학과 의전원 병행 대학 포함)였다. 그러나 의학계 내부의 지속적인 반대 목소리, 사회적 부작용에 따른 찬반 논란 등이 맞물리면서 2010년 교육부가 각 대학에 학제 선택의 자율권을 주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한국의학교육학회, 2014: 4-6). 이후 2015년-2017년 사이 대부분 의전원이 6년제 의과대학 체제로 복귀하였으며, 2022년 현재 의전원 체제를 계속 유지할 계획인 대학은 1개교뿐이다(이영환 외, 2022: 38-40).

7) 프래그머티즘과 진보주의 교육관의 대계(大系)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였다(서재복, 황혜연, 김양자, 2018: 215-228).

8) 프래그머티즘에 관한 가장 최근의 국내 종합 연구서 저자인 김동식에 따르면 프래그머티즘이란 “유럽의 지적인 유산을 미국의 사회ㆍ문화ㆍ역사적 조건에 부합하게 개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김동식, 2002: 376).

9) 고전적 프래그머티즘을 종합한 존 듀이(John Dewey)에 따르면 프래그머티즘이 말하는 경험은 전통적 경험론이 말하는 감각으로서의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라 할 만한 것으로, 유기체가 자연과 교섭하는 일련의 상호작용(interaction)과 상호교섭(transaction)의 과정을 경험이라 본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란 유기체와 환경 간 맺어지는 통일된 행동의 작용이고, 상호교섭이란 상호작용이 완전히 처리되어 통합된 인식의 과정을 의미한다(듀이, 2020a: 227; 김동식, 2002: 162). 이렇게 보면 듀이는 기존의 인식론적 관점을 완전히 폐기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인식의 대상인 지식(객관적 실재)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상호교섭에 따른 유기체의 활동, 곧 행동의 결과로 지식이 획득된다는 것이다.

10) 국내 교육학계의 비판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박채형, 2008; 김학준, 2013; 김은정, 2018; 이홍우, 2018). 심지어 교육과정철학 전공자인 이홍우는 자신의 저서에서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을 가리켜 “미국 교육학의 저주와 재앙”이라는 극한 용어로써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교육학’이란 “타일러의 ‘교육과정 이론’과 그것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존 듀이의 교육철학, 그리고 양자를 다양한 방면으로 연장 발전시킨 학자들로 구성된 이론적 집합체”라고 규정하고 있다(이홍우, 2018: 1-49).

11) 이 네 가지 요소의 순환 구조를 타일러는 자신의 저서 첫머리에서 교육과정 개발 시의 네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공식화하였다. 1. 학교는 어떤 교육목표(educational purposes)를 달성하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2.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교육경험(educational experiences)이 제공될 수 있는가? 3. 이 교육경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4. 이들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Tyler, 1949: 1).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타일러는 저서에서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제시하지도, 그것에 대해 어떠한 대답이 있는지도 예시하지 않는다(이홍우, 2018: 9).

12) 플렉스너는 자서전에서 각 의학교 방문 조사에 착수하기에 앞서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의학 교육의 분명한 원형으로서 존스홉킨스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Cooke, Irby, O’Brien, 2010: 5).

13) Molly Cooke, David M. Irby, Bridget C. O’Brien, Educating physicians: a call for reform of medical school and residency (Jossey-Bass, 2010).

14) Susan E. Skochelak et al. eds., Health Systems Science (Philadelphia: Elsevier, 2017). 2017년 출간된 이 도서는 미국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4년 뒤인 2021년 벌써 2판이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18년에 서평을 통해 초판의 전반적인 내용이 소개된 바 있다(전우택, 2018: 60-61).

15) 미국의 2+2 체제란 의과대학 입학 후 첫 2년간 기초과학과 임상과학을 공부한 뒤 이를 토대로 나머지 2년간 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하는 교육 시스템을 가리키며,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의학과 4년 역시 이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16) 2020년의 의사 파업을 의료계와 정부가 대립했다는 이유로 흔히 ‘의정 사태’라고 부르나, 전면 파업이라는 점에서는 20년 전 의사 파업 때와 본질이 서로 같다. 따라서 이후 ‘의정 사태’ 대신 ‘2020년 의사 파업’으로 통일해서 칭하고자 한다.

17) 대한의사협회가 규정한 의료 4대 악법이란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 의료 추진, 공공의대 신설 추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말한다(김보규 외 70인, 2020: 82-106). 이 가운데 2020년 의정 사태의 핵심 쟁점이 되었던 것은 공공의대 신설 추진과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이었다(김장한, 김현아, 박형욱, 2021: 32-33)

18) 당정, 의대정원 4,000명 증원ㆍ공공의대 설립 확정」, 『의사신문』, 2020.7.23.

19) 한국의과대학ㆍ의학전문대학원협회,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와 사회의 통합적 이해와 실천을 위한 보건의료시스템과학 교육체제 구축 사업』 (2021).

20) 4장의 인문사회의학 관련 서술 부분은 2019년 내부 자료로서 발간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육요람』 제3판에 실린 필자의 글 가운데 일부의 내용을 보완하고 오류를 수정한 것이다.

21) 이 시기 서구 의학계의 관련한 주요 결과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Medical Professionalism Project, 2002: 520-522).

22) ASK2019 자체가 WFME의 기본 의학교육 국제 기준 2015년도 개정판을 근간으로 국내 상황을 고려하여 제작된 것이다(한국의학교육평가원, 2018: ①).

23) 가령 ASK2019가 제시하는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의 ‘행동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정의를 보면 WFME의 정의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서 “지역의 요구, 관심과 전통에 따라 공중보건의학, 사회의학, 생물통계학, 국제보건의료, 사회역학, 의료사회학, 의료심리학, 의료인류학, 위생학, 지역사회의학을 포함한다”로 되어 있어 상당 부분 의료시스템과학과 그 내용이 중첩됨을 알 수 있다(한국의학교육평가원, 2018: 22; WFME, 2015: 22).

24)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의 의학부를 예로 들어 보자. 4년제였던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는 진학 전 반드시 예과 2년 과정을 수료해야 했다(1924년 경성제국대학 설립과 함께 개설된 예과 과정은 1934년부터 3년제로 변경되었고, 1941년에는 2년 반으로 단축되었으며, 1943년부터 다시 2년제로 환원되었다). 즉, 2+4 학제로서 현 한국의 의과대학 6년제 학제와 동일했던 셈이다. 예과 2년 동안 학생들은 외국어 중심의 교양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신, 국어 및 한문, 제1외국어(독일어), 제2외국어(영어), 라틴어, 수학, 물리, 화학, 식물 및 동물, 심리, 도화, 체조 등의 과목을 1학년과 2학년에서 각각 34시간씩 이수했다(기창덕, 1995: 228-229). 요컨대 일제의 식민지 제국대학조차도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의학 지식 습득에 앞서 기본적인 교양 지식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25) 메이지 44년인 1911년 7월 제정된 고등중학교령(칙령 제217호) 제4조를 보면 “고등중학교의 학과를 나누어 문과 및 이과로 한다(高等中學校ノ學科ヲ分チテ文科及理科トス)”라고 나온다. 김성근은 이것이 고등중학교 과정을 문과와 이과라는 큰 범주로 나눈 최초의 칙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김성근, 2021: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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